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적률 제한없고 공공기여 안해도돼
일조권 침해 등 주거환경 악화 빈번
층수 높여 ‘한강 조망 세대’ 늘리기도
서울시 “연내 관리기준 계획 발표”
서울 강동구 암사동 한강변에 있는 2900여 채 규모 A단지. 지어진 지 25년이 넘은 이 단지 리모델링 조합은 300채를 추가로 짓는 리모델링을 추진하고 있다. 이 단지는 ‘한강 조망 가구’를 늘리기 위해 한강변과 맞닿는 28층 높이 주거동을 증축할 계획이다. 재건축이었다면 한강과 맞닿는 주거동 높이를 15층으로 제한하는 서울시 규정에 막혀 아예 추진할 수 없는 계획이다.
재건축 대안으로 거론되는 리모델링 사업이 오히려 경관이나 주거환경을 악화시키는 방향으로 추진되는 사례가 빈번한 것으로 나타났다. 지자체·정부가 제대로 된 관리·심의 규정 없이 손놓은 틈을 타 리모델링 단지들이 ‘한강변 아파트 키높이 전쟁’에 나서는 것을 예방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22일 서울시가 지난해 1년 동안 사업계획 자문을 한 서울시내 14개 리모델링 단지를 전수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이들 단지는 용적률을 평균 304.2%에서 440.6%로 1.45배 증가시키겠다고 계획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재건축에서 아파트를 주로 짓는 땅(3종 일반주거지역)에 적용하는 법적 상한용적률인 300%를 크게 웃돌았다.
리모델링 조합이 한정된 땅에 건물을 더 높고 빽빽하게 짓겠다고 나서면서 리모델링 후 주거환경이 더 나빠지는 사례도 나온다. 송파구 가락동에 있는 B단지의 경우 계획대로 리모델링을 할 경우 낮에도 햇볕이 들어오지 않는 가구(영구음영)가 기존 190채에서 643채로 3.38배 늘어난다. 기존 2000채를 2300채로 규모를 늘린다는 점을 고려하면 영구음영 비중은 9.2%에서 27.4%로 약 3배 증가한다. 2시간 연속 일조가 불가능해 일조권을 침해받는다고 볼 수 있는 가구는 전체 규모의 53.4%에서 63.2%로 늘어난다. 이처럼 주거환경이 열악한 가구는 대부분 리모델링 조합원이 아닌 일반에 분양될 전망이다.
건축 기준 완화 요청도 많았다. 리모델링은 건물의 바닥면적을 넓히거나, 별도의 건물을 추가로 짓는 식으로 증축해 가구별 평형을 넓히고 신규 분양 물량을 확보한다. 이때 인근 주거동이나 보도 등과의 의무 거리를 확보하지 않은 채 딱 붙여서 건물을 짓는 계획을 밀어붙이고 있는 것이다. 백준 J&K 대표는 “단지 빈틈에 신축을 세우다 보니 일조, 조망 등에서 피해를 보는 가구가 나오고 특정 가구는 발코니 바로 앞이 가로막히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리모델링 단지들이 이처럼 무리한 계획을 추진하는 이유는 수익성을 위해 보유한 땅을 최대한 활용하려 하기 때문이다. 리모델링은 기존 규모 대비 15%만 가구 수를 늘리도록 제한돼 있고, 수직증축도 불가능하다.
하지만 무리한 추진을 제어할 법적 근거는 불분명하다. 재건축, 재개발 등 정비사업이 각종 심의를 통과해야 추진할 수 있는 것과 대조적이다. 김지엽 성균관대 건축학과 교수는 “리모델링 사업도 경관 독식을 막고 담장 철거 등 열린 단지를 조성해 인근 주민과 조화를 추구하도록 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리모델링이 한강변 키높이기 ‘꼼수’에 동원되기 전에 지자체와 정부가 제도 정비에 나서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2030 서울시 공동주택 리모델링 기본계획’에 따르면 용적률, 주택 시세 등을 고려했을 때 규모를 늘리는 방식으로 리모델링을 할 수 있는 단지는 898곳, 77만4432채에 이른다. 서울시 관계자는 “올해 말 리모델링 관리 기준에 관한 용역 결과를 내놓을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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