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중심 문화로 글로벌 디지털인쇄 ‘100년 기업’ 꿈꾼다

  • 동아일보
  • 입력 2025년 6월 27일 03시 00분


코멘트

㈜딜리
국내 유일 디지털 인쇄기 회사 명성… 장영실상 수상 등 ‘기술명가’ 인정
잉크젯 기술 미세 분사 제어력 활용… 의료기기·진단 도구 개발에도 도전

1996년 창립 이후 끊임없는 기술혁신으로 글로벌 디지털 인쇄 장비 전문기업으로 성장한 ㈜딜리(대표 최근수)가 내년 창립 30주년을 맞이한다. 지난해 전 세계가 고금리와 인플레이션으로 신음하는 가운데서도 매출액 48.7% 증가, 영업이익 흑자 전환, 당기순이익 603.2% 증가라는 놀라운 실적을 달성하며 한국 기술력의 저력을 입증했다.

위기를 기회로 바꾼 혁신의 시작과 2024년 대약진

경기 동두천시에 위치한 ㈜딜리 본사 전경.
경기 동두천시에 위치한 ㈜딜리 본사 전경.
딜리의 여정은 1975년 설립 된 주판 및 문구용품 제조를 하던 공장을 1996년 인수하면서 시작되었다. 주판, 제도기를 비롯한 각종 문구용품을 제조하며 꾸준히 성장하던 회사는 1980년대 후반 예상치 못한 위기를 맞았다. 미국 텍사스인스트루먼트에서 공업용 전자계산기가 출시되고 이후 휴대폰 계산기, 오토 CAD 소프트웨어 등이 연이어 등장하면서 전통 제도 도구들의 수요가 급격히 줄어든 것이다.

당시 많은 동종업계 기업이 사업을 접거나 다른 분야로 전환하는 가운데 전기공학 박사인 최 대표는 다른 선택을 했다. ‘더 이상 새로운 혁신 앞에서 고개 숙이지 않겠다’는 의지로 미래를 내다보며 친환경과 디지털이라는 키워드를 포착한 것이다. 그의 풍부한 공학적 지식과 기술에 대한 깊은 이해가 이때부터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와이드포맷 UV인쇄기
와이드포맷 UV인쇄기
2001년 세계 최초로 친환경 UV 잉크젯 프린터 ‘네오젯’을 출시하며 디지털 인쇄 분야로의 본격적인 진출을 선언했다. 이는 단순한 사업 전환이 아닌 패러다임의 완전한 변화였다. 당시만 해도 UV 잉크젯 기술은 초기 단계였고 많은 전문가가 상용화 가능성에 의문을 제기했다. 하지만 최 대표의 엔지니어적 직감과 과감한 투자 결정이 옳았음이 시간이 지나면서 증명됐다.

지난해 딜리의 눈부신 성과에는 명확한 전략이 뒷받침됐다. 글로벌 경기 둔화 속에서도 디지털 잉크젯으로의 전환을 모색하는 고객들에게 혁신적 솔루션을 제공한 것이 주효했다. 특히 인쇄 속도와 안전성, 품질이 강화된 와이드포맷 프린터 신제품 출시가 핵심 동력이 됐다. 이 제품은 기존 대비 60%나 향상된 속도와 안정성으로 생산성을 혁신해 고객들의 비즈니스 도약을 뒷받침할 수 있게 했다.

유럽 최고의 디지털 인쇄 관련 전시회 FESPA 2025 에서 국제세미나 모습.
유럽 최고의 디지털 인쇄 관련 전시회 FESPA 2025 에서 국제세미나 모습.
유럽과 남미의 신규 파트너 확정도 매출 급증의 핵심 요인이다. 특히 유럽 시장의 경우 환경 규제가 엄격해지면서 친환경 UV 잉크젯 기술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고 딜리의 기술력이 이러한 시장 요구에 부합했다. 새로운 판매 채널 구축을 통해 딜리 제품이 유럽 고급 인쇄 시장과 남미 성장 시장에 본격 진출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했다. 여기에 스마트팩토리 도입을 통한 생산 효율성 제고와 환율 상승 효과까지 더해지면서 완벽한 성장 조건이 갖춰졌다.

30년 기술 축적의 결실, 핵심 제품들의 탄생

디지털 라벨 인쇄기
디지털 라벨 인쇄기
딜리가 국내 유일의 디지털 인쇄기 제조사로 자리매김한 것은 지속적인 기술 개발의 결과다. 2000년대 초반, 당시 국내의 정밀 기술 수준으로는 정밀한 옵셋 인쇄기 제조가 불가능 하다는 것이 업계의 정설이었지만, 최근수 대표는 잉크젯 헤드 제어 기술과 복잡한 소프트웨어를 통합 하여 디지털 인쇄기를 개발 해내며 이러한 편견을 정면 돌파 했다.

이후 UV LED 경화 기술과 고해상도 잉크젯 헤드 제어 기술에서 독자적인 노하우를 축적해왔다. 특히 잉크젯 헤드의 미세한 분사 제어 기술과 UV LED의 최적 경화 조건을 찾아내는 과정에서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쳤다. 이러한 기술 개발 과정에서 축적된 데이터와 경험이 현재 딜리만의 차별화된 기술력의 근간이 되고 있다.

현재 딜리의 핵심 제품은 2017년 출시된 디지털 라벨프레스 ‘네오 피카소 플러스’다. 1세대 제품인 ‘네오 머큐리’에서 시작해 차세대 소프트웨어를 적용한 이 제품은 무려 15년 가까이 개발에 투자한 회사의 기술력이 집약돼 있다. 기존 아날로그 인쇄 방식과의 가장 큰 차별점은 숙련공이 필요 없이 쾌적한 환경에서 쉽고 빠르게 다양한 소재에 직접 인쇄가 가능하다는 점이다. 이는 단순한 속도 향상을 넘어 전체 인쇄 공정의 효율성을 극대화한 결과다.

디지털 수성 인쇄 북메이커
디지털 수성 인쇄 북메이커
최근 인쇄 산업 전시회 ‘K-PRINT 2024’에서 공개한 ‘네오갤럭시 북메이커 시스템’은 딜리 기술력의 정점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패러다임 전환 기술’로 평가받은 이 시스템은 완전 자동화된 혁신적인 북 메이킹 솔루션으로 디자이너 1명이 1권부터 대량생산까지 친환경적으로 빠르게 출판물을 제작할 수 있다. 인쇄부터 절단, 제본까지 모든 공정이 하나의 시스템에서 처리되며 POD(프린트 온 디맨드) 등 새로운 출판 모델을 현실화하는 핵심 장비다. 이 시스템은 특히 개인 출판이나 소량 인쇄물 시장에서 혁신적인 변화를 가져올 것으로 전망된다.

친환경 트렌드에 대한 선제적 대응도 주목할 만하다. UV에서 수성 인쇄로의 기술 전환을 위해 수성 연포장·박스 인쇄기 개발을 추진 중이다. 이는 잉크·헤드·미디어 전반에 걸친 플랫폼 전환을 의미하며 환경 규제가 강화되는 선진 시장에서의 확장 가능성을 높이고 있다. 수성 인쇄는 인체와 환경에 거의 무해한 가장 앞선 방식의 인쇄로서 유럽과 북미의 까다로운 환경 기준을 충족할 수 있는 차세대 기술로 주목받고 있다.

기술 名家 인정… IR52 장영실상 명예의 전당 헌액

2022년 IR52 장영실상 명예의 전당 헌액식 선정, 최근수 대표(오른쪽)와 최동희 부사장. ㈜달리 제공
2022년 IR52 장영실상 명예의 전당 헌액식 선정, 최근수 대표(오른쪽)와 최동희 부사장. ㈜달리 제공
딜리의 기술력은 이미 글로벌 시장에서 검증받고 있다. 놀랍게도 KT&G, 넷플릭스, 스타벅스 등 글로벌 브랜드들의 모든 내외부 광고물 대부분을 딜리 인쇄기를 구매한 고객사들이 납품하고 있다. 친환경성, 품질과 안정성, 아름다운 인쇄 표현력 등에서 현재 이 산업의 어떠한 인쇄기보다도 높은 수준을 충족하며 고부가가치 인쇄물 시장에서 압도적인 솔루션으로 자리 잡았다. 이러한 실력은 고객사들의 까다로운 품질 요구 사항을 충족하면서 입증됐다. 특히 유명한 글로벌 브랜드들의 경우 전 세계 마케팅 자료의 색상 일관성과 품질 표준이 매우 엄격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딜리 장비가 이러한 요구 사항을 완벽하게 충족하고 있다는 것은 기술력의 우수성을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다.

딜리의 기술력은 2016년 디지털 라벨 프레스 기술로 장영실상 대상 수상의 영예를 안으며 대외적으로 인정받고 있다. 특히 2022년 11월 ‘IR52 장영실상 명예의 전당 헌액식’에서 최 대표가 국내 수상자 6315명 중 우리나라 산업 발전과 경제 성장에 크게 기여한 기술개발자 36명 중 한 명으로 선정되는 특별한 영예를 얻었다. 이는 30년간 일관된 기술혁신 노력이 국가적으로 인정받은 것으로 한국 제조업 발전사에 중요한 이정표가 됐다.

현재 딜리는 수많은 국제 및 국내 인증을 통해 국제 표준으로 인정받았으며 UV 잉크젯 원천기술을 기반으로 미국 UL, 독일 TV, EU의 RoHS 등 까다로운 국제 인증을 획득했다. 이는 설계 단계부터 인증 부품과 국제 안전 가이드라인을 준수할 수 있는 지식 개발 역량을 갖췄다는 의미로 다른 제조국이나 경쟁사와 차별화되는 핵심 경쟁력이 되고 있다. 특히 UL 인증은 미국 시장 진출을 위한 필수 요건으로 복잡한 안전 기준을 모두 충족해야 하는 까다로운 인증이다.

딜리는 2011년 1월 코스닥시장 상장에 이어 2016년 6월에는 ‘월드클래스 300’ 기업에 선정되는 영광을 안기도 했다. 월드클래스 300은 정부가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우수 중소기업을 선정해 집중 육성하는 프로그램으로 딜리가 중소기업 중에서도 최고 수준의 기술력과 성장 잠재력을 인정받았다는 의미다. 현재 전 세계 40여 개국에 제품을 수출하며 북미와 유럽 시장에서 큰 성과를 거두며 기술 명가로서 위상을 더욱 공고히 하고 있다.

“과학기술 중심의 기업 문화로 100년 기업 향할 것”

2025 ISA International Sign Expo 미국. 라스베이거스 4.23-25 사인 그래픽 관련 기술과 제품을 전시하는 국제 전시회.
2025 ISA International Sign Expo 미국. 라스베이거스 4.23-25 사인 그래픽 관련 기술과 제품을 전시하는 국제 전시회.
내년 창립 30주년을 앞둔 딜리는 ‘100년 기업’이라는 장기 비전과 함께 수출 1억 달러(약 1363억 원) 달성이라는 구체적 목표를 설정했다. ‘잉크젯 기술 내재화 기반의 딜리 글로벌 브랜드화’를 궁극적 목표로 삼고 있다. 이는 단순한 매출 확대를 넘어 기술 기업으로서의 정체성을 더욱 확고히 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특히 주목할 것은 차세대 사업 영역으로의 확장이다. ‘생명공학의 시대’를 대비해 잉크젯 기술을 활용한 의료기기·진단 도구 개발이라는 새로운 영역에 도전하고 있다. 잉크젯 기술의 미세 분사 제어력을 바이오·의료기기와 접목해 체외 진단 디바이스, 피부 진단용 패치 프린팅 등에 대한 기술 검토를 진행 중이며 산학연 협력으로 기술 검증을 계획하고 있다. 이는 기존 인쇄 산업의 경계를 넘어 첨단 의료 분야로 사업 영역을 확장하려는 야심 찬 계획이다.

개인화·소량 생산, RFID 특수 라벨, 당일 납품 등 디지털 인쇄기만이 대응할 수 있는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들도 딜리에 무한한 성장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이러한 개인화 시장의 지속적 성장에 대응해 특화된 솔루션을 개발하며 시장 선점을 노리고 있다. 특히 e-커머스 확산으로 개인 맞춤형 포장재 수요가 급증하고 있어 딜리의 디지털 인쇄 기술이 새로운 시장을 창출할 가능성이 높다.

경영 체계 혁신도 주목할 만하다. 최 대표의 차녀인 최동희 부사장이 해외 관련 모든 비즈니스를 총괄하며 2세 경영 체계를 구축했다. 최 부사장은 글로벌 비즈니스 감각과 젊은 세대의 디지털 친화적 사고를 바탕으로 딜리의 해외 진출을 더욱 체계화하고 있다. 체계적인 해외 사업 관리를 통해 딜리는 더욱 공격적으로 글로벌 시장에 진출할 수 있게 됐다.

과학기술 중심의 기업 문화를 바탕으로 북미와 유럽을 중심으로 높은 안정성과 정직한 고객 대응력으로 고부가가치 시장 개척을 위한 조직적 노력을 펼치고 있는 딜리. 30년간 축적된 기술력과 혁신 DNA를 바탕으로 100년 기업을 향한 대장정에 나선 숨은 강자의 행보가 더욱 주목받고 있다.

“디지털 전환은 생존 문제… 지식 전달과 교육이 핵심”


최근수 ㈜딜리 대표 인터뷰

전 세계적으로 인쇄산업이 거대한 변곡점을 맞고 있는 가운데 국내 유일의 디지털 인쇄기 제조사 ㈜딜리 최근수 대표는 국내 인쇄 업계의 디지털 전환 필요성을 강력히 제기했다. 500여 년간 인류 문명을 지탱해온 구텐베르크의 활판인쇄 시대가 저물고 4차 산업혁명과 함께 디지털 인쇄의 새로운 시대가 열리고 있다는 것이 그의 진단이다.

최 대표는 “디지털 인쇄로의 혁신은 선택이 아니라 생존 문제”라며 “지속가능성과 고객 맞춤형 가치 제공이야말로 향후 10년 한국 인쇄산업을 결정짓는 열쇠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코로나19 팬데믹이 개인화·맞춤형 제품에 대한 수요 폭증과 환경친화적 생산 요구를 높이면서 전통적인 대량생산 인쇄 방식의 한계가 더욱 명확해졌다는 분석이다.

국내 기업들의 외국산 장비 선호 현상에 대해서는 현실적인 접근법을 제시했다. 최 대표는 “과거 아날로그 인쇄 장비가 인쇄 시장을 독점했기 때문에 외국산 장비 선호는 단시간에 변화하기 어렵다”면서도 “국내 고객의 실제 사용 후기를 바탕으로 한 레퍼런스 마케팅을 강화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특히 “딜리는 국내 유일의 디지털 인쇄기 제조사라는 강점을 살려 국내 고객 맞춤형 커스터마이징과 밀착형 기술 지원 역량을 통해 품질 신뢰도를 제고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국내 인쇄 업계의 디지털 전환 의지가 상대적으로 약한 점에 대해서는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최 대표는 “디지털 인쇄로의 전환은 고객이 필요성을 느끼고 관련된 지식을 충분히 습득할 때 가능하기 때문에 지식 전달과 교육이 가장 중요하다”고 진단했다. 이를 위해 딜리는 고객 기술 세미나, 샘플 테스트 프로그램, 업계 주요 협회 지원 등을 통해 고객의 디지털 친화력을 높여가고 있다고 밝혔다.

AI, IoT 등 기술 융합으로 가능해진 개인화·가변 데이터 인쇄의 가능성에 대해서는 긍정적인 전망을 제시했다. 최 대표는 “팬데믹이 가속화시킨 개인화된 인쇄, 패키징 시장에 필수가 된 가변 데이터 인쇄는 디지털 인쇄기만 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시장”이라고 평가했다. “기존 아날로그 인쇄와 달리 적은 투자로도 온라인 기반의 다양한 비즈니스를 시작할 수 있어 중소 업체들에 새로운 기회가 열리고 있다”고 강조했다.

인본주의 경영철학에 대해서는 지식 기반 산업의 특성을 들어 설명했다. 최 대표는 “개개인이 하는 일이 눈에 보이지 않는 지식 기반 산업에서는 스스로 정직하게 윤리적으로 업무에 임해야 성장할 수 있다”며 “기술 개발은 결국 사람이 하는 일이고 창의성과 열정이 없으면 혁신적인 제품이 나올 수 없다”고 강조했다.

최 대표는 “모든 업무는 사내 시스템과 소통 채널에서 공유 관리되고 있으며 임직원들은 회사 규모는 크지 않지만 선진국 수준의 업무 시스템에서 일한다는 자부심을 갖고 있다”고 밝혔다.

30년간 한 길만 걸어온 기술자이자 경영자로서 최 대표는 “딜리가 지금까지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은 위기 때마다 미래를 내다보고 과감히 변화를 선택했기 때문”이라며 “기술혁신을 통해 100년 기업의 꿈을 현실로 만들어가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100년 기업을 향해#기업#딜리#디지털 인쇄#최근수
© dongA.com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