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엔비디아는 미국 정부가 엔비디아의 중국 전용 인공지능(AI) 그래픽처리장치(GPU) H20의 수출 승인을 진행하고 있다고 밝혔다. 중국으로의 AI GPU 판매가 재개될 것임을 시사한 것이다.
엔비디아의 최고경영자(CEO) 젠슨 황은 여러 차례에 걸쳐 미국의 대중(對中) 반도체 수출 통제를 우려해 왔다. 그는 미국의 규제가 오히려 중국 내 기술 개발을 가속화해 자체 기술력을 갖출 수 있다고 경고했다. 젠슨 황은 미국이 글로벌 AI 시장에서 주도적 위치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미국 기업들이 세계 최대 반도체 시장인 중국에 계속 제품을 공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강경 일변도의 반도체 제재 정책을 유지하고 있는 미 정부가 예외적으로 H20의 수출 재개를 승인했다는 것은 젠슨 황의 호소가 어느 정도 받아들여진 결과로 볼 수 있다.
미국 정부가 엔비디아의 H20의 대중 수출을 허용한 배경에는 단기간 내 미국 내에서 첨단 반도체를 안정적으로 생산하기 어렵다는 현실이 자리하고 있다. 미국 내 반도체 제조 생태계는 아직 대만, 한국, 일본, 중국 등 아시아보다 열위에 있다. 첨단 공정 기반 인프라 및 인력도 부족하다. 이런 제약은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강조한 미국 내 반도체 제조 복귀(Reshoring) 전략의 단기 실행 가능성을 낮추고 있다. 이에 따라 현실적인 공급망 유지 차원에서 중국 시장과의 일정 수준의 교역 지속이 불가피하다는 판단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이는 반도체에 대한 고율 관세 부과가 제한적일 것임을 시사한다. 반도체에 고율 관세를 부과하면 미국 내 AI 인프라 구축 비용이 급증함에 따라 오히려 자국 기업들의 경쟁력 약화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엔비디아, AMD 등 주요 팹리스 기업은 대부분의 생산을 TSMC를 포함한 아시아 파운드리에 의존하고 있다. 완성품 조립 및 테스트도 대부분 중국과 대만 밸류체인(가치사슬)에 의존하고 있다. 이런 구조에서 관세 부과는 미국 기업들에 실질적 부담으로 작용한다. 이 때문에 AI 패권 경쟁의 우위를 점하고자 하는 미국으로서는 반도체에 대한 관세 부과 정책을 쉽게 단행하기 쉽지 않다.
H20 수출 재개 조치만으로 미국의 대중 반도체 제재 정책의 전환이 이루어졌다고 보기는 어렵다. 일시적 예외 적용에 가깝고, 향후 정치·외교적 상황에 따라 언제든지 다시 규제가 강화될 수 있다. 따라서 기업과 투자자는 제재 완화 또는 강화 등 한쪽 방향으로의 과도한 기대를 갖기보다 불확실성이 상존하는 환경에 대응할 수 있는 전략적 유연성과 리스크 관리 역량을 강화하는 데 초점을 맞출 필요가 있다. 단기적인 뉴스 흐름에 일희일비하지 말고 미중 간 기술 패권 경쟁이라는 거시적 관점에서의 방향성과 구조적 변화에 주목하며 중장기적 관점에서 대응 전략을 수립하는 것이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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