주차장 문제, 로봇주차에서 답을 찾다… 태국 도입 현장 가 보니[르포]

  • 동아경제
  • 입력 2025년 3월 12일 12시 3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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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국 방콕의 거리. 방콕은 교통체증이 가장 심각한 국가 중 하나다. 사진=황소영 기자
태국 방콕의 거리. 방콕은 교통체증이 가장 심각한 국가 중 하나다. 사진=황소영 기자
태국 방콕의 2020년 기준 차량등록대수는 약 850만 대로 서울 317만 대에 비해 2.7배 많다. 방콕에서는 목적지까지 가려면 막히지 않을 때를 비교해 평균 1.61배 시간이 더 소요된다고 알려졌다. 멕시코시티에 이어 세계에서 가장 교통체증이 심각한 도시 2위다.

주차난 역시 심각하다. 건축물의 용도와 규모에 따라 일정 수의 주차공간을 두어야한다는 법이 마련돼 있지만 지반이 약한 문제로 지하주차장 건설을 하지 않기 때문에 주차장이 부족하고 노점상의 도로 점유도 주차 공간을 확보하는데 어려움을 가중시킨다.
아비람 시타칼린(Abhiram Sitakalin) 파크플러스 대표. 사진=삼표그룹
아비람 시타칼린(Abhiram Sitakalin) 파크플러스 대표. 사진=삼표그룹

15년 전 태국 방콕의 주차문제를 보고 국내 로봇주차 시스템 기업 셈페르엠의 문을 두드린 사람이 있다. 파크플러스(Park Plus)의 아비람 시타칼린(Abhiram Sitakalin) 대표다.

그는 태국에서 기계식 주차장을 운영하는 사업을 하다가 처음 2019년 8월 고급 레지던스에 78대 규모의 셈페르엠 로봇주차기술인 MP시스템을 도입한 이래 현재까지 태국 방콕에 14곳, 파타야 1곳에서 이 시스템을 적용한 주차장을 운영하고 있다.

시타칼린 대표는 “서울과 마찬가지로 방콕도 예전부터 땅값이 비쌌기 때문에 주차 공간을 최대한 효율적으로 활용해야 하는 상황이었다”면서 “방콕에서 새로 건물을 짓는다면 100% 기계식 또는 로봇주차를 고려할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특히 “기존 기계식 주차와 비교해 압도적인 공간 효율성과 안전성이 로봇주차 시스템을 선택한 결정적 이유였다”고 한다.

그는 “로봇주차 시스템은 일반 기계식 주차와 다르게 바닥에 설치된 자율주행 로봇이 직접 차량을 들어 옮기는 방식이라 공간 활용도가 매우 뛰어나고 차량을 더 밀착해서 배치할 수 있어 같은 면적이라도 훨씬 많은 차량을 주차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포춘 비즈니스 인사이트에 따르면 전 세계 로봇주차 시스템 시장은 2023년 약 20억 달러(약 2조9000억 원)규모다. 미국과 독일, 이탈리아, 일본, 사우디아라비아 등 많은 업체가 있다.

왜 셈페르엠의 MP시스템을 선택했냐는 취재진의 질문에 시타칼린 대표는 “대형 차량과 슈퍼카 소유자가 많아 차량의 크기나 안전성 문제가 중요하기 때문에 MP시스템을 선택할 수 밖에 없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기존 기계식 주차의 경우 차량을 이동시키기 위해 별도의 팔레트를 사용하다 보니 차량 크기 제한이 크고 주차장 내 사고 위험성도 있었다”면서 “반면 MP시스템은 카니발이나 슈퍼카와 같은 대형 차량까지 수용 가능할 뿐만 아니라 사람이 직접 운전해 주차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주차장 내 추락사고와 같은 안전 문제도 완전히 예방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방콕 수완나품 공항. 사진=황소영 기자

실제로 MP시스템은 최대 길이 5.4m, 폭 2.2m, 무게 3톤까지 수용이 가능하여 일반적인 세단은 물론 대형 SUV나 미니밴, 슈퍼카까지 안전하게 주차할 수 있다. 방콕과 파타야 등지에서 많은 사람들이 이용하는 기아 그랜드 카니발과 같은 큰 차량도 주차가 가능한 것은 MP시스템의 가장 강력한 경쟁력이자 독보적인 특징이다.

윈덤 가든 방콕 수쿰빗 42 주차장 사진=황소영 기자
윈덤 가든 방콕 수쿰빗 42 주차장 사진=황소영 기자

국내 기업 셈페르엠은 국내가 아닌 해외 현장에서 먼저 MP시스템 수주에 성공했다. 2006년 헝가리에서 가장 먼저 공사를 시작해 2008년 최초로 로봇 주차 시스템을 현장에 적용했다.

실제로 시타칼린 대표는 “한국은 기계식 주차에 대한 법이 굉장히 복잡하지만, 태국은 다르다. 법적 제한이 거의 없어서 건물주가 원하는 방식으로 주차 시스템을 설계할 수 있기 때문이다. 건물 면적당 주차 대수를 충족하기만 하면 되기때문에 훨씬 다양한 방식의 주차 솔루션을 도입할 수 있었던 것”이라고 했다.

에스피앤모빌리티 관계자는 “국내의 규제 때문에 셈페르엠의 로봇주차 시스템 사업이 국내보다 앞서 해외에 진출한 것”이라고 부연했다. 에스피앤모빌리티는 삼표그룹과 로봇주차 전문기업 셈페르엠이 함께 설립한 합작법인이다. MP시스템의 국내 도입과 상용화를 목표로 설립된 회사로 2022년 출범했다.

실제로 한국에서는 주택건설기준 등에 관한 규칙에 따라 일반 공동주택과 주택 외 시설이 포함된 복합건축물에는 기계식 주차장 설치가 불가능하다. 또한 기계식주차장치의 안전기준 및 검사기준 등에 관한 규정 제6조에 따르면 주차장에 수용할 수 있는 차량의 입·출차 시간이 각각 2시간 이내여야 한다는 제한이 있다.

에스피앤모빌리티 관계자는 “2시간 내 입·출차해야하는 법안에 따라 MP시스템 기기 1대로 차량을 출고할 60대 정도 출차 할 수 있다. 그러나 태국에 도입돼 있는 시스템은 약 100개 당 기기 1대를 적용시키고 있는데 실제 사용하는데에 무리가 없다. 기존 기계식 주차에 대한 규정으로 현실적으로 맞지않다. 새로운 규정 도입이 필요해 보인다”고 말했다.
쇼핑몰whizdom 101의 주차 대기공간. 모니터를 보면서 차량 입출차 현황을 확인 할 수 있다. 사진=황소영 기자
쇼핑몰whizdom 101의 주차 대기공간. 모니터를 보면서 차량 입출차 현황을 확인 할 수 있다. 사진=황소영 기자
쇼핑몰whizdom 101 주차 시스템 전체를 관제하는 콘트롤타워. 사진=황소영 기자
쇼핑몰whizdom 101 주차 시스템 전체를 관제하는 콘트롤타워. 사진=황소영 기자

실제 6일 방콕 북동부 방나에 위치한 유명 쇼핑몰 whizdom 101을 방문했다. 이 곳은 지하3층에 690대를 주차 할 수 있는 규모를 갖췄으며 총 5대 기기로 운영 중이었다.

방문객의 차량이 건물 주차장으로 들어서 바로 차량을 주차했다. 주차장 입구 가까이에는 약 50대 가량의 임시 주차 공간이 있는데 이 곳에 주차 후 차키를 발렛파킹 맡기면 주차요원이 주차장으로 입고시키는 시스템이다. 차량은 리프트를 타고 주차되는데 약 2분30초 가량 걸린다.

기존의 기계식 주차장과는 확연한 차이를 느낄 수 있었다. 일반적인 기계식 주차장이 차량을 리프트에 실어 상하로 이동시키는 방식이라면 MP시스템은 주차 로봇이 바닥에 납작하게 깔려 차량을 들어 올린 뒤 지정된 위치로 옮기는 방식이었다. 덕분에 기존 기계식 주차장의 가장 큰 단점이었던 긴 대기 시간과 입출차 속도 문제가 해결된다는 점이 인상적이다.

방문객이 쇼핑을 마치고 차량을 찾으려고 차량 번호를 기기에서 입력하자 5분 이내에 차량이 출고됐다. 주차 로봇이 미리 대기하고 있다가 빠르게 차량을 이동시키는 덕분이다. 관계자에 따르면 혼잡한 시간대에도 최대 15분 이내에 차량을 찾을 수 있다고 한다.

쇼핑몰whizdom 101 주차장 리프트앞에 차량이 들어서고 있다. 사진=황소영 기자
쇼핑몰whizdom 101 주차장 리프트앞에 차량이 들어서고 있다. 사진=황소영 기자

관계자는 “고객이 쇼핑을 마치고 지하 주차장까지 걸리는 시간, 차를 찾는 시간, 지하에서 지상까지 올라가는 시간 등을 고려하면 15분이 결코 오래 걸리는 시간이 아니다”라고 자신했다.

쇼핑몰 뿐 아니라 하이드헤리티지와 아닐사톤 등 방콕의 고급 주거시설에서도 MP시스템 주차 기반 시설이 적용 돼 있었다. 하이드헤리티지는 총 249대 규모의 MP시스템 기반 주차 시설을 갖추고 있으며 기존의 주차 방식보다 40% 더 많은 차량을 수용할 수 있도록 설계됐다. 특히 차량 주차공간의 높이를 최소화해 공간 효율을 높인 것이 특징이다. 지하 공간이 부족한 방콕의 건축 환경에서는 이런 공간 절약형 주차 방식이 필수적이다.

태국 방콕의 하이엔드 주거시설 아닐사톤에도 AGV(무인운반로봇) 기술이 적용된 MP시스템이 설치돼 있다. 지하는 없으나 주차타워로 10층 건물을 올려 243대 차량의 주차를 가능하게 했다.

이 곳에서는 리프트를 타고 차량이 주차되어 있는 차실로 들어가 좁은 공간에 나란히 병렬식으로 주차된 차량을 볼 수 있었다.

방콕의 한 레지던스에 적용된 MP시스템. 빈 공간이 없고 단차가 크지 않아 운전자가 내리고 탈 때 안전하다. 사진=황소영 기자
방콕의 한 레지던스에 적용된 MP시스템. 빈 공간이 없고 단차가 크지 않아 운전자가 내리고 탈 때 안전하다. 사진=황소영 기자

차실로 가는 동안 로봇주차 시스템의 안전성이 돋보였다. 차량을 직접 운전해서 주차장 내부로 진입할 필요가 없기 때문에 사람이 개입될 여지가 없었다. 리프트 앞에서 차를 타고 내릴 때 빈 공간도, 단차도 없어 편안했다.

로봇이 차량을 바닥에서 들어올려 이동시키는 동안 차량끼리 충돌하거나 차량과 시설 간의 충돌이 발생할 가능성도 없어 보였다.

셈페르엠 관계자는 “MP시스템은 기존 기계식 주차장에서 발생했던 사람의 부주의로 인한 추락이나 충돌 사고가 발생할 가능성을 원천적으로 차단하고 있다”며 “특히 운전자가 차량에 직접 타고 있지 않기 때문에 주차장 내부에서의 사고 위험성 자체가 사라진다”고 말했다.

차실. 스프링클러가 차량 1대당 1개씩 설치 돼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사진=황소영 기자
차실. 스프링클러가 차량 1대당 1개씩 설치 돼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사진=황소영 기자

화재에 대해서도 대비하고 있었다. 최근 전기차 화재로 인해 일반 주차장에서도 화재 위험성이 높아지고 있지만 MP시스템의 차실에는 모든 차량의 주차 위치마다 개별 스프링클러가 설치돼 있었다. 2대에서 4대마다 주차 구획이 나뉘어있는데 화재 발생 시 즉시 진압이 가능하며, 불이 나더라도 주변 차량으로 화재가 확산되는 것을 막을 수 있는 구조로 설계됐다.

시타칼린 대표는 “최근 전기차가 많아지면서 화재 안전성을 강화하는 데 특히 신경을 썼다”며 “태국뿐만 아니라 글로벌 시장에서도 MP시스템이 인정받고 있는 이유는 바로 이러한 안전성 덕분”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MP시스템은 철골뿐 아니라 콘크리트 기반 구조를 선택할 수도 있어 화재 확산 방지에 매우 효과적이다. 특히 모든 층에 필수적으로 설치되는 스프링클러와 자동 소화 설비는 화재 초기에 신속히 대응할 수 있도록 설계돼 있다”고 덧붙였다.

셈페르엠의 MP시스템은 최근 태국에서 2곳의 수주를 포함해 15군데 적용돼 있으며 아랍에미리트연합(UAE), 멕시코, 헝가리, 스페인 등 12개 국에 진출 해 있다. 두바이에도 연내 985대의 MP시스템을 적용하는 주차타워 착공에 들어갈 예정이다.

국내에도 본격적인 도입 준비를 마쳤다. 에스피앤모빌리티는 지난해 8월 현대건설과 자동 로봇주차 시스템 확대를 위한 업무협약(MOU)을 체결하며 국내 시장 진출을 본격화했다. 규제 완화를 위한 실증 단계에서 국내 건설 현장에 로봇주차 시스템을 단계적으로 적용하겠다는 입장이다.

유정훈 아주대학교 교통시스템공학과 교수는 “로봇주차 시스템은 공공주택에서 발생하는 주차 공간 부족과 비효율적 운영을 해결할 수 있는 혁신적인 방안”이라며 “로봇주차는 동일한 공간에서 기존 방식보다 더 많은 차량을 수용할 수 있어 주차장 건설 비용을 절감하고, 공사 기간을 단축해 결과적으로 공공주택의 분양가를 낮추는 데에도 기여할 수 있다”고 평가했다.

에스피앤모빌리티 관계자는 “국내에서도 다양한 주거시설과 상업시설을 중심으로 시장을 넓혀가고 있다”며 “로봇주차가 도입되면 주차 공간 부족, 입출차 지연, 사고 위험 등 기존 기계식 주차장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물론 건축 비용 절감과 입주민들의 편의성 향상까지 기대할 수 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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