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태 한국중소조선공업협동조합 이사장 동일조선㈜·코르웰 대표이사1948년 ‘조선선박공업협회’로 출발한 한국중소조선공업협동조합은 대한민국 조선 산업과 함께 80년의 세월을 걸어왔다. 격동의 한국 근현대사 속에서 중소 조선업계의 버팀목 역할을 해온 우리 조합은 오늘날 75개 조합원사와 함께 새로운 도전에 직면해 있다.
변화하는 글로벌 해양 환경 속에서 우리가 선제적으로 준비해야 할 전략적 과제들은 명확하다. 80년 역사의 무게감을 안고 미래를 위한 세 가지 핵심 전략을 제시한다.
첫 번째 전략: 선수금환급보증 시스템의 근본적 개선
중소 조선소가 해외 수주에서 가장 큰 벽에 부딪히는 지점이 선수금환급보증(RG) 문제다. 선박 건조비의 80%에 달하는 선수금을 보증받지 못하면 아무리 우수한 기술력을 보유해도 계약이 무산된다.
지난해 12월 금융위원회로부터 외부 전문기관의 사업성 검증을 거쳐 KDB산업은행 또는 IBK기업은행 심사를 통해 RG를 발급하고 신용보증기금이나 K-SURE가 특례 보증을 제공하는 3단계 시스템을 확정받았다.
하지만 현실은 냉혹하다. 가장 큰 문제는 영세 조선사들이 매출액이 적어 보증서조차 발급받지 못한다는 점이다. 이들은 RG를 받지 못해 자체 보증을 서야 하는 상황에 내몰리고 있다.
한국수출입은행의 초기 설립 이념을 되새겨보자. 수출 진흥을 위해서는 다소의 손실이 발생하더라도 정부가 뒷받침해주겠다는 철학이었다. 정부의 수출 지원 의지가 절실한 시점이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보증기관의 독점 구조다. 현재 보증기관이 SGI서울보증 한 곳뿐이라는 현실은 시대적 흐름과 전혀 맞지 않는다. 산업 특례가 필요한 여러 산업군이 등장하고 있는 상황에서 서울보증에서 보증을 받지 못하면 사업 자체가 불가능한 구조는 명백한 모순이다. 추가적인 보증기관 설립은 선택이 아닌 필수다.
두 번째 전략: 북방항로 시대를 대비한 부산항 인프라 구축
기후변화와 러시아의 북방항로(NSR) 개발 계획에 주목해야 한다. 필자는 2022년 12월 ㈜북방항로링크스를 설립하며 이 거대한 변화에 대비하고 있다. 북방항로는 기존 수에즈운하 경로 대비 최대 10일의 항해 시간을 단축시키며 연료비 절감과 탄소 배출 저감 효과를 가져다준다.
베링해협을 거쳐 로테르담까지 최단 거리로 연결하는 이 국제항로가 본격 개시되면 부산항은 동북아 물류 허브로서의 지위를 강화할 수 있다. 정부 차원에서 ‘북방항로 개발지원 특별법’ 제정과 같은 법제도 개선이 필요하고 부산항 인근에 NSR 전용 부두와 선석 및 대형 수리조선소 등 항만 인프라 구축에 박차를 가해야 한다.
북방항로는 단순한 물류 루트가 아니다. 해운, 조선, 에너지 산업 전반에 막대한 파급효과를 미칠 게임 체인저다.
세 번째 전략: 대형 수리조선소 조성을 통한 MRO 사업 확대
북방항로 개시와 미 해군 함정 유지보수(MRO) 사업 확대는 우리에게 또 다른 기회를 제공한다. 바로 대형 선박 수리조선소 조성이다. 한화오션 등 대형 조선소들이 MRO 사업을 수행하고 있지만 기존 신조선 물량으로 인해 즉시 수리가 어려운 상황이며 사업성도 충분하지 않아 중소 조선소들의 적극적 참여가 필요하다.
연간 수천 척의 컨테이너선과 미 해군 함정 MRO 수주 유치, 국내 MRO 산업 활성화와 고용 창출, 미 해군의 안정적 수리 거점 제공을 통한 한미동맹 강화까지 기대 효과는 상당하다. 이를 위해서는 정부와 지자체가 MRO 조선소를 국가 기간산업으로 지정하고 부지 확보와 시설 투자에 대한 행정·재정적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
국방부, 산업부, 해수부 등 관련 부처 간 긴밀한 협업을 통한 전략 수립도 필수다. 이는 대한민국이 글로벌 해양 강국으로 재도약할 수 있는 전략적 기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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