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씨는 상장기업 B의 대주주로 있으면서 B의 전환 사채를 본인의 가족이 설립한 법인에 저렴하게 넘겼다. 이후 주가 조작을 목적으로 B의 해외 자원 개발 계획을 허위로 공시했다. 주가는 곧바로 3.5배 급등했고, A 씨는 가족 법인에 넘긴 B의 전환 사채를 주식으로 전환한 뒤 매도했다. 이 과정에서 소액 투자자들은 막대한 손실을 입은 반면 A 씨는 수백억 원의 시세 차익을 거두고도 세금을 한 푼도 신고하지 않았다.
정부가 주가 조작 등으로 막대한 시세 차익을 챙기며 주식 시장을 교란해 온 27개 기업을 대상으로 세무조사에 착수한다. 소액 주주들의 이익을 침해하는 불공정 탈세 행위를 차단하고 정당한 몫의 세금을 부과하기 위한 조치다.
29일 국세청은 주식 시장을 교란시켜 부당한 이익을 얻고도 정당한 몫의 세금을 부담하지 않는 불공정 행위 탈세자를 대상으로 세무조사를 실시한다고 밝혔다. 조사 대상은 △주가조작 목적의 허위 공시 기업 △먹튀 전문 기업 사냥꾼 △상장기업 사유화로 사익을 편취한 지배주주 등 주식 시장에서 소액 주주의 이익을 침해한 27개 기업 및 관련인들이다.
허위 공시로 주가를 띄운 후 주식을 대량 매도해 막대한 시세 차익을 누린 9개 기업의 경우 허위 공시 직후 평균 64일 만에 주가가 400% 가량 치솟은 뒤 폭락한 것으로 드러났다. 허위 공시를 믿고 투자한 소액 주주들은 회복할 수 없는 손실을 떠안았지만 시세 조종 세력들은 최소한의 세금 납부조차 하지 않았다. 조합원 정보가 노출되지 않는 투자조합을 설립해 친인척 등의 명의로 주식을 분산 취득한 뒤 되파는 방식으로 납세 의무를 회피했기 때문이다.
국세청은 사채를 동원해 건실한 기업을 사들인 후 온갖 명목으로 자금을 빼돌려 ‘먹튀’한 기업 사냥꾼 8곳을 대상으로도 세무조사에 착수했다. 조사 대상 기업 대부분은 기업 사냥꾼들로 인해 주식 거래가 정지되거나 상장폐지된 것으로 확인됐다. 거래가 재개된 기업 역시 기업 사냥꾼들이 개입하기 전보다 주가가 약 86% 하락한 것으로 나타났다.
국세청 관계자는 “기업 사냥꾼들은 인수 회사의 알짜 자산을 담보로 돈을 빌리거나 팔아 치우고, 온갖 투자 명목으로 자금을 빼돌렸다”며 “빼돌린 회삿돈은 경영 자문 대가를 지급한 것으로 위장해 세금을 탈루하거나 회사 비용으로 고가 수입차와 명품을 구매하는 등 호화 사치 생활을 누리기도 했다”고 설명했다.
지배주주가 상장기업을 사유화하는 방식으로 소액 주주들의 권리를 침해한 10개 사례도 조사 대상에 포함됐다. 이들은 본인이 지배하는 상장회사의 호실적을 발표하기 전 자녀의 회사가 해당 주식을 취득하게 한 뒤 시세차익을 얻도록 도왔다. 경영권 승계를 위해 불공정 합병과 일감 몰아주기 등으로 자녀에게 세금없이 자산을 이전한 경우도 적발됐다. 조사 대상자의 자녀들은 평균적으로 증여 재산가액의 91.5%를 축소 신고해 세금을 탈루한 것으로 분석됐다.
국세청은 이번 조사 대상자가 고의로 재산을 처분할 우려가 있는 경우 세금 부과 전이라도 압류(확정 전 보전 압류)를 실시하고 조세 범칙 행위가 적발될 경우 수사기관에 통보할 방침이다. 국세청 관계자는 “앞으로도 자체 정보 수집을 강화하는 한편, 수사 기관 및 금융 당국과도 정보를 빈틈없이 공유하며 주가 조작 행위에 강력히 대처해 나갈 것”이라며 “이번 조사에서 확인된 불공정 행위 등은 모든 투자자들이 확인할 수 있도록 관련 내용을 공시하는 방안도 관계 기관과 협의하겠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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