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위값 100만원 육박, 청년 부담↑
“싼 물건 찾으면 좁은 원룸-반지하”
대출규제 강화-전세사기 우려 겹쳐
전세매물 13% 줄며 월세상승 자극
한양대 대학원에 재학 중인 박모 씨(29)는 얼마 전부터 학교 근처 서울 성동구 용답동 빌라에서 사촌 형과 함께 살고 있다. 보증금 1000만 원에 월세와 관리비를 합쳐 월 115만 원짜리 투룸 빌라다. 더 저렴한 방도 찾아봤지만 침대가 들어가면 가득 차는 수준의 비좁은 원룸이나 반지하방이 대부분이었다. 박 씨는 “상경한 사촌 형과 살며 돈을 절약하고 있는데, 그래도 수십만 원을 내고 비좁은 원룸에서 사는 것보다 나은 것 같다”고 했다.
서울에서 거래되는 월세를 일렬로 세울 때 가장 가운데 있는 값(중위 월세)이 100만 원에 육박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전세 매물이 자취를 감춘 상황에 월세까지 급등하며 서민 주거 사다리가 휘청거리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월세 시대’에 주거 부담을 줄일 수 있는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27일 한국부동산원 월간주택가격동향에 따르면 7월 서울 주택종합 중위 월세 가격은 98만 원으로 올해 1월(93만5000원)보다 4.8% 올랐다. 2015년 7월 통계 집계 이후 가장 높다. 중위 월세는 모든 월세 거래를 일렬로 세울 때 가장 가운데 있는 값으로, 극단적인 고액 월세 등에 영향을 크게 받는 ‘평균값’에 비해 사람들이 실제 내는 월세 수준을 잘 반영하는 수치다.
월세 보증금도 함께 올랐다. 중위 보증금은 8714만2000원으로 올해 1월(8176만8000원)보다 6.6% 증가했다. 월세가격지수는 2023년 6월(0.01%) 전월 대비 상승 전환한 이후 26개월 연속 오르고 있다.
월세 상승세는 대학생 등 청년층이 주로 거주하는 대학가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부동산 플랫폼 다방이 국토부 실거래가 시스템을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7월 서울 연립·다세대 원룸(전용 33㎡ 이하, 보증금 1000만 원 기준) 월세 평균 가격은 72만4200원으로 전년 동기(67만2300원)보다 7.7% 올랐다. 2022년 7월 56만7600원이었지만 전세 사기가 사회적 문제로 떠오르면서 전세 대신 월세를 선택하는 수요가 늘면서 급등하고 있다.
사회 초년생도 월급 대부분을 주거비에 내야 할 정도로 쪼들리고 있다. 서울 광화문 인근 회사로 출퇴근하는 직장인 최모 씨(24)는 “업무상 야근이 많아 회사 근처 원룸 오피스텔 월세를 알아봤지만 100만 원이 최저선이었다”며 “월급 300만 원 중 3분의 1이 월세로 나가는 건데, 요즘 같은 고물가에 저축하기도 힘들 것 같다”고 하소연했다.
아파트 전월세 시장에서도 월세가 대세로 굳어지고 있다. 아실에 따르면 이날 기준 서울 아파트 전세 매물은 2만3218건으로 전년 동기(2만6616건)보다 12.8% 줄었다. 반면 월세 매물은 1만9546건으로 전년 동기(1만4877건)보다 31.3% 증가했다. 그만큼 매월 주거비 지출을 부담해야 하는 사람이 늘어나고 있다는 의미다.
6·27 대출 규제의 영향으로 월세화 속도는 더욱 빨라질 것으로 보인다. 윤지해 부동산R114 리서치랩장은 “전세대출 보증비율이 축소되고 전세보증금을 빌리는 세입자에 대한 상환 능력 평가를 강화하면서 세입자들이 목돈을 마련하기 어려워졌다”며 “월세 혹은 반전세 계약이 불가피해졌기 때문에 앞으로 월세화는 더욱 빨라질 것”이라고 말했다. 송인호 한국개발연구원(KDI) 경제정보센터 소장은 “월세 주거비 보조나 세액 공제 혜택을 확대하는 등 주거 불안을 해소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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