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토종 인공지능(AI) 모델이 경찰 수사를 돕는 데 활용될 예정이다. 앞으로 정부 부처와 금융권 등 다양한 분야에서 토종 AI 모델의 쓰임이 늘어날 것이란 기대가 커지고 있다.
12일 재계에 따르면 경찰청은 올 초부터 LG 인공지능(AI) 모델 엑사원을 활용해 ‘AI 수사 지원 서비스’ 개발에 나선 것으로 확인됐다. 경찰청은 시스템통합(SI) 업체 LG CNS를 통해 올 연말부터 AI 수사 지원 서비스를 일선에 도입할 계획이다.
AI 수사 지원 서비스는 현장 경찰관들을 돕는 AI 모델이다. 작성한 조서를 요약하거나 범죄 유형별로 유사한 사건이 어떤 게 있는지 보여 주기도 한다. 현장 경찰관들이 사건 수사를 할 때 어떤 점을 유의해야 할지 수사 쟁점을 분석하는 기능도 들어갈 예정이다. AI 수사 지원 서비스를 쓰면 수사문서 초안을 만들어 주기도 한다.
쓰임새 점점 늘어나는 토종 AI
출시 5년차를 맞은 LG 엑사원이 갈수록 고도화하며 공공·금융 등으로 생태계 외연을 본격 확장하고 있다. 초기에는 주로 사내 업무용으로 활용돼 오다가 성능, 보안에서 충분히 검증받았다는 평가를 받으며 외부 도입 사례가 늘어나고 있다. ‘돈 잡아먹는 하마’로 불리며 국내 기업들이 섣불리 뛰어들지 못하는 AI 모델 분야에서 엑사원이 성과를 내기 시작하며 수익을 낼 수 있을지도 주목된다.
LG는 행정안전부의 AI 플랫폼 사업 수주도 노리고 있다. 각 정부 기관에 AI를 도입해 행정 효율을 높이는 프로젝트다. 앞서 행안부는 2023년 LG CNS와 엑사원을 기반으로 정책 보고서, 연설문 등 공문서를 만드는 예비 사업을 진행한 바 있다. 이를 통해 행안부 내부적으로 시범 서비스를 만들어 활용하고 검증을 마친 상태다.
금융권에서도 엑사원 활용 시도가 이어지고 있다. LG CNS는 NH농협은행, 미래에셋생명 등 주요 금융 업체로부터 인공지능 전환(AX) 사업을 수주해 엑사원을 활용한 업무 고도화를 추진하고 있다. 엑사원은 각 금융사 임직원들이 내부 데이터를 분석하거나 반복 업무를 자동화하는 데 활용될 전망이다. 실제 올 1분기(1~3월) LG CNS의 AI·클라우드 부문 사업 매출은 7174억 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30.1% 늘었다.
LG 엑사원은 LG그룹에서 먼저 도입됐다. 지난해 12월 기업용 AI 에이전트 ‘챗엑사원’을 도입해 국내 LG 임직원 절반인 4만 명 이상이 가입했다. 또 최근에는 LG 디스플레이가 엑사원 3.5 버전을 기반으로 개발한 ‘AI어시스턴트’를 업무에 활용하기 시작했다. 화상회의 자동 통번역, AI 회의록 자동 작성 등을 지원해 업무 효율성을 높이고 있다. LG CNS 관계자는 “엑사원은 기업들이 중시하는 보안과 안정성에 강점이 있고, 한글 지원 능력과 데이터 인식 및 처리 능력이 뛰어나 수요가 높다”고 했다.
AI 파운데이션 투자 및 지원 늘려야
LG 엑사원이 내부용을 넘어 외부에서도 찾는 AI 모델이 되면서 ‘토종 AI’에 대한 기대감도 커지고 있다. LG는 네이버와 함께 국내에서 자체 AI 파운데이션(기초) 모델을 개발하는 몇 안 되는 기업이다. 파운데이션 모델은 챗GPT나 제미나이와 같은 AI 애플리케이션(앱)의 근간이 되는 밑바탕으로, 장기간 대규모 투자가 필요한 영역이다. 특히 미국, 중국 등 글로벌 기업과의 경쟁이 치열해 투입 대비 성과를 내기 어렵다.
LG는 2020년 12월 AI 연구원 출범 이후 2021년 12월 첫 AI 모델인 ‘엑사원 1.0’을 선보였고 지난해 8월 3.0 버전을 내놨다. 이어 작년 말 공개한 엑사원 3.5는 미국 AI 연구기관인 에포크 AI의 ‘주목할 만한 AI 모델’ 중 유일하게 한국 모델로 선정됐다. 또 LG가 올 3월 선보인 추론형 AI 모델 ‘엑사원 딥’은 중국 딥시크보다 수학 문제를 푸는 능력이 뛰어나 주목받기도 했다. 한국어로 치른 2025학년도 수능 수학 영역에서 엑사원 딥은 94.5점, 딥시크 ‘R1’은 89.9점을 받은 것이다.
다만 글로벌 정보기술(IT) 기업들과 경쟁을 이어 가기 위한 투자 확대 및 지원이 시급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구글 등 빅테크들은 AI에 매년 수십, 수백조 원의 투자를 쏟는 데 비해 LG의 투자 규모는 훨씬 작다는 평가다. 배경훈 LG AI연구원장도 3월 미국 캘리포니아주 새너제이에서 열린 엔비디아 연례 개발자 행사에서 “엑사원 딥을 H100(엔비디아 AI 칩) 512장으로 개발했다”며 “H200이 2000장만 있어도 모든 방면에서 R1을 뛰어넘는 서비스 AI를 개발할 수 있다”고 했다.
재계 관계자는 “단일 기업의 투자만으로는 글로벌 빅테크와 경쟁하는 데 한계가 크다”며 “AI에서도 ‘소버린(주권)’, 안보가 강조되는 만큼 국가 차원의 지원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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