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수-수출 부진에 관세 압박 겹치며
한국은행, ‘0%대 성장률’ 공식화
LG-SK-롯데 등 대기업 계열사 몸살
현대면세점, 창립 이후 첫 희망퇴직
올해 들어 업종을 가리지 않고 주요 기업에서 희망퇴직이 줄을 잇고 있다. 국내외 주요 기관이 한국의 경제성장률을 0%대로 진단하는 등 불황의 그늘이 짙어지며 허리띠를 졸라매려는 기업들의 궁여지책으로 풀이된다. 한국 경제의 버팀목인 수출은 물론이고 내수까지 동반 부진한 가운데 미국 정부의 전례 없는 관세 압박까지 겹치면서 새로 출범한 정부는 시작부터 거친 파고에 직면했다.
4일 전자업계에 따르면 LG디스플레이는 이달 들어 생산직 근로자를 대상으로 희망퇴직을 접수하고 있다. 지난해 12월에는 사무직을 대상으로 5년 만에 희망퇴직을 실시하기도 했다.
부동산 경기 침체와 중국산 철강의 저가 밀어내기로 악재를 맞고 있는 철강업계에도 찬바람이 불고 있다. 올해 3월 비상 경영 체제에 돌입한 현대제철은 전체 임원 70여 명의 급여를 20% 삭감한 데 이어 4월 희망퇴직 신청을 받았다. 사업을 시작한 지 39년 만에 굴착기용 무한궤도 사업을 접기 위해 중기사업부 매각도 추진 중이다. SK그룹 역시 올 3, 4월 SK플래닛과 SK시그넷, 원스토어 등 자회사들의 희망퇴직 신청을 받았다.
소비 심리 위축에 따른 내수 침체로 유통업계도 몸살을 앓고 있다. 현대면세점은 창립 이래 최초로 올 4월 희망퇴직을 실시했다. 국내 최대 멀티플렉스인 CJ CGV도 올해 초 4년 만에 희망퇴직 신청을 받았고 총 80명이 회사를 떠났다. 신세계그룹 이마트는 1993년 창사 이래 처음으로 지난해 3월과 12월에 전사 희망퇴직을 실시했다. 롯데그룹의 롯데웰푸드도 올 4월 희망퇴직을 시행했고, 이커머스 회사 롯데온도 지난해에만 2번의 희망퇴직을 단행했다.
주요 기업들에서 줄줄이 이어지는 희망퇴직은 올해 대내외 환경 악화로 한국 경제가 위기를 맞을 것이란 전망이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은행은 최근 올해 한국의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기존 1.9%에서 0.8%로 대폭 낮췄다. 지난달 국내외 41개 기관이 전망한 올해 한국 경제성장률 평균치는 0.985%로 0%대에 그쳤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의 관세 조치로 수출도 악화일로를 걷고 있다. 한국 최대 수출국인 미국 수출이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지난달 8.4%나 추락한 가운데 전체 수출이 같은 기간 1.3% 떨어지며 4개월 만에 역성장했다.
내수와 수출이 동반 부진하면서 고용시장도 얼어붙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4분기(10∼12월) 일자리 수는 2090만2000개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5만3000개 늘어난 데 그쳤다. 늘어난 일자리 수가 20만 개를 밑돈 건 관련 통계를 집계한 2018년 이후 처음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당시에도 평균 50만 개씩 늘어난 일자리가 급격히 꺾인 것이다. 특히 한국 경제의 허리 격인 40대 근로자 일자리가 8만4000개 줄어들었다. 석병훈 이화여대 경제학과 교수는 “한국 경제를 둘러싼 대내외 불확실성으로 기업의 투자가 위축되고 고용마저 얼어붙고 있는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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