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정부 출범 이후 상법 개정안 등 주주 환원 정책에 힘이 실리면서 주요 대기업들이 자금 조달에 몸을 사리고 있다. 자회사 기업공개(IPO), 유상증자 등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소액 주주들의 반발에 직면할 가능성이 커졌기 때문이다. 대규모 투자를 뒷받침하는 자금 조달이 막히면 결국 투자 위축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25일 한국예탁결제원에 따르면 올 상반기(1∼6월) 동안 국내 기업들은 IPO를 포함한 유상증자로 9조554억 원의 자금을 조달했다. 지난해에는 약 26조 원 규모의 자금이 조달되는 등 유상증자는 기업들의 주요 자금 조달 방식으로 꼽힌다. 하지만 새 정부 출범 첫 달인 지난달에는 비비안, 한세엠케이 두 곳만 약 246억 원의 자금을 확보했다. 이는 전년 동기(약 1조 원) 대비 크게 줄어든 수준이다. 포스코퓨처엠은 5월부터 유상증자를 추진해왔으나, 금융감독원이 증권신고서에 대한 정정 제출을 요구하면서 신주 상장 날짜가 다음달 8일로 미뤄진 상태다.
유상증자는 기업이 주식을 새로 발행해 설비 투자, 연구개발(R&D) 등의 자금을 마련하는 것을 뜻한다. 테슬라는 2016년 모델3 생산기지 구축, 2020년 글로벌 생산기지 확장 등을 이유로 여러 차례 조 단위 유상증자를 단행해 대규모 투자로 성장한 글로벌 기업으로 꼽힌다.
기업의 주요 자금 조달 방식인 유상증자가 최근 위축된 것은 소액 주주들의 반발을 우려해 기업들이 몸을 사리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재계 관계자는 “유상증자가 곧 주가 하락이라는 부정적 인식이 커진 데다 상법 개정 이후 주주들의 소송 리스크도 무시할 수 없는 상황”이라며 “정치권의 눈치도 볼 수밖에 없다”고 했다.
대기업 계열사의 IPO에도 적신호가 켜진 상태다. 최근 SK이노베이션은 윤활유 사업 자회사인 SK엔무브의 상장 작업을 중단한 바 있다. 모회사와 자회사가 상장하는 이른바 ‘중복 상장’ 논란을 의식한 행보로 풀이된다.
기업들의 주식 발행이 어려워지면 은행 대출, 회사채 발행, 자산 유동화 및 매각 등의 형태로 자금 조달에 나설 수밖에 없다. 문제는 회사채 발행이나 은행 대출의 경우 부채 비율을 높여 신용도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낮아진 신용등급이 조달 비용을 높이는 ‘악순환’에 빠질 수 있다는 점이다. 재계 관계자는 “대규모 투자를 단행할 때 재무 건전성을 강화하는 차원에서 회사채 발행보다 유상증자가 유리한 경우가 많다”며 “단기적인 주가 하락 우려만으로 유상증자를 무조건 나쁘게 보는 것은 기업 투자를 위축시킬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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