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제 같은 모터쇼 ‘영국 굿우드 페스티벌’

  • 주간동아
  • 입력 2025년 7월 27일 09시 5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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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진혁의 Car Talk] 7월 10~13일 개최… 실제 달리며 자동차 엔진음·속도 체감

자동차 팬들에게 총체적인 경험을 제공해 인기를 끌고 있는 ‘굿우드 페스티벌 오브 스피드’ 현장. ‘굿우드 페스티벌 오브 스피드’ 제공
자동차 팬들에게 총체적인 경험을 제공해 인기를 끌고 있는 ‘굿우드 페스티벌 오브 스피드’ 현장. ‘굿우드 페스티벌 오브 스피드’ 제공
한때 모터쇼는 자동차 브랜드가 신차를 알리는 최고 무대로 통했다. 요즘 분위기는 다르다. 모터쇼가 점점 힘을 잃어가고 있다. 신차를 전시하는 것만으로는 자동차 팬의 흥미를 끌기 어려워서다. 한정된 공간에 차량이 놓여 있는 게 전부이다 보니, 새로움과 재미를 갈망하는 이들에겐 밋밋한 경험이 될 수밖에 없다. 영상과 온라인 홍보 채널에 익숙한 소비자는 굳이 북적이는 전시장까지 갈 필요를 느끼지 못한다. 특히 전기차나 자율주행차 등 첨단기술은 체험, 시승, 퍼포먼스가 있어야 직관적으로 전달된다. 결과적으로 모터쇼 방문객은 줄고, 관련 업계의 관심도 시들해졌다.

힐클라임에서 만나는 ‘진짜 속도’
그렇다면 모터쇼가 다시 살아날 방법은 뭘까. 차량 전시를 넘어 브랜드와 팬이 직접 만나 경험이나 이야기를 공유하는 축제의 장으로 변모해야 한다. ‘굿우드 페스티벌 오브 스피드’(굿우드 페스티벌)가 바로 그 사례다.

굿우드 페스티벌은 1993년 리치먼드 공작이 시작한 자동차 축제다. 좁고 험해 주행이 까다로운 1.86㎞ 길이 ‘힐클라임’ 트랙에서 자동차들이 실제로 질주한다는 게 이 페스티벌의 특징이다. 9개 코너와 고저차 92.7m의 언덕이 존재하는 힐클라임에서는 클래식카부터 최신 전기 하이퍼카까지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종류의 자동차가 ‘진짜 속도’를 보여준다.

굿우드 페스티벌에 가면 다양한 이벤트와 전시도 즐길 수 있다. 세계적 드라이버들의 ‘발코니 모먼트’ 퍼포먼스, 명차를 한자리에 모은 ‘까르띠에 스타일 엣 룩스(Cartier Style et Luxe)’, 첨단기술을 선보이는 ‘퓨처 랩’ 등이 그것이다. 전통 모터쇼에서는 볼 수 없는 ‘살아 있는 자동차 경험’은 굿우드 페스티벌을 독보적으로 만드는 요소다.

또한 이 축제는 해마다 특정 주제를 정해 자동차와 모터스포츠의 역사, 혁신, 문화 등을 조명하며 행사의 깊이를 더한다. 7월 10일부터 13일까지 영국 웨스트서식스에서 열린 올해 굿우드 페스티벌의 테마는 자동차 경주대회 ‘포뮬러1(F1)’ 75주년과 ‘고든 머레이 오토모티브’ 60주년이었다. 고든 머레이 오토모티브는 F1의 전설적인 엔지니어 고든 머레이가 설립한 자동차 브랜드다. 오랜 역사 속에서 이어져온 자동차업계의 도전과 진화를 풀어내기에 부족함이 없는 키워드다.

이처럼 자동차를 보기만 하는 행사가 아니라, 달리고 느끼고 함께 즐기는 축제로서 더욱 특별했던 올해 굿우드 페스티벌에서 현대차는 많은 이의 관심을 모았다. 고성능 전기 세단 아이오닉 6N을 무대 중앙에 올려 브랜드의 전동화 전략과 고성능 브랜드 N의 위상을 확실히 보여준 것이다. 아이오닉 6N은 2023년 선보인 아이오닉 5N을 잇는 모델로, 힐클라임 트랙에서도 강력한 퍼포먼스를 선보였다. 더불어 N 모먼트 퍼포먼스 세션에서는 월드랠리챔피언십(WRC) 차량들과 함께 레이싱 DNA를 강조해 현대차가 고성능 전기차 시대를 선도하고 있음을 각인했다.

람보르기니가 올해  ‘굿우드 페스티벌 오브 스피드’에서 최초 공개한 ‘테메라리오 GT3’. 람보르기니 제공
람보르기니가 올해 ‘굿우드 페스티벌 오브 스피드’에서 최초 공개한 ‘테메라리오 GT3’. 람보르기니 제공
브랜드와 팬이 함께 즐기는 축제
영국을 대표하는 스포츠카 브랜드 로터스는 전통과 혁신의 조화를 앞세웠다. F1 전설 짐 클라크와 아일톤 세나의 영광을 재연하는 동시에, 미래 전기차 콘셉트 ‘띠어리 1(Theory 1)’을 공개해 브랜드의 새로운 도약을 예고했다. 힐클라임 세션에서는 하이퍼카 ‘에바이야’, 하이퍼 그랜드 투어러(GT) ‘에메야’,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엘레트라’ 등 다양한 라인업을 선보이며 관람객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또한 다양성과 포용성을 주제로 Q&A 세션까지 마련해 관람객과 깊이 있는 교감을 이어갔다.

람보르기니는 ‘테메라리오 GT3’를 세계 최초로 공개했다. GT3 레이스카는 경량화 및 구조적 개선을 통해 트랙 퍼포먼스에 최적화됐고, 4.0L V8 트윈터보 엔진을 탑재해 강력한 출력과 민첩함을 자랑한다.

애스턴마틴은 슈퍼카 ‘발할라’로 이목을 집중했다. ‘Q 바이 애스턴마틴’ 비스포크 스펙으로 제작된 이 모델은 힐클라임 트랙에서 탁월한 성능을 입증했다. 동시에 ‘DB12 볼란테’ ‘반퀴시 볼란테’ 등 역사적인 모델들도 함께 공개해 전통과 혁신의 조화를 완성했다.

혼다는 전동화의 미래를 대표하는 ‘혼다 제로 SUV’ 프로토타입과 ‘슈퍼 EV 컨셉트’를 세계 최초로 공개하며 브랜드 정체성에 힘을 실었다. 타이어 브랜드 피렐리는 ‘5세대 피제로 타이어’ 40주년을 맞아 초고성능 타이어의 힘을 보여줬다.

한편 F1 본사 관계자들과 9개 팀 대표, 그리고 드라이버들이 한자리에 모여 올해 축제의 품격을 높였다. 특히 하스 F1 팀의 진 하스 오너가 직접 차량을 운전하는 모습은 브랜드와 팀이 굿우드 페스티벌에서 얼마나 진심으로 소통하는지 보여준 상징적인 순간이었다.

굿우드 페스티벌은 이처럼 브랜드와 팬이 함께 즐기는 축제다. 관람객은 힐클라임에서 질주하는 자동차의 엔진음, 진동, 속도를 체감한다. 또 전시부터 레이서와의 인터뷰 관람까지 모든 것이 경험이다. 모터쇼가 살아남으려면 이런 총체적 경험을 제공해야 한다. 신차 발표만으로는 관람객의 눈길을 붙잡을 수 없다. 역사와 문화를 접목해 자동차를 사랑하는 사람들과 공감대를 형성해야 한다. 팬들이 오프라인 전시에 가는 이유는 명확하다. 그들은 쇼룸보다 살아 있는 무대를 원한다.

[이 기사는 주간동아 1499호에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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