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일 서울 종로구 포시즌스호텔에서 열린 ‘기술사업화 비전 선포식’. 사진 왼쪽부터 유상임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 노경원 우주항공청 차장, 박용순 중소벤처기업부 기술혁신정책관,박현영 질병관리청 국립보건연구원장, 오유경 식품의약품안전처장, 이주호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과기부 제공
미국, 중국을 비롯한 전 세계 국가 간 기술 패권 경쟁이 격화하는 가운데 한국 정부도 미래 기술 혁신을 위한 ‘국가 기술사업화 비전’을 선포했다. 정부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를 중심으로 교육부, 중소벤처기업부 등 범부처가 출연연구기관을 기술사업화 거점으로 육성해 ‘전주기 지원 체계’를 구축하기로 했다. ‘K과학기술’이 연구소 안에만 머무를 것이 아니라 기술주권 확보와 경제 성장 동력으로 직결돼야 한다는 것이다.
유상임 과기부 장관은 30일 서울 종로구 포시즌스호텔에서 열린 ‘기술사업화 비전 선포식’에서 “정부의 연구개발(R&D) 투자 규모 대비 기술사업화 성과가 저조하다”며 “급변하는 통상 환경, 저성장 등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연구 성과가 산업 현장으로 이어지는 기술사업화 생태계 조성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기술사업화’란 연구개발을 통해 확보한 기술을 시장성 있는 제품이나 서비스로 전환해 경제적 가치를 창출하는 것을 말한다.
●공공연구기관 기술이전 실적 수년간 정체…‘기술사업화’ 전주기 지원 방안 마련
과기부 등 관계 부처는 이날 논의를 시작으로 ‘국가 R&D 기술 사업화 전략안’을 수립할 계획이다. 우선 최근 한국원자력연구원 컨소시엄이 원자력 종주국인 미국에 66년 만에 연구용 원자로를 수출하는 데 성공했듯이 ‘기술사업화 성공 모델’을 만들기 위한 민관합동 협의체를 구성한다. 또한 △출연연 기술사업화 거점 육성 △전 주기 기술창업 지원 △딥테크 연구소 기업 500개 육성 △ 공공기술 사업화 펀드 조성 △연구자 상여금 등 인센티브 강화 △연구자 평가제도 개선 및 겸직 허용 △ ‘기술개발인의 날’ 법정기념일 지정 등을 추진할 방침이다.
이날 비전 선포식에 10여개 관계 부처가 함께 나선 것은 정부 주도로 전략 기술 지원을 늘리고 있는 미국, 중국, 일본 등 대비 국내 생태계가 취약하다는 진단에 따른 것이다. 지난해 미국 상공회의소 조사에 따르면 지식재산(IP) 자산사업화 부문 평가에서 한국은 55개국 중 28위에 그쳤다. 기술 이전 건당 기술료는 3년째 3300만~3500만 원 수준으로 정체돼 있고, 1억 원 이상 중대형 기술료 징수 건수도 2019년부터 2023년까지 200건 대에 그치고 있다. 2023년 국내 142개 공공연구소와 대학 133개가 낸 기술이전수입은 2482억 원, 기술이전 건수는 1만2076건으로 전체 개발 기술 가운데 기술이전률은 30.2%에 그쳤다. 기술이전률은 2021년에 처음으로 40%를 넘겼지만 2022년부터 매년 감소세다.
출연연 등 공공연구소의 신규 확보 특허·실용신안 3만3000여 건 가운데 국내 특허가 82.5%에 달하는 등 국내 중심 특허 출원에만 쏠리는 점도 문제로 지적된다. 연구성과가 국내 특허에만 쏠려 고부가가치 기술 창출에 한계가 뚜렷하기 때문이다. 공공연구소의 기술사업화 평균 전담 인력이 2023년 3.04명에 불과할 정도로 지원조직도 미약한 실정이다.
●국내 연구자들 현장 의견 수렴… “연구자 동기 부여할 인센티브 강화”
과기부는 이번 기술사업화 전략을 위해 출연연 연구자들의 현장 의견도 여러차례 청취했다. 일선 연구 현장에선 기술사업화 참여에 소극적인 이유에 대해 “동기 부여가 되지 않는다”는 의견을 쏟아낸 것으로 전해졌다. 창업시 겸직휴직 규정이 마련돼 있으나 보수적인 기관 분위기와 인력 유출 우려로 겸직이나 휴직 승인을 받기가 매우 어렵고, 2016년 소득세법 개정으로 직무발명보상금을 근로소득으로 변경하면서 더욱 위축됐다는 것이다. 직무발명보상금은 연구자가 업무 과정에서 발명한 ‘직무발명’에 대한 권리를 회사가 이전받고 그 대가로 연구자에게 지급하는 보상금인데, 연 700만 원 이상 금액은 근로소득으로 과세하고 있다. 2023년 기준 평균 직무발명보상금 소득은 1967만 원이다.
지난해 촉매 기반 탄소저감기술을 개발, 미국 엔지니어링 기업 KBR에 역대 최대 규모의 기술 이전을 성공시킨 이대훈 한국기계연구원 반도체장비연구센터 책임연구원은 “기술 개발로 얻는 수익에 대해 근로소득으로 과세하다보니 5000만 원 규모의 기술이전 성과를 내면 약 2000만 원을 세금으로 내야 한다”며 “이렇다보니 연구자 입장에선 업무 부담만 가중되는 ‘기술사업화’를 해야 할 유인이 떨어지는 것이 사실”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정부가 기술사업화 성과를 내려면 결국 국내 연구자들이 기술사업화에 도전하고 싶은 여건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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