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장 미루고 EB 발행 중단… 달라진 상법에 기업들 ‘몸사리기’

  • 동아일보
  • 입력 2025년 7월 9일 16시 5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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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는 3일 본회의를 열고 상법 개정안을 재석 272명 중 찬성 220명, 반대 29명, 기권 23명으로 가결했다. 2025.07.03 이훈구 기자 ufo@donga.com
이사의 충실의무 확대 등이 담긴 상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면서 각 기업들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쪼개기 상장 논란이 있던 기업공개(IPO) 계획이 잠정 중단되거나, 자사주 매입 및 소각 절차에 속도가 붙었다. 만에 하나라도 문제 소지가 있는 사안은 원천 차단하겠다는 것이다.

9일 투자은행(IB)과 재계에 따르면 SK이노베이션은 SK온에 투자했던 국내외 사모펀드(PEF) 자금을 상환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SK이노베이션은 3조 원 안팎의 자금을 유치하면서 투자자들에게 2026년까지 SK온을 상장하겠다고 약속했지만, 상법 개정 등으로 인해 IPO 관련 불확실성이 커진 데 따른 것이다. 투자금 상환 자금을 LNG발전사업 유동화 거래를 비롯해 보령LNG터미널 지분 유동화 등을 통해 마련할 수 있다는 계산이다. LNG발전사업 유동화는 10일 예비입찰을 진행하기로 했다.

SK이노베이션은 앞서 지난달 25일 SK엔무브의 프리IPO 투자자였던 IMM크레딧솔루션에 투자금을 상환하면서 SK엔무브 상장 계획을 사실상 중단했다.

SK온과 SK엔무브는 SK이노베이션으로부터 물적분할된 회사로, 상장시 중복 상장에 대한 논란이 발생할 수 있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상법 개정으로 이사의 충실 의무 대상이 주주로 확대된 상황에서 상장 결정을 내리기 어려울 수 있다는 관측이 제기돼 왔다.

바이오 상장사인 파마리서치도 의약품과 에스테틱(미용용품) 등 핵심 사업을 인적분할해서 재상장하겠다는 계획을 내놨지만, 대주주 중심의 분할이라는 비판이 제기되면서 8일 이사회를 열고 철회했다. 당초 ‘강행 돌파’ 전망도 제기됐지만, 상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면서 몸 사리기에 나선게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태광산업은 자사주를 기반으로 교환사채(EB)를 발행해서 대규모 투자에 나서겠다는 계획을 밝혔으나, 자사주 소각을 회피하기 위한 꼼수라는 비판에 EB 발행 계획을 일시 중단했다.

정치권이 추가 조치에 나설 것을 예고하면서 상법 개정 이슈가 기업에 미치는 영향은 앞으로 더욱 커질 것으로 보인다.

3일 여야 합의로 이사의 충실 의무 확대와 전자주주총회 의무화, 3% 룰(기업의 감사나 감사위원 선출 시 최대주주 의결권을 3%로 제한) 도입 등을 포함하는 상법개정안이 통과된 데 이어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9일 해당 개정안에서 제외된 집중투표제와 감사위원 분리 선출 확대를 포함한 상법 개정을 7월 중에 시행하겠다고 밝혔다. 민주당 김남근 의원은 이날 자사주 소각 의무화 법안을 대표 발의하기도 했다. 재계 관계자는 “최근 상법개정 등으로 경영 불확실성이 커지는 상황”이라며 “기업들이 적극적인 의사 결정을 내리기보다 소극적으로 대응하는데 급급한 모습을 보일 수 있다”고 우려했다.
#상법개정안#주주충실#자사주 소각#쪼개기 상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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