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반도체에 100% 관세를 부과할 것”이라고 밝히면서 한국 반도체 업계가 긴장하고 있다. 미국에 생산시설을 가진 기업들은 이번 관세 부과의 대상인지 아직 명확하지 않아 당분간 경영 불확실성에 시달릴 가능성이 커졌다.
● 예측 못한 반도체 관세 100%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이 알려진 7일 국내 반도체 업계는 관세의 강도가 예상보다 강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한 반도체 기업 관계자는 “15% 상호 관세율에는 ‘다른 나라보다 손해 보는 건 아니니 해볼 만하다’는 분위기였는데, 예상치 못하게 반도체 품목 관세가 100%가 될 수 있다고 하니 불안감이 커진 상황”이라고 전했다.
아직 불확실성이 남은 것도 우려할 점으로 꼽힌다.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 내 반도체 생산을 약속하거나 진행 중인 경우 관세를 면제할 것”이라고 했다. 이 경우에도 외국 반도체 기업의 경우 미국 내 생산 물량에 한해 관세 면제를 하는지, 아니면 본국 생산분까지인지가 불명확하다. 미국 빅테크 기업들을 주력 고객사로 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고율 관세 대상이 될지 노심초사하고 있다. 한 업계 관계자는 “기업이 가장 싫어하는 것이 불확실성인데, 지금이 정확히 그런 상황”이라고 말했다.
다만 업계에선 트럼프 대통령의 ‘반도체 관세 100%’ 발언을 미국 내 반도체 생산을 압박하는 의도로 보는 해석이 우세하다. 미국에 생산 기지를 갖춘 기업에 ‘눈에 띄는’ 혜택을 준 뒤, 다른 글로벌 반도체 기업들의 미국 투자를 유도하는 포석이라는 것이다.
이 경우 한국은 다른 국가보다 상황이 나을 수 있다. 국내 반도체 기업들은 이미 미국 현지에 대규모 생산 시설을 확충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텍사스주 오스틴에서 파운드리 공장을 운영 중이고, 2026년 가동을 목표로 텍사스주 테일러 지역에 370억 달러 규모의 반도체 공장을 짓고 있다. SK하이닉스는 2028년 가동을 목표로 인디애나주 웨스트라피엣에 38억7000만 달러 규모의 고대역폭메모리(HBM) 패키징 공장을 건설할 예정이다.
● “최혜국 대우만 믿고 안심은 금물”
그러나 만일 미국이 현지 생산 물량에만 반도체 관세를 면제해 주겠다고 나오면 상황이 달라진다. 삼성전자는 일부 물량만 미국에서 생산하고 있을 뿐 대부분은 한국이나 중국 공장에서 생산해 미국에 수출하고 있다. SK하이닉스는 아직 미국에 생산 기반이 없다. 미국 외 생산 반도체에 100% 관세를 매기는 것이 현실화된다면 국내 반도체 기업들의 충격은 상당히 커질 수 있다.
전문가들은 한국 정부가 미국 정부의 ‘최혜국 대우’ 약속만 믿고 있을 상황이 아니라고 경고한다. 권석준 성균관대 화학공학부 교수는 “반도체 관세 부과 품목이 완제품, 부품, 가공품 중 무엇일지 명확하지 않다”며 “만약 부품 반도체가 관세 부과 품목이 될 경우 D램, 낸드, HBM 등 부품 반도체가 주력인 한국 업체가 더 큰 타격을 입을 수 있다”고 말했다.
반도체 업계에선 대미 투자를 앞으로 지금보다 더 늘려야 할지 고민도 커지고 있다. 김양팽 산업연구원 전문연구원은 “반도체에 고관세를 부과하면 미국 기업도 그만큼 비싸게 반도체를 사야 하고, 미국 반도체 기업 마이크론 역시 주요 생산 시설이 일본 대만 등 아시아에 있다”며 “반도체 고관세가 미국 기업에도 유리하지 않은 만큼 미국 현지 투자 여부를 성급하게 결정할 필요는 없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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