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전역과 농촌·도서 지역을 제외한 경기·인천 대부분 지역이 외국인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지정된다. 앞으로 해당 지역에서 외국인이 아파트 등 주택을 구입할 때는 지방자치단체의 허가를 받아야 하고, 최소 2년간 실거주해야 한다. 그동안 안보상의 이유로 일부 지역에서 외국인의 토지 거래를 제한한 적은 있지만 부동산 시장 안정을 목적으로 규제를 도입한 건 외국인에게 부동산 시장을 개방한 1998년 이후 처음이다.
국토교통부는 26일부터 내년 8월 25일까지 서울 전 지역과 경기 성남시 고양시 등 23개 시군, 인천 중구 연수구 등 7개 구를 외국인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지정한다고 21일 밝혔다. 앞으로 이 지역에서 외국인이 아파트, 단독주택, 다세대 및 연립주택을 거래하려면 소재지 시군구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 한국 국적이 없는 개인뿐만 아니라 외국 법인과 정부도 대상이다. 오피스텔은 업무 공간으로 분류돼 제외됐다.
거래 허가를 받은 외국인은 허가일로부터 4개월 이내 입주해야 하며, 주택 취득 후 2년간 실거주해야 한다. 이를 위반할 경우 취득가액의 10% 내에서 이행강제금이 부과된다.
거래 허가를 받아 계약을 맺은 뒤 30일 내에 자금조달계획서와 입증 자료를 제출하도록 하는 방안도 추진된다.
현재는 내·외국인 구분 없이 투기과열지구에서만 제출하도록 하고 있다. 자금조달계획에는 해외 차입 금액이나 해외 금융기관명 등 자금 출처와 체류자격 유형 등도 적어야 한다. 외국인 주택 거래 조사도 강화해 해외 금융당국이나 과세당국에 자금세탁, 탈세 등이 의심되는 거래를 통보하는 방안도 도입한다. 이번에 지정된 토지거래허가구역은 시장 상황에 따라 기간 연장도 검토할 계획이다.
이상경 국토부 제1차관은 “실거주하지 않는 외국인의 수도권 주택 매입이 증가하고 있다”며 “외국인의 시장 교란 행위를 원천적으로 차단할 것”이라고 밝혔다.
5년간 서울 주택 매입 중국인이 최다… ‘갭투자 쇼핑’ 원천 차단
[외국인 ‘아파트 쇼핑’ 막는다] 중국인 매입 4982건, 미국인의 2배… 허가구역 거래, 자금출처 조사 강화 실거주 안하면 집값 10% 이행강제금 ‘내국인 역차별’ 비판에 제도 개선… “실거래 단속 강화 등 실효성 높여야”
정부가 26일부터 서울 전역과 경기, 인천 대부분 지역을 외국인 토지거래허가구역(허가구역)으로 지정한 것은 최근 중국인 등 외국인의 국내 부동산 ‘쇼핑’이 늘어나면서 부동산 시장 불안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판단한 결과로 풀이된다. 6·27 대출 규제 이후에는 ‘내국인에 대한 역차별’이라는 비판과 함께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계속되기도 했다. 다만 이번 규제가 실효성을 가지려면 실거주 단속 등이 제대로 이뤄져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번 허가구역 지정으로 앞으로 외국인과 외국 정부, 법인은 수도권 대부분 지역에서 주택을 매입할 때 전월세를 끼고 매입하는 것이 불가능해진다. 허가구역으로 지정되면 실거주 의무를 지켜야 하기 때문에 전월세를 낀 ‘갭투자’는 허가를 받을 수 없기 때문이다.
실거주 의무 위반이 확인되면 소재지 지방자치단체장이 3개월 내 입주하도록 이행 명령을 내리게 된다. 이마저도 어기면 취득가액의 최대 10%를 이행강제금으로 내야 한다. 예를 들어 15억 원짜리 아파트를 매수한 외국인은 최대 1억5000만 원을 내는 식이다. 이행강제금은 실거주할 때까지 반복 부과가 가능해 한도가 없다.
또 관련 시행령을 개정해 올해 말부터는 허가구역에서 거래를 하면 계약일로부터 30일 내에 자금조달계획서, 증명서류를 제출하도록 의무화한다. 특히 해외에서 차입한 자금은 해외 금융기관명, 차입 금액, 송금 금액 등을 기재해야 한다. 외화 반입 신고를 했는지, 매수자의 체류 자격은 무엇인지도 기재하도록 한다. 해외 자금을 불법 반입한 것은 아닌지 적발할 때 활용하기 위해서다. 국토교통부는 이날 “외국인이 주택을 처분한 뒤 양도차익이 발생했고, 세금 추징이 필요하다고 판단되면 해외 과세당국에 관련 내용을 전달할 것”이라고도 밝혔다.
최근 외국인의 수도권 주택 거래는 가파르게 늘고 있다. 국토부에 따르면 지난해 외국인의 수도권 주택 거래는 7296건으로 전년(6363건) 대비 14.7%, 2022년 대비로는 59.7% 증가했다. 올해 1월부터 7월까지 거래 건수는 4431건으로, 이대로라면 연말에는 지난해 거래량을 넘어설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중국인의 부동산 매수가 늘고 있다. 대법원 등기정보광장에 따르면 2020년부터 올해 7월까지 서울에서 가장 많은 집합건물(아파트, 오피스텔, 다세대주택 등)을 매수한 외국인은 중국인(4982건)이었다. 이어 미국(2521건), 캐나다(777건) 순이었다.
외국인이 고가 주택을 전액 현금으로 매입하는 사례도 다수 있었다. 국토부에 따르면 25세 외국인이 전액 예금으로 서울 성북구 단독주택을 사들이거나, 180억 원에 서울 용산구 아파트를 전액 현금으로 매입했다고 기재한 사례도 있다. 지난해 11월에는 40대 우즈베키스탄인이 서울 서초구 반포동 ‘반포자이’ 전용면적 244㎡를 직전 최고가보다 3억 원 높은 74억 원 전액 현금으로 매수해 화제가 된 일도 있다. 중국 정부가 서울 용산의 대통령실과 주한 미국대사관 신축 부지 인근에 토지를 매입한 것이 최근 알려지면서 논란이 되기도 했다.
2023년 8월 위탁관리인 제도가 생기며 국내 주택 매입이 더 쉬워졌다는 지적도 나온다. 국내 비(非)거주 외국인이 국내 주택을 매입할 때 위탁관리인을 지정해 신고하는 제도다. 이 제도가 사실상 실거주 목적 없는 투기성 거래에 이용되고 있다는 것이 국토부의 판단이다.
● “실거래 단속 등 실효성 높여야” 지적
해외에서도 최근 외국인 부동산 거래 규제는 늘어나는 추세다. 중국은 1년 이상 실거주해야 주택 취득이 가능하다. 캐나다는 2023년부터 외국인의 주거용 부동산 취득을 금지하고 있다. 호주도 올해 4월부터 외국인의 기존 주택 취득을 제한하고 있다.
이번 조치가 실제 시장 안정 효과를 거두려면 실거주 의무 단속이 관건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2020년부터 올해 4월까지 서울 허가구역에서 실거주 의무 위반으로 이행강제금이 부과된 사례는 총 6건, 부과금액은 6680만 원에 그친다. 이행강제금보다 집값 상승분이 더 크다고 판단할 경우 강제금만 내며 규정을 지키지 않을 가능성도 있다. 또 이번 규제는 이미 국내에 주택을 매입한 외국인에게는 적용되지 않는다. 국토부는 “실거주 의무를 이행하지 않으면 강제금 외에 허가 취소까지 검토할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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