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플랫폼서 ‘14종+α’ 파생 모델 예고한 기아 PV5, ‘다품종 소량생산’의 길 열까 [MoTech열전]

  • 동아일보
  • 입력 2025년 7월 20일 09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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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아가 브랜드 최초의 전동화 전용 PBV인 ‘더 기아 PV5’의 계약을 최근 시작했습니다. 자동차 업계에서 ‘목적 기반 차량(Purpose Built Vehicle)’으로 흔히 일컫는 PBV의 첫 모델입니다.

PBV는 전기차에서 배터리를 포함한 구동 관련 부품을 차량 바닥에 모두 배치하는, 이른바 ‘스케이트보드 플랫폼’이라는 개념에 기반을 두고 있는데요.

구동 부품으로부터 자유로워진 차량 상부(Upper Body)를 원하는 대로 설계할 수 있다는 장점을 살려서 고객들의 다양한 수요를 반영한 차를 설계·생산한다는 것입니다.

PBV 전용 플랫폼인 ‘E-GMP.S’를 부각한 PBV의 이미지. 기아 제공
PBV 전용 플랫폼인 ‘E-GMP.S’를 부각한 PBV의 이미지. 기아 제공

수년간의 준비 끝에 PBV 양산에 돌입한 기아는 PBV를 ‘차량 그 이상의 플랫폼(Platform Beyond Vehicle)’으로 규정했습니다.

전기차 기술이 확산되면서 ‘스케이트보드 플랫폼’ 활용이 손쉬워졌지만, PBV는 여전히 소규모의 생산 사례뿐인 상황. 글로벌 주요 완성차 업체 중 사실상 처음으로 PBV 양산에 들어간 기아의 야심 찬 선언입니다.

기아는 첫 PBV인 중형급 PV5로 14종의 모델을 출시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는데요. 4종의 패신저 모델, 3종의 카고 모델, 7종의 컨버전 모델입니다.

패신저와 카고 기본 모델 7종은 기아가 ‘오토랜드 화성’ 내에 마련한 최초의 PBV 전용 생산공장 ‘이보 플랜트(EVO Plant)’에서 생산하게 되는데요.

최근 기아는 모빌리티나 유통·물류 기업뿐만 아니라 일반 기업을 망라한 다수의 기업의 임직원을 이 ‘이보 플랜트’에 직접 초청하는 행사를 열면서 PBV 수요 확대에 나서는 모습입니다.

탑승객의 편의성과 공간성을 강화한 4인승 프라임 모델 같은 컨버전 모델 7종은 개발부터 생산까지 전체 작업을 그동안 특장차량을 생산해 온 중소기업들과 함께 진행하게 되는데요.

이들 중소기업에 일종의 미완성 차량인 ‘도너 모델’까지 공급할 계획인 점을 고려하면 PV5는 ‘14종+a’의 모델을 생산하게 될 것으로 보입니다.

오늘 [MoTech열전]은 PV5에 얽힌 이같은 얘기를 중심으로 기아의 PBV 사업을 살펴보겠습니다.

PBV 전용 플랫폼인 ‘E-GMP.S’. 기아 제공


● 전면부 줄이고 바닥 낮추고… 실내 공간감 돋보여

최근 전시장을 찾아 살펴본 PV5에서 가장 눈에 띄는 점은 공간감이었습니다. ‘E-GMP.S’라는 PBV 전용 플랫폼에 밴 형태의 디자인을 더하면서 실내 공간을 크게 넓힌 것인데요.

‘패신저’와 ‘카고’ 모델 가운데 패신저 모델은 1열 2인, 2열 3인의 5인승 모델이 가장 먼저 출시됐습니다.

이 패신저 모델은 넓은 실내 공간으로 유명한 기아의 스테디셀러 ‘카니발’보다 46cm나 짧은 전장을 가지고 있음에도 이에 못지않은 공간감을 자랑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전기차의 장점을 살려서 내연기관차에서는 엔진 등이 자리해야 했던 차량 전면부를 크게 압축한 결과입니다.

기아 은평갤러리지점에 전시된 PV5 패신저 모델의 모습. 김도형 기자 dodo@donga.com

수평 공간보다 더 눈에 띄는 대목은 수직 공간입니다. 기아는 PV5에서 39.9cm의 낮은 스텝고를 강조하고 있는데요.

지면에서 차량 2열 바닥면까지의 높이가 통상 45cm 안팎인데 PV5에서 40cm 이하로 낮췄다는 설명입니다.

카니발(178.5cm, 하이브리드 기준)보다 12cm 높은 PV5의 전고(190.5cm)까지 결합되면서 일반적인 세단은 물론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에서도 상상하기 힘들었던 수직 공간감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기아 은평갤러리지점에 전시된 PV5 패신저 모델을 옆에서 본 모습. 슬라이딩 도어를 열고 올라서게 되는 2열의 바닥면이 지상에서 39.9cm에 불과한 낮은 ‘스텝고’가 도드라진다. 운전석이 있는 1열은 바닥면을 뒷좌석보다 더 높여서 시야를 확보했다. 김도형 기자 dodo@donga.com


● 14개 세부 모델로 ‘다품종 소량생산’ 지향

기아는 운전석이 있는 1열 뒷공간을 완전히 비운 카고 모델을 패신저 모델과 함께 출시했는데요.

이 PV5는 1944년 설립된 기아가 글로벌 차 산업 틀을 뒤흔든 ‘한 수’로 남게 될 수도 있습니다.

오랫동안 ‘소품종 대량생산’으로 효율성 극대화에 집중해 온 자동차 산업의 방향을 ‘다품종 소량생산’ 쪽으로 돌려놓는 시도라는 점 때문입니다.

기아는 이번 PV5에서만도 14개의 세부 모델을 구상 중입니다. 패신저 4종, 카고 3종에 컨버전 모델 7종인데요.

패신저 모델의 경우 이번 ‘2-3-0’ 모델을 시작으로 1열에 조수석을 없애고 2열과 3열에 2개씩의 좌석을 배치한 ‘1-2-2’ 모델처럼 기존에는 볼 수 없었던 다양한 좌석 배치를 예고하고 있습니다.

‘1-2-2’ 모델은 2, 3열 공간을 널찍하게 이용할 수 있는 설계로 각종 모빌리티 서비스에 적합한 형태로 꼽힙니다.

휠체어 사용자와 같은 교통약자를 위해서는 2열에 좌석을 없앤 ‘2-0-3’ 모델이 준비 중입니다.

39.9센티미터라는 낮은 스텝고와 77.5센티미터에 이르는 2열 슬라이딩 도어 개방폭이 결합되면서 PV5의 장점을 극대화한 모델인데요.

그동안 특장업체에 의존해 온 교통약자용 차량 시장에 완성차 제조사가 직접 뛰어들어서 양산부터 사후관리(AS)까지 책임진다는 측면에서도 주목할 만한 시도이겠습니다.

기아가 출시할 계획인 PV5 WAV(Wheelchair Accessible Vehicle, 휠체어용 차량) 모델의 실내 모습. 기아 제공


● 오토랜드 화성 바로 옆에 생산·R&D 갖춘 컨버전 센터

기아는 내년부터 4인승 프라임 모델과 5인승 라이트캠퍼 모델을 비롯해 내장탑차, 냉동탑차 등 다양한 PV5 컨버전 모델을 출시할 예정인데요.

7종의 기본 모델에 특장을 더해 고객 맞춤형 차량을 제공하는 7종의 컨버전 모델은 PBV의 핵심 축이라는 것이 기아의 설명입니다.

이를 위해 기아는 자신들이 차량 전체를 완성하는 방식을 고집하지 않고 특장업체를 중심으로 한 파트너사와의 협력 체계를 구축했습니다.

차를 특수한 목적에 맞게 제작·개조하는 것을 뜻하는 특장은 냉동·냉장차, 레미콘 차량 등 화물차를 중심으로 활성화돼 있는데요.

충분한 노하우를 가진 특장업체들과 컨버전 모델 개발부터 생산까지 전체 과정을 협력하는 상생 모델로 PBV 사업을 펼치겠다는 것입니다.

이에 따라 기아 ‘오토랜드 화성’에 인접한 부지에는 이들 파트너사 공간과 함께 연구개발(R&D) 시설까지 갖춘 ‘화성 컨버전 센터’가 마련됩니다.

이곳에서는 운전석 뒷공간의 ‘컨버전 영역’에 다양한 특장 사향을 더하는 작업을 실제로 진행됩니다.

PV5 카고 모델의 적재 공간. 카고 모델 역시 적재함 바닥의 높이가 지상에서 41.9cm 수준인 낮은 ‘적재고’를 가지고 있다. 김도형 기자 dodo@donga.com


● 파트너사에 ‘미완성차’ 공급하는 사업도 가동

기아는 차 업계에서는 생소한 ‘도너 모델’을 파트너사에 공급한다는 계획까지 세워놓고 있습니다.

기아가 특장에 최적화된 일종의 미완성차를 검증된 파트너사에 넘겨주면 이들이 고객 수요에 맞춘 차량을 완성하는 개념입니다.

국내 최초로 시도되는 이같은 생산 방식은 다채로운 고객 니즈를 만족시킬 수 있는 PBV의 장점을 살리면서도 기존 특장업체의 시장도 유지·확대할 수 있는 ‘윈-윈’ 사업 방식으로 관심을 끕니다.

기존 특장차의 경우 시트 등의 기존 부품을 탈착하면서 불필요한 비용과 자원 낭비가 발생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보다 친환경적인 사업 방식이기도 한데요.

PBV 사업에서 파트너십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컨버전 파트너십과 도너 모델 공급 계획을 간략하게 밝힌 바 있는 기아는 첫 모델인 PV5에서부터 바로 이같은 사업을 실행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도너 모델을 공급받는 파트너사들이 각자 다양한 모델을 설계한다면 결국 PV5는 하나의 뼈대를 기반으로 하는 ‘14종+a’의 모델로 구성되는 셈이겠습니다.

PV5를 세탁 관련 서비스에 활용하는 모습의 예시. 기아 제공


● 일반 기업까지 초청해 생산 과정 공개

다양한 고객 수요를 발굴하기 위해 기아는 최근 ‘오토랜드 화성’에 고객사 임직원을 초청해 PBV 생산 라인인 ‘이보 플랜트’를 공개하는 행사를 열기도 했는데요.

두 차례에 걸친 행사에서는 모빌리티 기업과 유통·물류 기업, 렌터카사는 물론이고 여행·생활환경·전력인프라·정보기술(IT) 등 다양한 영역의 기업들이 대거 참석한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모빌리티·물류 분야와 큰 관련이 없는 일반 기업들도 각자의 업무 환경에 맞춘 차량을 원하는 니즈를 확인하고, PBV가 이런 수요 대응에 가장 적합하다는 점을 알리는 자리로 풀이됩니다.

한정된 차종을 대량으로 생산하면서, 고객들이 이런 차량들 가운데 하나를 선택하도록 하는 기존의 완성차 제조·영업 방식과는 사뭇 다른 방식으로 고객사를 공략하는 모습인데요.

기아는 카고 모델의 적재 공간을 작업 공간으로 활용하는 고객이라면 선반과 수납함, 좌석 등을 어떻게 배치하는 것이 가장 효율적일지까지 연구하고 있다고 합니다.

PV5 카고 모델의 ‘V2L(Vehicle to Load, 외부로의 전력 공급)’ 기능을 활용해 적재함에서 전공 공구 작업을 하는 모습의 예시. 기아 제공


● 5년 뒤 25만 대 판매 목표… 최대 시장은 유럽

기아는 5년 뒤인 2030년 25만 대의 PBV를 판매한다는 목표를 세웠습니다. 이같은 목표 달성을 위해 기아는 세계 시장에도 순차적으로 진출할 계획인데요.

2030년 지역별 판매 목표는 유럽이 13만3000대, 한국이 7만3000대 규모입니다.

유럽 지역의 경우 밴 형태의 차량으로 저마다의 사업을 벌이고 있는 소상공인의 비중이 상당히 높기 때문에 최대 시장으로 설정했다고 하는데요.

기아가 5년 뒤에 연 20만 대 넘는 차량을 PBV로 판매할 수 있다면, 글로벌 완성차 업계에는 작지 않은 시그널이 될 수도 있습니다.

내연기관차 시대에는 일부 럭셔리 모델을 제외하고는 금과옥조처럼 여겨지던 ‘소품종 대량생산’의 성공 방정식이 전기차 시대를 맞아 달라질 수 있다는 신호라는 측면인데요.

최근 연 9000만 대 수준인 글로벌 자동차 시장 전체와 비교하면 작은 것일 수도 있지만 시장 잠재력은 충분히 확인시켜 주는 수치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PV5 패신저 모델의 2열 좌석을 뒤로 젖힌 모습. 김도형 기자 dodo@donga.com


● ‘맞춤형 파트너’로 거듭나는 차(車)

PBV를 ‘목적 기반 차량’으로 풀이하는 것은 단순하고 기본적이지만 정확한 단어 설명입니다.

기아는 이런 PBV에 ‘차량 그 이상의 플랫폼’이라는 설명을 달면서 자신들이 그리는 PBV의 제품 성격과 사업 방향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다채로운 삶을 영위하는 고객들, 그리고 치열하게 각자의 비즈니스를 펼치고 있는 고객들에게 그 삶과 비즈니스에 꼭 맞는 플랫폼을 제공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한 것인데요.

운전석마저 없앨 수 있는 자율주행 기술이 앞으로 현실화할 경우 PBV가 모빌리티, 물류, 제조, 서비스, 여가 등 다양한 사업의 파트너로 훨씬 더 각광받게 될 가능성도 언급되지만, 아직은 조금 먼 미래입니다.

우선은, 전기차 퍼스트 무버로 거듭나고 있는 기아의 야심작이, 다음 달부터 본격적으로 고객들에게 인도되면서 어떤 평가를 받을지가 궁금합니다.

PV5를 이용하는 고객들의 다양한 활동 모습을 담은 이미지 사진. 기아 제공


아이가 타는 자전거부터 온 가족의 이동을 돕는 자동차, 거대한 선박까지. 우리 일상도, 한국 산업도 ‘모빌리티’ 없이는 매끄럽게 굴러가기 어려워졌습니다. [MoTech열전]은 최신 모빌리티 기술과 산업을 들여다보는 시리즈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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