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산 못한 재개발 조합, 9000억 샜다

  • 동아일보
  • 입력 2025년 4월 2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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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산 단계 아파트 단지 전국 327곳, 사업 관련 소송 등에 마무리 안돼
잔여 자금 1조3880억→4867억원… 대부분 조합장 등 급여지급 사용
10년째 미뤄져 고의지연 의혹도… “조합원 부담 줄일 제도 개선 필요”

서울 서대문구 A아파트 단지는 재개발을 거쳐 2015년 10월 준공됐다. 재개발 조합은 2016년 10월 해산됐지만 조합의 자산과 부채를 정리하는 청산 작업은 10년째 진행 중이다. 재개발 사업 관련 소송 5건이 마무리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청산이 지연되면서 청산인과 감사 급여, 소송 비용 등으로 240억 원 이상이 지출됐다. 해산 당시 257억 원이었던 잔여 자금은 13억 원만 남은 상태다.

재건축·재개발 사업이 완료돼 입주가 끝난 뒤에도 조합 청산이 지연되면서 추가로 사용된 금액이 9000억 원을 넘는 것으로 나타났다. 조합원들이 돌려받을 수 있는 돈이 그만큼 줄어든 셈이다.

21일 더불어민주당 김영호 의원실이 국토교통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조합 해산 후 청산 단계인 아파트 단지는 전국에 총 327곳이다. 해산 당시 잔여 자금은 총 1조3880억 원이었으며 올 1월 기준 4867억 원이 남아 있었다. 청산 과정에서 9013억 원을 사용한 것이다.

해산은 법적으로 조합 활동을 끝내는 것을 말한다. 조합은 아파트 소유권 이전이 끝나면 1년 이내에 해산 총회를 열고 청산인을 선임해 재산 관계를 정리해야 한다. 해산 이후의 과정이 청산이다. 청산은 재건축·재개발 절차의 최종 단계다. 이를 통해 조합의 자산과 부채 등을 정리하고 남은 돈을 조합원에게 돌려주게 된다.

통상적으로 청산인은 조합장이 맡게 되고 정해진 급여를 받는다. 청산 과정이 늦어지면 그만큼 급여 지출이 늘어나게 된다. 이 때문에 청산인이 급여를 더 받으려고 의도적으로 청산을 미루는 것 아니냐는 논란이 불거지면서 청산인과 조합원 간 갈등으로 번지기도 한다.

지역별로는 서울의 미청산 조합이 156곳으로 가장 많았다. 서울 미청산 조합들은 해산 당시 9583억 원을 갖고 있었지만, 현재 2831억 원이 남았다. 6752억 원을 소진한 것이다. 서울 노원구 B재개발조합의 경우 진행 중인 소송이 6건 있어 청산이 불가능하다면서 4년째 청산을 진행하고 있다. 청산인은 월 700만 원을 받고 있다. 205억 원이던 잔여 재산은 이제 14억8000만 원뿐이다.

부산시에서는 46개 조합이 622억 원을 보유한 상태로 청산 절차에 돌입했지만, 현재 남은 자금은 171억 원이다. 451억 원을 사용한 것이다.

고준석 연세대 상남경영원 주임교수는 “조합 청산이 지연되며 조합원들의 금전적 부담이 가중되고 있다”며 “추후 다른 재건축·재개발 예정 단지들도 정비사업을 망설이게 하는 이유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도시정비법이 개정되면서 지난해 6월부터 국토부와 지방자치단체는 청산이 진행 중인 조합을 관리 감독하고 필요하면 수사기관 고발 조치까지 할 수 있게 됐다. 이전에는 정부와 지자체가 청산 절차에 개입할 근거가 없어 조합원이 개별 소송을 제기해야만 고의 지연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다.

그런데도 청산 지연 문제가 끊이지 않자 추가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이달 초 재건축·재개발 사업 정보를 통합해 공개하는 시스템을 만들고, 사업 완료 후 조합의 의무 자료 보관 기간을 현행 5년에서 10년으로 연장하는 내용의 도시정비법 개정안이 국회에 발의됐다. 조합 청산 과정에 대한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해 고의 지연 문제를 예방하자는 취지다. 개정안을 대표 발의한 김 의원은 “고의로 청산을 지연하며 부당하게 챙긴 조합원의 돈을 환수할 수 있는 방안도 정부가 시급히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재개발 조합#청산#청산 지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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