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루스트의 소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서 영감을 받은 생로랑의 캠페인 패션 필름. 생로랑 공식 유튜브
최근 몇 년 사이 명품 브랜드들이 문학에 주목하고 있다. 단편소설을 쓰거나, 매장에 서점과 카페를 들이고, 공간을 도서관처럼 꾸미는 브랜드도 있다. 화려한 이미지 대신 문장을 앞세우며 감성적인 소통을 시도하는 흐름이다. 이러한 변화는 최근 유행한 ‘텍스트 힙’ 트렌드와도 맞닿아 있다. 짧은 글귀를 활용한 굿즈나 콘텐츠가 인기를 끌고, 책을 매개로 한 커뮤니티가 활발하게 형성되는 가운데 문학은 다시 주목받는 문화 코드가 됐다.
프라다는 이전부터 문학을 브랜드 아이덴티티의 새로운 축으로 삼고 있다. 단순한 문화 후원을 넘어, 문학을 통해 브랜드의 감성과 세계관을 보다 깊이 있게 구현하려는 시도로 읽힌다. 프라다는 이미 ‘프라다 저널’이라는 문학 프로젝트를 통해 이러한 접근을 시도한 바 있다. 전 세계 신진 작가들을 대상으로 한 이 공모전은 일상 속 이미지를 탐구하고, 글쓰기로 그 의미를 재구성해보는 기회를 마련했다.
문학으로 연결되는 컬렉션
2025 S/S 캠페인 ‘Acts Like Prada’는 그 정점에 있다. 배우 케리 멀리건이 주연을 맡고, 작가 오테사 모시페그가 캠페인 속 여성 캐릭터 10명을 위한 단편소설을 집필했다. 번역가, 인형술사, 사진작가 등 다양한 서사를 지닌 이 인물들은 프라다 컬렉션을 입고 각자의 이야기 안에서 생동감을 얻는다. 이들의 이야기를 담은 소설집 ‘Ten Protagonists(10명의 주인공)’는 일부 부티크에서만 한정 판매돼 수집가들의 주목을 받았다.
샤넬과 생로랑은 문학을 브랜드의 정체성을 풍성하게 만들어주는 소재로 삼는다. 특히 샤넬은 창립자 가브리엘 샤넬이 생전 시인 피에르 르베르디, 장 콕토 등과 교류했던 문학적 유산을 바탕으로 2021년부터 ‘Les Rendez-vous littéraires rue Cambon(깜봉가에서의 문학적 만남)’을 운영하고 있다. 이 프로그램은 여성 작가, 학자, 예술가들과의 대담과 팟캐스트로 구성되어 있으며, 최근에는 신진 여성 작가를 위한 문학상도 신설해 문학과 브랜드 철학의 연대를 더욱 확장 중이다.
생로랑은 창립자 이브 생 로랑이 20세기 문학의 초석을 닦은 소설가 마르셀 프루스트의 열렬한 팬이었던 만큼, 브랜드에도 문학적 감수성이 깊이 배어 있다. 최근에는 프루스트의 소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서 영감을 받은 캠페인 패션 필름을 공개하며 고전문학의 정서를 브랜드 미학으로 해석했다. 이처럼 두 브랜드는 문학을 일회성 장치가 아닌 브랜드의 세계관을 내면에서부터 단단히 받쳐주는 문화적 기반으로 삼는다.
문학 작품을 직접 만들거나 출판하지 않더라도 브랜드 고유의 감각으로 문학을 선별하고 제안하는 방식도 눈길을 끌고 있다. 미우미우는 매년 여름 ‘서머 리즈(Summer Reads)’ 팝업을 통해 여성 작가들의 고전을 브랜드 포장지로 감싼 북 큐레이션 프로젝트를 진행한다. 일부는 북 클럽 형태로 운영된다.
현재 럭셔리 브랜드가 문학을 선택한 이유는 빠르게 소비되고 잊히는 이미지 대신 깊고 오래 남는 서사로 연결되길 바라기 때문이 아닐까. 소비자는 브랜드가 제안하는 서사에 발을 들이는 순간 단순히 무언가를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이야기를 ‘살아보는’ 경험을 하게 된다. 럭셔리가 제안하는 사치는 그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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