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클리 리포트] 고도화되는 ‘꼼수 절세’… 국세청, 세무조사 강화나서
법인세 신고한 몇몇 연예인, 수억~수십억 원 세금 추징
법인 통한 세금 절감은 합법… 기획사 실질적 지원 없었다면
개인소득세로 신고-납부해야… 고소득 유튜버도 검증 대상
주소 허위 등록해 탈세 노려… “전담반 3배 늘려 끝까지 추적”
《국세청 ‘지능화된 탈세’와의 전쟁 세금을 줄이려 1인 기획사를 세우는 연예계 ‘꼼수 절세’ 사례가 늘면서 국세청이 집중 단속에 나서기로 했다. 유튜버, 인플루언서 등의 탈세 행위도 지능화돼 재정 부담이 가중될 것이란 우려가 커지고 있다.
배우 이준기는 최근 서울 강남세무서의 세무조사를 받고 9억 원 상당의 세금 추징을 통보받았다. 이 씨가 설립한 ‘제이지엔터테인먼트’와 기존 소속사 ‘나무액터스’ 사이의 거래 구조가 문제가 됐다. 이 씨는 나무액터스와 직접 계약하지 않고 본인이 설립한 제이지엔터테인먼트를 통해 자신이 벌어들인 돈을 받는 형태로 전속계약을 체결했다. 제이지엔터테인먼트는 이 씨의 연예 활동 수익을 법인 매출로 잡아 법인세를 내겠다고 신고를 했다. 하지만 국세청은 이를 개인 소득으로 보고 개인소득세를 납부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1인 기획사를 활용해 세금을 줄이려는 고소득 연예인들이 많아지면서 국세청이 소득세 신고 누락, 허위 경비 처리 등 탈세 정황에 대한 세무조사와 세금 추징을 강화하고 있다. 유튜버, 인플루언서 등 고소득자의 악의적 탈루 수법도 진화하면서 과세당국의 검증 역시 더욱 꼼꼼해지고 있다.
● 절세와 탈세의 경계선 놓인 1인 기획사
1인 기획사를 설립한 연예인의 탈세 의혹은 이뿐만이 아니다. 앞서 배우 이하늬와 유연석도 과세당국으로부터 각각 60억 원, 70억 원의 추징금을 부과받았다. 모두 소속사가 따로 있는데도 본인 또는 가족이 대표로 있는 1인 기획사를 거쳐 세금을 줄이려 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법인 매출 vs 개인 소득 세율 차이 지방소득세(세액의 10%) 별도 부과이들은 소속사와 직접 계약하는 대신 본인이 설립한 기획사를 통해 계약을 진행하고, 출연료로 벌어들인 수익은 ‘개인 소득’이 아닌 ‘법인 매출’로 처리해 세금 절감을 시도한 것으로 파악된다. 연예인들이 법인을 설립해 절세에 나서는 이유는 간단하다. 매년 수억 원에서 수십억 원에 이르는 소득에 부과되는 고율의 세금을 줄일 방안이 마땅치 않기 때문이다.
현행 세법상 과세표준 10억 원 초과 시 적용되는 개인소득세 최고세율은 45%(지방세 포함 49.5%)에 달한다. 반면 법인세는 과세표준 3000억 원 초과 구간에 매겨지는 최고세율도 24%(지방세 포함 26.4%)에 그친다. 연간 20억 원의 수익을 기준으로 하면 개인사업자는 49.5%의 세율을 적용받지만 법인으로 전환하면 실효세율이 20.9%로 줄어들 수 있다. 단순 계산만으로도 5억 원 이상의 세금을 절감하는 효과가 있는 셈이다.
법인을 통한 세금 절감 자체는 합법이다. 핵심은 ‘실질과세’ 원칙 준수 여부다. 국세청은 연예인이 1인 기획사를 세워 수익을 나눌 때 계약 형식보다 실질적 활동과 귀속 구조를 따지겠다는 방침이다. 기존 소속사와 새로 설립한 1인 기획사 간 계약이 이뤄졌다 해도 연예계 활동에 따른 수입이 사실상 연예인 한 명에 의해 이뤄졌고, 1인 기획사에서 연예인의 활동에 별다른 지원을 하지 않았다면 1인 기획사에서 발생한 ‘법인 매출’로 인정하지 않겠다는 의미다.
우병탁 신한은행 프리미어 패스파인더 전문위원은 “연예인이 설립한 신설 법인에 인적·물적 설비를 갖추지도 않고 법인세를 신고할 경우 세무조사 대상이 될 수 있다”며 “법률적으로 허용되지 않는 법인을 통해 세금을 줄이는 행위가 이뤄진다면 절세가 아닌 탈세로 여겨질 가능성이 커진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쟁점은 연예인이 벌어들인 소득이 개인의 것인지, 법인의 매출인지를 판단하는 기준에 있다. 세법상 이를 구분하는 기준은 크게 3가지다. △계약 당사자들이 누구를 계약 주체로 봤는지 △법인이 실재하며 연예인의 활동을 실질적으로 지원했는지 △개인에서 법인으로 계약 주체를 바꿀 만한 특별한 사유가 있었는지 등이다.
과세당국은 1인 기획사의 설립이 탈세 목적이었는지 면밀히 들여다보고 부적절한 탈루 혐의가 확인되면 즉각 추징에 나설 계획이다. 특히 1인 기획사 명의의 법인카드나 차량을 사적으로 사용하거나 실제로 근무하지 않는 가족에게 인건비를 지급한 뒤 이를 비용 처리한 정황 등도 중점적으로 살피는 것으로 알려졌다. 차량 구입비, 인건비 등의 비용은 세금을 계산할 때 빼주기 때문에 비용을 늘려 잡으면 세금 부담을 줄일 수 있다.
전문가들은 연예인들의 1인 기획사를 통한 절세가 적법하다는 판단을 받기 위해선 이를 뒷받침할 서류의 존재 여부가 관건일 것으로 보고 있다. 안원용 세무법인 다솔 변호사는 “연예인이 법인을 설립해 세금 절감에 나서는 것 자체는 아무런 문제가 없지만 신설 법인에서 해당 연예인의 활동을 지원하는 것이 전혀 없는데도 연예인 수익이 법인 매출로 잡힌다면 탈세로 판단될 가능성이 커진다”며 “기존 소속사에서는 이뤄지지 않았던 연예인에 대한 관리용역 등이 1인 기획사에서 제공됐다는 증빙서류 등이 있어야 ‘법인 매출’이라는 게 설득력이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 유튜버는 ‘주소 세탁’ 등으로 탈세
국세청은 연예인뿐 아니라 유튜버나 인터넷 방송 진행자(BJ), 모델 등 1인 미디어 기반의 고소득자 전반에 대한 세무 검증을 강화하고 있다. 지난해 11월 국세청이 공개한 재산 추적 조사 대상에도 유튜버와 인플루언서 등 25명이 포함됐다.
이들이 활용하는 대표적인 조세 회피 수법으로는 ‘주소 세탁’이 꼽힌다. 일부 유튜버는 서울에서 활동하면서도 ‘창업중소기업 세액감면’ 혜택을 받기 위해 경기 용인시 등의 공유 오피스에 허위로 사업자 등록을 했다. 용인시의 한 1300m²(약 400평)대 공유 오피스에는 1400개 사업자가, 인천 송도 내 비슷한 규모의 공유 오피스에는 1300여 개 사업자가 주소를 등록하기도 했다. 창업중소기업 세액감면으로 서울과 경기 성남, 수원 등 과밀억제권역을 제외한 지역에서 창업을 하면 소득세와 법인세를 50% 감면받는데, 이를 악용해 탈세에 나선 것이다.
유명인 관련 이슈에 몰려들어 사실 검증 없는 무분별한 폭로를 일삼는 이른바 ‘사이버 레커(렉카)’ 유튜버들도 여러 방식으로 탈세에 나서고 있다. 한 유튜버는 구글, 페이스북에서 외환으로 받은 광고 수익을 실제보다 적게 신고하고 탈루한 소득을 고가의 아파트 등을 매입하는 데 사용했다. 광고 수익 신고액이 증가한 해에는 가족을 직원으로 위장 채용해 인건비를 지급하기도 했다.
국세청은 탄핵 정국을 계기로 막대한 ‘슈퍼챗(후원금)’ 수익을 거둔 몇몇 정치 유튜버들이 수입 신고를 성실하게 진행하는지도 관찰할 방침이다. 유튜버가 반복적으로 영상 콘텐츠를 생산해 이를 통해 수익을 내면 사업자 등록을 해야 한다. 사업자로서 종합소득세를 신고할 때는 유튜브로 올린 광고 수입뿐만 아니라 슈퍼챗 등 후원금도 신고 대상이다. 슈퍼챗은 유튜브에서 제공하는 채팅을 통한 후원 기능이다.
일명 ‘엑셀방송’을 진행하는 BJ도 국세청의 조사 대상이다. 엑셀방송이란 여러 BJ를 출연시켜 선정적인 춤이나 포즈를 취하게 한 뒤 BJ별 후원금 순위를 엑셀 문서처럼 정리해 보여주는 방송이다. 일부 BJ는 이를 통해 연 수백억 원의 수익을 거두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 엑셀방송 운영자는 BJ에게 지급한 출연료를 부풀려 신고해 세금을 빼돌렸다. 해당 BJ와 짜고 거액의 출연료를 우선 지급한 뒤 일부를 돌려받는 방식이 사용됐다. 개인적으로 사용할 ‘별풍선(후원금)’을 대량 구매한 뒤 이를 업무상 경비로 처리하기도 했다.
국세청 관계자는 “허위 사업장은 직권 폐업 조치하고 부당 감면 사업자는 감면세액을 전액 추징하고 있다”며 “앞으로도 사업자의 거래 내역을 추적하는 등 주소 세탁으로 부당하게 감면받은 사업자를 발본색원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 2조8000억 원 넘어선 고액·상습 체납
고소득자들을 중심으로 한 고액·상습 체납은 좀처럼 감소하지 않고 있다. 국세청에 따르면 고액·상습 체납자 대상 징수액은 2022년 2조5000억 원에서 지난해 2조8000억 원으로 증가했다.
상속 재산을 숨겨두고 “돈이 없다”며 세금을 내지 않는 경우들이 많다. A 씨는 사망 전 고액의 부동산을 양도한 후 양도소득세를 체납했다. 자녀들도 상속을 포기한 탓에 과세당국은 체납액을 징수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A 씨의 예금계좌를 추적한 결과 고액 부동산의 양도 대금이 수백 번에 걸쳐 현금으로 인출되거나 타인의 계좌로 넘어간 사실이 포착됐다. 국세청은 현금인출기 폐쇄회로(CC)TV를 확보해 자녀들이 A 씨의 금융계좌에서 양도 대금을 현금으로 인출한 사실을 밝혀냈고, 현금 등 수억 원을 압류·충당할 수 있었다.
이 밖에도 부동산 증여 회피, 배당 후 폐업, 차명 계좌 활용 등 체납 방식은 점점 지능화, 고도화되고 있다. 체납자의 은닉 재산을 추적하기 위한 현장 공무원들의 잠복 및 수색 업무 강도도 높아지고 있는 만큼 사기 진작을 위해 포상금 지급 규정도 신설됐다. 최근 2년 연속 대규모 세수 펑크가 발생한 상황에서 고액 체납자의 조세 회피 행위를 적극적으로 차단해야 한다는 인식도 담겼다. 이에 따라 세무공무원이 세금 부과나 징수, 승소에 기여하면 징수금 또는 승소 금액의 10% 이내에서 1인당 연 2000만 원 한도로 포상금이 지급될 예정이다.
국세청 관계자는 “악의적이고 상습적인 체납자를 적발하기 위해 재산 추적 조사 전담반을 운영하는 세무서를 25개에서 73개로 대폭 확대했다”며 “은닉 재산을 끝까지 추적·징수해 조세정의와 공정과세를 구현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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