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용 한국은행 총재(사진)가 향후 선진국처럼 기준금리가 ‘제로(0)’ 수준에 접근할 수 있다며 양적완화(QE) 등의 비전통적인 통화정책 도입에 대해서도 고민을 시작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올해 1분기 경제성장률(―0.2%)이 마이너스를 나타내는 등 우리 경제가 저성장 국면에 본격 진입한 가운데 기존의 통화정책이 앞으로 효율적이지 않을 수 있다는 판단에 따른 지적으로 풀이된다.
이 총재는 30일 한은과 한국금융학회가 개최한 ‘우리나라 통화정책 수단의 운용 과제 및 시사점’ 정책 심포지엄 환영사에서 “우리 경제는 저출산·고령화 심화, 잠재성장률의 추세적 하락 위험에 직면해 있다”며 “한국도 선진국처럼 정책금리가 제로 하한 수준에 근접하게 되면 양적완화와 같은 대차대조표 확대 정책을 도입할 수 있을지, 도입하는 것이 바람직한지 등을 고민해야 할 시점”이라고 말했다. 이어 “만약 양적완화를 활용하기 어렵다면 보완할 수 있는 대체 수단이 무엇인지 논의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양적완화는 경기 부양을 위해 중앙은행이 국채 등을 대규모로 매입해 시장에 돈을 푸는 비전통적 통화정책 수단이다. 보통 기준금리가 제로(0)에 가까워져 더 이상 금리 인하로 경기를 부양하기 힘든 선진국의 중앙은행들이 사용해왔다. 한국은 글로벌 금융위기 등의 상황에서도 양적완화 없이 기준금리 조정을 활용해 대응해 왔다.
이 총재는 “한은도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실리콘밸리은행(SVB) 사태 등 몇 번의 금융위기를 겪으며 기존 시스템을 보완하기 위한 노력을 지속해 왔다”면서도 “이제는 일시적 보완을 넘어 우리 경제를 둘러싼 통화정책 여건의 중장기 구조적 변화를 고려해 통화정책 운영체계를 어떻게 발전시켜 나갈 것인지 고민해야 할 시점이 됐다”고 강조했다.
특히 한은은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외환보유액을 확충하고 과도한 환율 변동성을 완화시키는 데 집중해 온 공개시장운영 정책도 변화가 필요하다고 보고 있다. 2010년대 중반 이후 경상수지 흑자가 줄어드는 추세인 데다 서학개미 등 거주자들의 해외 증권 투자가 늘며 수급 여건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한은은 환매조건부채권(RP) 매입 정례화를 추진할 계획이다. 한은이 은행들이 보유한 채권을 일정기간 사들여 시중에 단기 유동성을 공급하는 것이다.
이날 심포지엄에서 ‘주요국 대차대조표 정책 및 시사점’을 주제로 발표를 맡은 최동범 서울대 경영학과 교수는 “주요국의 사례를 보면 정책금리가 제로금리에 도달하면서 양적완화 시행 등이 불가피했던 측면이 있다”며 “자산매입 정책의 최적 형태나 효과는 각국의 경제구조나 금융시장 환경에 따라 상이하기 때문에 다양한 사전 연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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