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6일 서울 강남구 도곡동에 위치한 한 아파트는 전용면적 164㎡ 전세 매물이 28억 원에 거래됐다. 같은 평형대가 3월 24억 원에 계약된 것과 비교하면 3달 만에 4억 원이 오른 것이다. 인근 공인중개사무소 관계자는 “전세 매물이 귀해지면서 가격이 오르는 분위기”라며 “특히 최근 대출 규제 영향으로 매매 시장이 얼어붙으면서 매매 대신 전월세를 찾는 사람이 많아져 수요가 늘어나는 상황”이라고 밝혔다.
전국 아파트 전세가격 상위 20%와 하위 20% 간 격차가 약 2년 반 만에 가장 크게 벌어졌다. 서울의 초고가 아파트 전세가 수십억 원에 거래되는 등 상승세를 보이는 반면 지방은 부동산 경기 침체가 이어지고 있는 영향으로 분석된다. 6·27 대출규제로 서울 고가 아파트 전세 오름세가 이어질 가능성이 높아 이 같은 경향은 더욱 강해질 것으로 보인다.
●서울-지방 상위 20% 전세가격 4배 차이
13일 KB부동산에 따르면 전국 아파트 전세시장에서 상위 20%(5분위) 전세평균가격을 하위 20%(1분위) 전세평균가격으로 나눈 5분위 배율이 6월 기준 7.7로 집계됐다. 2022년 11월(7.7) 이후 가장 높다. 5분위 배율은 숫자가 커질수록 가격 격차가 크다는 것을 의미한다.
6월 기준으로 전국의 상위 20% 전세평균가격은 6억7849만 원, 1분위는 8869만 원이었다. 올해 1월 5분위가 6억6573만 원, 1분위 8873만 원이었던 것과 비교하면 격차가 더 크게 벌어졌다.
그중에서도 평균 전세가격이 가장 높은 서울은 상위 20% 전세평균가격이 12억3817만 원으로 수도권과 광역시를 제외한 지방(3억2983만 원)의 4배 수준이었다. 하위 20%의 경우 서울이 2억8084만 원, 지방이 5301만 원으로 상위 20%보다 서울과 지방 간 격차가 더 컸다.
이런 경향은 앞으로 더 강해질 것으로 보인다. 한국부동산원 주간 아파트 동향에 따르면 6·27 대출규제 영향이 본격화한 이달 7일 기준 서울 전세가격 상승폭은 지난주 0.07%에서 0.08%로 커졌다. 하지만 수도권을 제외한 지방은 0.01% 하락해 지난해 12월 첫째 주(0.01%) 이후 30주 연속 하락했다.
고준석 연세대 상남경영원 주임교수는 “정부의 대출 규제 이후에 매수세가 꺾이고, 전월세로 숨고르기를 하려는 사람이 늘어나 수도권 전월세 가격은 앞으로도 오를 가능성이 높다”며 “지방으로 주택 수요가 옮겨갈 수 있는 대책이 나오지 않는 한 지금과 같은 서울과 지방의 전세가격 차이가 유지되거나 심화될 가능성이 크다”라고 진단했다. ●갱신청구권 아껴 전세기간 늘리기 전략도
서울을 중심으로 수도권에서 전세 가격 오름세가 계속 이어질 거라는 예상이 나오면서 계약갱신청구권 사용을 미루는 경향도 나타나고 있다. 국토교통부 실거래가 공개시스템에 따르면 대출규제 직후인 지난달 28일부터 이달 13일까지 신고된 전월세 거래 5949건 중 갱신권을 사용한 거래는 4분의 1에도 미치지 못하는 1348건에 그쳤다.
갱신권을 사용하면 임대료 인상률이 5% 이내로 제한되지만, 갱신권 사용은 1번만 가능해 다음 계약 때는 이사를 가야 할 가능성이 높다. 통상 전세가격이 오를 때는 계약갱신청구권을 사용해 시세 대비 낮은 임대료로 재계약을 하려는 수요가 많지만, 최근에는 전세난을 예상한 세입자들이 갱신권 사용을 미루고 시세 대로 보증금을 올려주고 있는 것이다.
김인만 김인만경제부동산연구소장은 “전세 가격은 더 상승할 것에 대비해 갱신권 사용을 미루는 추세가 올해 하반기까지 이어질 수 있다”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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