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급금 없는 대신 보험료 저렴
보험업계, 자의적 해지율 적용해
공격적 영업으로 ‘실적 부풀리기’
금융당국, 출혈경쟁 차단 나서
이달부터 금융당국의 무·저해지 보험 해지율 가정 가이드라인이 적용되면서 보험사마다 주요 상품의 보험료가 최고 30% 이상 급등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무·저해지 보험은 중도에 계약을 해지하면 환급금이 없거나 적은 대신 보험료가 저렴해 소비자들로부터 꾸준히 인기가 있었던 보험이다. 이젠 보험료가 오르면서 소비자들의 부담이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10일 보험업계에 따르면 이달 들어 주요 손해보험사들이 무·저해지 보험료를 일제히 인상했다. 지난해 금융당국이 새 회계기준(IFRS17) 가이드라인, 특히 무·저해지 보험의 해지율 등 계리적 가정 가이드라인을 발표한 데 따른 것이다.
이는 보험회사의 ‘고무줄 회계’ ‘실적 부풀리기’를 차단하기 위한 조치였다. 당시 일부 보험사가 무·저해지 상품의 해지율을 높게 가정해 실적을 부풀린다는 논란이 일었기 때문이다. 무·저해지 상품은 해지 환급금이 없거나 적어, 해지율을 높게 가정하면 도리어 보험사 이익은 늘어난다. 금융당국은 보험사들이 이런 낙관적 가정을 바탕으로 보험료를 낮춰 공격적으로 영업해왔다고 봤다.
예정 해지율을 낮추는 새로운 가이드라인이 적용되면서 보험료가 오르는 가운데, 보험사와 상품에 따라 인상률은 큰 차이를 보였다. 3대 진단비, 상해·질병 수술비 등 주요 담보가 포함된 간편심사보험 대표 상품 2종의 50·60대(대표 가입 연령) 남성 보험료의 경우 현대해상은 평균 7.8% 올린 것으로 나타났다. 이어 삼성화재가 6.3%, KB손해보험이 5.0%, DB손보가 4.1%, 메리츠화재가 1%를 인상했다.
같은 상품의 여성 보험료 기준으로는 DB손보가 7.6%, 현대해상이 6.1%, 삼성화재가 5.1%, KB손보가 4.4%를 각각 인상했다. 다만 메리츠화재는 오히려 보험료를 10% 인하한 것으로 나타났다.
40대 남성 기준 통합보험 보험료의 경우 KB손보는 전월 대비 무려 32.7% 인상했다. 이어 삼성화재(16.9%), DB손보(16.0%)도 두 자릿수 인상률을 보였다. 메리츠화재는 7.7%, 현대해상은 3.4% 인상했다.
어린이보험 남아(10세 기준) 보험료 인상률은 삼성화재(27.9%), DB손보(27.7%), KB손보(25.0%), 현대해상(16.4%), 메리츠화재(4.1%) 순으로 나타났다. 여아 보험료는 삼성화재(29.4%), DB손보(27.5%), KB손보(24.9%), 현대해상(20.4%), 메리츠화재(13.3%) 순으로 인상됐다.
보험업계에서는 그동안 낙관적이고 자의적인 해지율 가정을 적용해 온 보험사일수록 이번에 보험료를 대폭 올렸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보수적인 가정을 적용해온 보험사는 보험료 인상 폭이 작거나 오히려 인하한 상품도 있다”고 설명했다.
일각에서는 금융당국의 잇따른 규제가 보험료 인상으로 이어져 소비자의 부담을 높이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반면 보험사 간 출혈경쟁이 일어났던 무·저해지 보험 시장에서 이번 가이드라인 적용이 보험사 재무 건전성에 긍정적인 영향을 줄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해지율에 대한 보수적인 가정이 적용되면서 보험료 인상은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며 “중장기적으로 재무 건전성 개선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고 말했다.
전주영 기자 aimhig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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