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도의 날 기획]K-철도 도약 위한 국내 제도 개선 과제
기술-가격 2단계 분리 최저가 입찰… 철도차량 구매 때마다 의혹 줄이어
“현 입찰제, 신생사 등 진입 제한”… 평가위원회-입찰 감시 체계 등 필요
지난해 개통한 3세대 고속열차 KTX-청룡은 100% 국내 기술로 설계·제작됐다. 코레일 제공
최근 우즈베키스탄, 모로코 등 해외에서 잇따라 들려오는 고속철 등 철도차량의 수주 소식은 국내외의 엄중한 경제 상황 속에서 단비와 같은 반가운 소식이다. 2004년 경부고속철도 개통 당시만 해도 국내 기술이 전혀 없어 수입에 의존해야 했던 고속전철이 어느새 기술 자립을 이루고 해외에 수출할 능력까지 갖춘 비약적 발전을 이룬 것이다. 이는 그동안 열악한 환경 속에서 각고의 노력을 해왔던 철도인들의 노고에 커다란 위안이 되는 사건이다.
28일 ‘철도의 날’을 맞아 되돌아보면 이제는 K-방산에 이어 K-철도도 우리나라 기술력의 우수성과 높은 가성비를 자랑하며 국제 무대에서 우뚝 설 수 있게 됐다는 점에서 철도 발전의 의미가 더욱 크다고 할 수 있다.
이번 고속철의 수주는 정부와 운영기관, 차량 제작사가 협업한 결과로 앞으로의 K-철도 성장을 위해 시사하는 바가 크다. 철도산업이 단순한 철도차량 공급에만 국한되지 않고 선로 건설, 기지 설비, 열차 운영 및 유지보수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연관 산업의 협업이 필요한 것이다. 특히 고속철도는 초기 시설 투자에 막대한 자금이 소요되기 때문에 이번처럼 입찰자에게 자금 지원을 요청하기도 한다.
정부를 중심으로 각 관련 기관이 각각의 장점과 노하우를 바탕으로 원팀으로 협업해야 K-철도의 해외 진출이 가능하다. 국위 선양과 함께 경제적 이익과 국내 연관 산업의 발전으로 이어지는 선순환 구조가 되도록 계속 발전시켜 나가기를 기대한다.
해외 성과 뒷받침 못하는 국내 철도 구매 입찰 제도
해외에서의 성과와는 다르게 국내의 철도산업 환경은 답답하기만 하다. 국내에서 상호 보완적 협력을 통해 기술 능력을 극대화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국내 철도의 구매 입찰 제도가 오히려 철도산업의 발전을 저해한다는 논란이 반복되고 있다.
‘최저가 입찰제’라 불리는 기술-가격 2단계 분리 입찰은 국내의 철도차량 구매 입찰 때마다 논란을 야기한다. 운영 기관은 기술평가를 무기로 명확한 원칙 없이 자의적으로 기준을 설정해 운영하고 이를 감독하는 정부 역시 그런 상황을 외면하고 있다고 불만이 가중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제작 업체들은 수주만을 위한 무한 경쟁으로 내몰리고 있어 철도산업계의 발전과 성장은 공염불이 되고 있다.
그동안 뜻있는 여러 철도인이 국내 철도차량 구매 입찰 방식에 대한 다양한 개선 방향을 제시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입찰 과정에서는 의혹들이 끊이지 않고 있다. 낙찰 업체의 기술력 부족으로 장기간 납품이 지연돼 지연배상금(지체상금)이 부과되거나 납품이 이뤄져도 영업 운행 도중 다양한 고장이 발생하고 있다. 이 같은 근본적인 문제는 전혀 개선되지 않고 매번 입찰 때마다 되풀이되고 있다.
지난 연말에 있었던 서울교통공사 신조 전동차 220칸의 구매 입찰 역시 예외는 아니다. 6개월이 지난 지금까지도 여러 의혹이 제기되면서 입찰 제도의 문제점을 드러내고 있다. 특히 발주기관과 업체 간의 유착설 같은 불미스러운 소문도 이어지고 있다. 입찰에 참여한 업체들은 서로 서울교통공사의 기술평가 기준 결정 과정에서 상대방이 유리하게 기준을 바꾸기 위한 로비를 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문제의 핵심은 서울교통공사가 평가 기준을 설계하면서 기술평가의 객관성과 공정성이 훼손됐다는 것이다. 평가 항목이 산업 전반의 발전보다는 특정 업체의 이해에 부합되도록 설정됨에 따라 기술력을 갖춘 다른 업체들이 입찰에 접근하지도 못하는 상황이 됐다. 결과적으로는 입찰의 공공성을 해치고 공정 경쟁의 원칙을 위반한 것으로 설명된다.
최근 일부 방송 매체에서는 특정 업체가 평가 기준 변경에 영향력을 행사했다는 취지의 보도를 했다. 그러나 해당 업체는 이에 강력히 반박하며 언론조정신청을 했다. 신규 업체로서 입찰에 참여하기 위해 법령에 따른 합리적이고 정당한 평가 기준의 개선을 건의했을 뿐 어떠한 부정한 영향력도 행사한 사실이 없다고 밝혔다. 특히 트램의 유사 물품 실적 명기, 중소기업 가점 적용, 납품 실적 점수 실질화 등의 건의 내용은 모두 관련 법령에 근거하는 정당한 민원에 해당한다고 설명했다. 또한 해당 업체는 면담 이후 입찰 1단계인 기술·규격 적격 평가도 통과하지 못했으며 평가 기준도 오히려 불리하게 조정돼 특혜를 받았다는 주장은 근거 없는 왜곡이라고 주장했다. 한편 해당 방송은 정정보도 요구에 대해 보도의 사실관계가 잘못됐음은 분명히 인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기득권 업체 과점화와 철도산업 생태계 위기
현행 입찰 제도는 기술 경쟁력을 보유한 국내 업체들의 참여 환경을 제한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는 결국 K-철도의 미래를 위협하는 요소가 될 수 있다. 이러한 관행이 반복된다면 대한민국의 우수한 철도 기술은 오히려 퇴보하거나 해외로 유출되고 국내 철도산업의 경쟁력은 급격히 쇠락할 것이다.
국내시장의 저가 경쟁 속에서 가격경쟁력을 잃고 해외 수주에 전념하고 있는 업체를 제외하고는 현재 국내 전동차 시장은 기술력이 다소 뒤지는 소수의 기득권 업체가 과점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이들은 적기 납품도 하지 못하면서 반복적인 수주만으로 독과점하고 있다. 이러한 이유로 완성차 생산 능력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실적이 없는 신생 기업, 중견기업의 시장 진입은 원천적으로 차단되고 있는 실정이다. 결과적으로 지난해 서울교통공사의 신조 전동차 220칸 구매 입찰과 같이 기술 경쟁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일부 업체는 기준을 교묘히 해석하거나 수요 기관과의 유착을 통해 평가 기준에 영향력을 행사한다고 의심받고 있다.
전문가들은 납품 지연 및 제작 불이행 사례가 잇따라 발생하는 것 역시 현 입찰 제도의 구조에 따른 결과라고 설명했다. 기술력이나 제작 능력을 고려하지 않고 과거 실적만으로 입찰이 진행돼 납기를 지키지 못하는 상황이 반복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로 인해 제작업체는 수천억 원대의 지체상금 부담으로 경영상의 어려움을 겪게 되고, 발주기관은 원하는 양질의 차량을 제때 구매하지 못하게 된다. 새로운 차량의 투입 지연은 결과적으로 차량을 이용하는 국민에게 불편을 주고, 발주기관은 노후 차량 운행에 따른 안전 관리 부담 등 다양한 부작용이 발생하고 있다.
한 철도 관계자는 “이제는 제작 능력을 갖춘 국내 모든 업체의 참여를 적극적으로 유도해 철도 기술을 고도화해야 한다. 이를 바탕으로 K-철도의 세계화로 대한민국 경제 발전의 견인차가 되도록 현실적이고 합리적인 제도 개선이 시급하다”라고 전했다. K-철도의 기술 경쟁력 강화를 위해서는 체계적이고 지속가능한 개선책이 필요하다는 설명이다.
국내 철도차량 입찰에서 매번 반복되는 기술평가와 최저가 입찰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더 객관적이고 공정한 평가 기준의 확립이 중요하다. 운영 기관들이 현행 제도의 개선을 기피하는 근본적인 이유도 분명하게 이해하고 이에 대한 대책도 함께 수립해야 한다.
발주 기관은 입찰자로 하여금 선의의 경쟁을 유도하고 자신들이 원하는 좋은 품질의 철도차량을 원하는 시기에 받을 수 있는 제도가 필요하다. 하지만 현재의 입찰 방법으로는 분명한 한계가 있다.
예를 들어 기술평가 기준 마련을 위한 공정한 가이드라인과 이를 구체화해 세부 평가 기준을 만드는 위원회 설립과 투명하고 공정한 입찰 감시 체계가 필요하다. 최저가 입찰제의 한계를 벗어나 발주 기관과 입찰자가 서로 윈윈할 수 있는 제도로 개선돼야 국내 철도차량 산업 발전과 부품업체가 함께 성장할 수 있는 토양이 마련될 것이다. 또 기술력이 부족한 입찰자의 납품 지연 및 품질 저하 문제에서도 벗어날 수 있다.
아무리 좋은 제도라도 어떻게 운용하느냐에 따라 장점이 되기도 하고 단점이 되기도 한다. 이처럼 기술평가의 기준을 아무리 객관적이고 공정하게 만들어도 사용자가 공공의 이익에 반하는 식으로 운영한다면 좋은 제도가 될 수 없다. 따라서 이를 관리하고 감독하는 정부 기관의 역할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철도의 날을 맞아 되새기는 K-철도의 미래
6월 28일 철도의 날을 맞아 K-철도의 나아갈 방향에 대한 총체적인 점검이 필요한 시점이다. 해외에서 보여준 K-철도의 성과가 일회성 성공이 아닌 지속가능한 경쟁력으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탄탄한 국내 기반이 전제돼야 한다.
업계에서는 지금까지 반복된 문제점들을 개선하기 위해 정부를 중심으로 철도차량 도입에 연관된 모든 관계자가 각각의 작은 이익은 뒤로 미루고 오로지 국내 철도산업의 발전을 위해 한마음 한뜻으로 지혜를 모아야 한다고 말한다. 아울러 철도차량의 올바른 도입 방법에 대해 고민하고 결과를 만들어 내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K-철도가 진정한 글로벌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서는 국내 철도산업 생태계의 건전한 발전이 선행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해외에서의 성공 사례가 국내에서도 그대로 실현될 수 있도록 공정하고 투명한 입찰 제도의 확립을 통해 모든 철도산업 관계자가 상생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견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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