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달에만 외환보유액이 50억 달러 가까이 줄어들며 시장의 심리적 저항선인 4000억 달러를 밑돌 것이란 우려가 커지고 있다. 미국의 관세 전쟁으로 원-달러 환율이 급등하면서 국민연금의 외환스와프 수요가 급증하고 금융기관의 외화예수금도 줄어든 결과다. 한국은행은 원-달러 환율이 하락세에 돌입한 만큼 외환보유액이 4000억 달러를 밑돌 가능성은 크지 않다는 입장이다.
8일 한국은행이 발표한 ‘2025년 4월 말 외환보유액’에 따르면 지난달 외환보유액은 3월 말 보다 49억9000만 달러 줄어든 4046억7000만 달러였다. 지난해 4월(59억9000만 달러) 이후 1년 만에 가장 큰 감소폭이다. 잔액 기준으로는 2020년 4월(4049억8000만 달러) 이후 5년 만에 최저 규모다.
앞서 이창용 한은 총재는 지난해 12월 기자설명회에서 “외환보유액이 4100억 달러 밑으로 내려가는 정도는 아니다”라고 언급한 바 있다. 하지만 불과 넉 달 만에 외환보유고의 1차 마지노선을 하회하게 된 것이다.
외환보유액이란 중앙은행이나 정부가 국제수지 불균형, 외환시장 불안정 등에 사용할 수 있는 자산을 뜻한다. 긴급 상황에 대응하기 위한 비상금 성격의 자금이라 ‘경제 안전판’으로 불린다. 외환보유고는 비(非) 기축통화 국가들의 지급 능력을 평가하는 지표로도 활용된다.
한은은 국민연금과의 외환스와프(Swap) 거래, 금융기관 외화예수금 감소 등이 겹치면서 외환보유액이 감소했다고 설명했다. 원-달러 환율이 4월 한 때 1480원선까지 치솟았는데, 국민연금 입장에선 해외 자산을 매입하는 과정에서 미 달러가 추가로 필요하게 된 것이다.
국민연금은 연금 자산을 운용하는 과정에서 해외 자산을 매입할 때 필요한 미국 달러를 한은에서 빌려 쓰고 나중에 되갚는다. 국민연금 같은 ‘큰 손’이 시장에서 미 달러를 조달하면 원-달러 환율이 급등해 외환 시장 전반이 불안정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앞서 한은과 국민연금은 지난해 650억 달러 한도 내에서 미 달러를 언제든 빌려쓸 수 있는 스와프 계약을 맺은 바 있다.
황문우 한은 외환회계팀장은 “국민연금과의 외환스와프 거래가 외환보유액 감소에 가장 큰 영향을 미쳤다”며 “재무제표를 관리하기 위해 1분기(1~3월) 중 기업들이 예치해둔 외화예수금이 다시 빠져나간 점도 외환보유액이 줄어든 배경”이라고 분석했다.
시장에서는 외환보유액이 4000억 달러를 하회할 것이라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오지만, 한은은 그럴 가능성이 크지 않다는 입장이다. 황 팀장은 “외환스와프 만기가 돌아오면 국민연금에서 다시 자금이 (정부로) 돌아오는 데다, 금융기관 예수금 감소도 계절적 특성에 따른 것이어서 외환보유액이 4000억 달러 아래로 떨어질 가능성은 낮다”고 설명했다.
한편 3월 말 기준 한국의 외환보유액 잔액은 세계 10위로 2월보다 한 단계 떨어진 것으로 나타났다. 중국이 3조2407억 달러로 1위를 유지했고 일본(1조2725억 달러), 스위스(9408억 달러) 등이 그 뒤를 이었다. 지난달 10위였던 독일이 8위(4355억 달러)로 올라선 점도 눈에 띈다. 독일 외환보유액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금 가격이 오른 점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풀이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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