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기술은 전체 산업구도 바꾸는것… 곳곳에 잘 스며들게 해야”

  • 동아일보
  • 입력 2025년 6월 6일 01시 4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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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시대] 이재명 대통령에게 바란다 〈2〉 이정동 서울대 공대 교수
새 정부 정책, 창조적 파괴에 맞춰야… AI정책은 발전 아닌 활용에 중점
새 씨앗 뿌리는 마음으로 시작하길
中, 장기성장 정책 세우고 전폭 지원… 주변국 산업 흡수하는 블랙홀 변신
우리 정부도 정부 다운 역할 찾아야

이정동 서울대 공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서울대 연구실에서 동아일보와 인터뷰를 갖고 “한국의 넓은 산업 기반에 인공지능(AI) 기술을 접목시키는 데 성공한다면 우리에게도 희망이 있다”고 말했다. 신원건 기자 laputa@donga.com
이정동 서울대 공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서울대 연구실에서 동아일보와 인터뷰를 갖고 “한국의 넓은 산업 기반에 인공지능(AI) 기술을 접목시키는 데 성공한다면 우리에게도 희망이 있다”고 말했다. 신원건 기자 laputa@donga.com
“인공지능(AI) 기술 고도화보다 중요한 것은 AI를 각 산업에 잘 스며들게 하는 것입니다.”

이정동 서울대 공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최근 동아일보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이 교수는 “정책의 방점을 ‘AI의 발전’이 아니라 ‘AI의 활용’에 찍어야 한다”며 “한국의 넓은 산업 포트폴리오에 AI를 접목하고 기초과학에 투자하면 우리에게도 희망이 있다”고 강조했다.

이 교수는 서울대 공대에서 학사, 석사, 박사 학위를 받고 서울대 공학전문대학원에서 기술경영경제정책전공 교수로 재직 중이다. ‘축적의 시간’과 ‘최초의 질문’ 등 저서를 통해 한국 산업 혁신의 방향성을 제시했다는 평가를 받았으며 문재인 정부에서 대통령 경제과학특별보좌관을 지내기도 했다.

―새 정부가 펴야 하는 산업 및 과학기술 정책의 방향성은 무엇인가.

“‘창조적 파괴’가 정책의 근간이 돼야 한다. 새로운 아이디어, 기업이 생겨나고 낡고 효율성이 떨어지는 산업이 ‘새살’로 바뀌는 역동적인 환경을 산업 생태계에 조성해야 한다. 새 산업이 성장하는 과정은 인내의 시간이다. 내가 지금 씨를 뿌려서 후임자, 또 그 후임자 대에서 성과를 낸다는 각오가 필요하다. 하지만 ‘소나기부터 피하고 보자’는 생각을 하면 산업을 망친다.”

―단임제 정부라면 눈앞의 일부터 챙기는 건 어쩔 수 없는 것 아닌가.

“‘리더의 마인드’가 필요하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돌 하나 더 놓겠다는 마음가짐으로 정책을 펴야 한다. 일본은 ‘잃어버린 30년’ 동안 크고 작은 부양책을 20번 넘게 썼다. 그동안 일본의 산업 근간이 망가졌다. 비록 (대통령 임기가) 5년밖에 안 되더라도 50년 앞을 내다보고 돌을 놓겠다는 마음가짐이 중요하다.”

―윤석열 정부의 연구개발(R&D) 예산 삭감의 여파는 어떠한가.

“비유하자면 누군가 ‘한국의 성장 잠재력을 잘라라. 아킬레스건을 알려줄 테니 정확하게 수술해라’라고 지령을 내린 것처럼 정밀 타격을 줬다. 예산 삭감 이후 재계약이 안 된 ‘포닥(박사 후 연구원)’ 수가 집계조차 되지 않는다. 지금 와서 예산을 복구해도 무용지물이다. 공장은 반년 정도 스위치를 껐다가 켜도 다시 바로 가동할 수 있지만 연구는 다르다. 완전 ‘생짜’로 다시 해야 된다.”

―중국의 산업 기술 발전이 가파르다.

“중국은 장기 성장 정책을 세우고 전폭적인 지원을 해왔다. 전략 산업을 확실하게 지정하고 충분한 인센티브를 부여했다. 그 결과 중국은 이제 블랙홀처럼 주변국의 산업 생태계를 빨아들이고 있다.”

―오랫동안 한국에서 혁신기업이 배출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인가.

“한국 기업들 중엔 ‘스케일업(Scale up)’하는 기업이 없다. 작은 성과에서 시작해 비용을 투자하고 성공과 실패의 과정을 거쳐 성과를 점점 발전시켜 나가는 과정이 스케일업이다. 9999번 실패하더라도 1번 성공하면 결실을 얻을 수 있다. 하지만 실패를 감당하려 하지 않는다. 실패는 곧 책임 소재와 비용의 문제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대기업일수록 더 심하다.”

―한국의 기업가 정신이 퇴보하고 있다고 보나.

“외환위기 영향일지 모르겠지만 점점 기업의 의사결정이 단기화되고 수익 중심으로 변하고 있다. 기업가의 시대에서 최고재무책임자(CFO)의 시대로 넘어가면서 한국 산업이 전반적으로 보수화됐다.”

―벤처캐피털(VC)과 금융회사들도 제 역할을 못 하고 있나.

“최근 통계를 살펴보면 VC 투자는 초기 벤처가 아니라 거의 성공한, 또는 성장이 보장된 벤처에만 투자하고 있다. 그건 벤처가 아니다.”

―혁신기업을 만들어 내기 위한 조건은 무엇인가.

“대체 불가능한 것을 찾아 나서야 한다. 우리가 1번부터 20번까지 하고 있는데, 글로벌 기업들은 1번부터 100번까지 하고 있다고 가정해 보자. 이 상황에서 글로벌 주도권을 잡으려면 101번, 102번이 뭔지를 찾아야 한다. 하지만 다들 21∼100번 중에서 찾고 있다. 이럴 때일수록 기초과학에 투자해 예상치 못한 발전의 씨앗들을 키워야 한다. 한국은 앞선 세대의 피와 땀으로 만든 넓은 산업 포트폴리오를 갖고 있다. 포트폴리오가 넓다는 건 앞으로 새 기술이 생길 가능성도 많다는 의미다.”

―산업 혁신을 위해 정부나 정치권은 무엇을 해야 하나.

“혁신과 관련해서는 정부보다 국회가 더 많은 역할을 해야 한다. 민주주의 절차에서 합의를 이루라고 만든 공간이 국회인데 막상 그런 논의가 진행되지 않고 있다. 혁신이 생기려면 창조적 파괴가 계속 일어나야 한다. 규제 완화 등을 통해 창조의 길을 터주는 것은 물론이고 그로 인해 밀려나는 사람들이 새 길을 찾도록 해주는 것도 중요하다.”

―AI 발전을 위해 필요한 정책은 무엇인가.

“AI의 속성은 과거 철도, 전기 등과 같다. 기술 자체가 중요하다기보다 기술이 각 산업에 침투해 산업의 구도 전체를 바꾼다는 게 핵심이다. AI 시대에 선진국이 되려면 AI 기술 자체를 고도화하는 것보다 AI가 각 산업 분야에 빨리 스며들도록 하는 게 중요하다. 우리가 구축해 놓은 넓은 산업의 포트폴리오 안에서 AI를 어떻게 잘 활용하느냐를 고민하는 게 우선이다. 그러면 그 어떤 나라보다 새로운 걸 만들어낼 수 있는 잠재력이 높은 나라가 한국이라고 생각한다.”

―새 정부에 바라는 모습은….

“매번 정부가 기업들을 불러다 회의를 한다. 만약 워싱턴에서 실리콘밸리의 기업들을 불러 모으면 그들이 오나? 정부는 정부의 역할을 찾아야 한다. 기초과학 발전과 같이 나중에 기업이 가져다 쓸 씨앗을 심는 것, 차마 기업이 신경 쓰지 못하는 영역을 먼저 나서서 열심히 해주는 것이 정부의 역할이다.”

#인공지능#산업 혁신#정책 방향#창조적 파괴#정부 역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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