車-반도체 등 美품목관세 후속조치 감감… “포에버 협상 대비를”

  • 동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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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역 합의 했지만 구체적 내용 미정… 15%로 인하 합의한 車, 여전히 25%
‘최혜국 대우’ 한다면서 문서 없어… 韓 “언제부터 적용될지 아직 몰라”
반도체-의약품도 추가 협의 대상

지난달 말 한국 정부가 미국과 극적인 무역 합의에 성공했지만 한미 정상회담에서 다시 통상 이슈가 부상하고 있다. 미국이 한국을 비롯해 세계 각국과 맺은 무역 합의의 내용이 모호한 데다 자동차, 반도체, 의약품 등 품목별 관세 세부 협상도 끊임없이 병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통상 전문가들은 미국과의 예측 불가능한 관세 협상이 ‘글로벌 뉴노멀(새로운 기준)’이 되고 있다고 지적한다. 블룸버그통신은 계속해서 협상을 해야 하는 ‘포에버 협상(Forever negotiations)’ 시대라고 규정했다.

● 기약 없는 자동차 관세 인하

25일 통상 당국에 따르면 미국은 지난달 말 한미 무역 합의를 통해 한국산 자동차 품목 관세를 25%에서 15%로 내리기로 했다. 하지만 여전히 미국의 한국산 자동차 관세는 25%가 적용되고 있다. 정부 관계자는 “인하된 관세율이 정확히 언제부터 적용되는 것인지는 정해지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한국의 수출 경쟁 상대인 유럽연합(EU)과 일본도 비슷한 상황에 놓였다. EU와 일본은 기존 27.5%였던 자동차 관세를 15%로 낮추기로 미국과 합의했지만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별도 행정명령이 나오지 않으면서 여전히 27.5%의 자동차 관세를 적용받고 있다. 게다가 자동차 관세 인하에 끊임없이 조건이 생기는 분위기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미 행정부는 EU가 미국에 대한 관세율을 낮추고 농산물 관세 장벽을 완화하는 법안을 발의해야 자동차 관세를 깎아주겠다고 했다. 미국이 한국과의 무역 합의를 이행하는 조건으로 농축산물 개방 등 추가 압박을 지속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미국과의 자동차 관세 인하 합의가 실제 이행된 국가는 영국이 유일하다. 영국은 올 5월 초 미국과의 무역 합의를 통해 미국으로 수출하는 자동차(연 10만 대까지)의 관세율을 25%에서 10%로 낮추는 방안에 합의했다. 인하된 관세율은 6월 말부터 적용 중이다. 정부 관계자는 “한국은 연 140만 대가 넘는 자동차를 미국에 팔고 있다”며 “영국은 수출 경쟁국이 아닌 만큼 단순 비교가 어렵다”고 했다.

● “끝없는 협상과 지연 전술 이어질 것”


미국이 품목 관세 부과를 예고한 반도체나 의약품 역시 추가 협의 대상이다. 한미 무역 합의에는 미국이 한국의 반도체·의약품 등에 최혜국 대우 원칙을 적용하겠다는 내용이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미국은 협상의 구체적 사항을 담은 공식 문서인 이른바 ‘팩트시트(Factsheet·보도참고자료)’를 내놓지 않고 있다.

정부 고위 관계자는 “예전 같으면 실무자들이 치열하게 협상하고 논의한 내용을 바탕으로 협상의 큰 틀은 물론이고 세부적인 모습도 완성한 뒤에 최종 결정권자들은 이를 검토하고 사인하는 형태였다”며 “트럼프는 이런 과정을 통해 도출된 결론을 언제든지 손바닥 뒤집듯 변경할 수 있는 인물”이라고 토로했다. 또 다른 정부 관계자는 “미국은 통상 관련 각 부처 장관들이 각각 경쟁하며 협상 성과를 내려고 해 협상이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닌 것”이라고 덧붙였다.

5월에 미국과의 관세 협상을 타결한 영국 역시 답답한 것은 마찬가지다. 영국은 미국과 철강 제품에 0% 관세 적용을 협의했지만 여전히 25%의 관세가 부과되고 있다. 미국이 면세 조건으로 내건 영국 내 철강 용해 및 주조를 충족하지 못하고 있어서다. 영국 최대 철강회사들은 대부분의 원재료를 해외에서 들여와 가공하는 구조다.

국내외 전문가들은 미국과의 협상이 최소한 트럼프 대통령 임기 동안 지속될 것으로 내다봤다. 세실리아 말름스트룀 전 EU 통상담당 집행위원은 블룸버그통신에 “끝없는 협상과 필리버스터식 지연 전술이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했다. 이정희 중앙대 경제학부 교수는 “미국이 전 세계를 대상으로 동시에 관세 협상을 진행하는 만큼 단기간에 상세 협의까지 끝낼 전문 인력 등이 턱없이 부족할 것”이라며 “특히 품목 관세 협상의 경우 상당한 시일이 필요하기 때문에 중장기전에 대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미 무역 합의#자동차 관세#반도체 협상#미국 통상 정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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