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를 내놨던 손님 중 20~30%는 최근에 반전세로 조건을 바꿔 매물을 내놨고, 나머지는 우왕좌왕하면서 고민하고 있습니다. 9일에도 원래 전세 6억5000만~6억7000만 원에 나온 물건이 반전세 보증금 3억 원에 월 160만 원으로 바꿔서 계약됐습니다.” (A공인중개사무소)
올해 11월 입주를 앞둔 서울 동대문구 4169채 규모 이문아이파크자이. 23일 부동산 플랫폼 아실(아파트실거래가)에 따르면 이 단지 전월세 매물 1594채 중 3분의 1이 넘는 579채(36.3%)는 월세였다. 보통 신축 아파트 입주 때는 집주인이 잔금을 치르기 위해 전세를 놓는 경우가 많은데, 이와 다른 흐름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전세의 월세화 현상이 시세 대비 저렴한 전세 매물이 많이 나오던 신규 입주 아파트에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다. 소유권 이전을 조건으로 하는 전세자금대출이 금지되고, 세입자의 전세금 반환을 위해 받는 전세퇴거자금 대출도 1억 원으로 제한되면서 집주인과 세입자 모두 전세를 피하는 모습이다.
●대출 규제 이후 전세는 줄고, 월세는 늘어
지난달 입주를 시작한 서울 서초구 메이플자이(3307채) 역시 아실 기준 전세가 1272건, 월세가 1059건으로 물량이 거의 같다. 6·27 대출 규제로 ‘소유권 이전 조건부 전세대출’이 금지되면서 세입자가 대출받은 전세 보증금으로 분양 계약자가 잔금을 치르고 소유권을 이전받는 방식이 불가능해진 영향이 크다. 세입자가 대출 없이 낼 수 있을 정도로 보증금을 낮추는 대신 월세를 받는 매물이 많아진 것이다.
실제로 이날 아실에 등록된 서울 아파트 전세 물량은 2만4343개로 6·27대출 규제 전인 지난달 27일(2만4855개) 대비 2.1% 감소했다. 반면 월세 물량은 대출 규제 전날(1만8796개)보다 3.4% 증가한 1만9449개로 집계됐다.
통상 계약조건을 유지하기 마련인 갱신계약에서도 전세를 월세로 전환하는 비중이 늘었다. 6월 28일부터 이달 23일까지 전세에서 월세로 바꾼 갱신계약은 230건으로 전체 갱신계약(4912건)의 4.68%였다. 반면 대출 규제 이전 같은 기간(6월 2일~27일) 전세에서 월세로 바꾼 갱신계약은 전체 갱신계약(6923건)의 4.16%에 그쳤다.
●퇴거대출 1억 원 제한에 세입자도 불안
세입자에게 전세금을 돌려주기 위해 집주인이 받을 수 있는 전세퇴거자금대출 한도가 1억 원으로 묶인 점도 월세 증가를 부채질하고 있다. 전세사기 여파에 이어 퇴거대출 한도가 묶이면서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할 수 있다는 불안감이 커지면서 세입자도 전세를 꺼리는 것이다.
서울 마포구 인근 공인중개사 B씨는 “최근 전세 가격이 많이 올랐는데 대출도 어려워지고 보증금 반환 리스크도 커지면서 손님들도 오히려 월세를 찾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다”며 “다음 달 1일 입주하는 30대 신혼부부도 25평 오피스텔을 보증금 3000만 원, 월세 150만 원에 계약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전세의 월세화 현상이 가속화되는 만큼 주거비 부담을 낮출 수 있는 정책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박원갑 KB국민은행 부동산수석전문위원은 “전세의 월세화는 주거의 계층 사다리가 끊어지는 것을 의미한다”며 “보완할 수 있는 대책이 뒷받침돼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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