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개발조합 vs 학교’ 갈등에… 아파트 못 짓고 1년 넘게 심의만

  • 동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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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인근 한남5구역 층수 낮춰라”
교육환경영향평가 조율 기구 없어
보완대책 중재 불발, 주택 공급 지연
잠실주공 5단지 3년만에 평가 통과

지난달 22일 서울 용산구 한남5재정비촉진구역 주택재개발정비사업의 세 번째 교육환경영향평가 심의가 이뤄졌다. 심의에서는 재개발에 따른 인근 학교 일조권 침해 문제가 주로 다뤄졌다. 하지만 학교와 재개발조합, 관할 교육청이 참여해 이뤄진 이날 심의 역시 결론을 맺지 못했다. 지난해 7월 교육환경영향평가가 시작된 지 1년이 넘도록 재심의가 반복되고 있는 것이다.

근처에 학교가 있는 재개발·재건축 사업장에서 교육환경영향평가 심의로 사업이 지연되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 학교와 조합 간 의견을 중재하거나 조율할 권한을 가진 기구·기관이 없어 불필요한 갈등이 생기고 주택 공급이 지연된다는 지적이 나온다.

교육환경영향평가는 교육환경보호구역 내에서 재개발·재건축 등 도시정비사업을 할 때 관할 교육감에게 평가서를 제출하고 승인을 받는 절차다. ‘교육환경 보호에 관한 법률’에 따라 2017년부터 의무화됐다. 정비사업 구역 반경 200m 내에 학교가 있으면 평가 대상이 된다. 정비사업으로 인한 일조 피해, 통학 안전, 대기 및 수질 오염 등을 전반적으로 평가한다.

한남5구역은 지난해 7월 3일 교육환경영향평가 신청서와 평가서 초안을 서울시중부교육지원청에 제출했다. 두 차례 보완 요구로 조합이 평가서를 다시 제출한 뒤 첫 심의는 서울시교육청 교육환경보호위원회에서 지난해 12월 16일 진행됐다. 이어 올해 7월 28일, 8월 22일 재심의가 진행됐다.

주요 협의사항 중 하나는 인근 오산중·오산고 일조량에 미치는 영향을 없애기 위해 층수를 조정하는 것이다. 한남5구역은 지난해 4월 서울시 건축 심의에서 지상 23층 높이로 재개발 사업을 진행하겠다는 내용으로 계획안을 허가받았다.

조합 관계자는 “시뮬레이션상 학교 일조량에 영향이 없으려면 학교 인근 2개 동의 층수를 낮춰야 한다”며 “이 경우 건축 심의를 다시 받아야 해 그만큼 사업이 지연된다”고 설명했다. 층수 조정이 어려울 경우 통상 위원회에서 조합 측이 조명 및 냉난방 설비 설치 등 보완대책을 마련하도록 한다. 하지만 한남5구역의 경우 학교 측이 보완대책보다는 층수 조정을 지속적으로 요구하면서 협의에 난항을 겪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한남5구역만의 상황이 아니다. 서울 송파구 잠실주공 5단지 재건축도 사업구역 내 신천초 이전 문제로 2018년부터 7번 심의를 받은 끝에 3년 만에 평가를 통과했다. 경기의 한 재개발구역은 학생 수 증가에 따른 교사 증설 비용 300억 원을 조합이 부담하기로 한 뒤에야 평가가 마무리됐다. 정비업계 관계자는 “심의를 3, 4번씩 받으며 1년 넘게 소요되는 게 기본이 됐다”고 전했다.

전문가들은 조합과 학교의 의견 차를 좁힐 별다른 방법이 없는 것이 문제라고 지적한다. 현행 제도상 교육청 등 심의기관은 평가의 역할만 할 뿐 협의에 개입하지 않는다. 서울시가 서울시교육청과 정비사업 지연 방지를 위한 실무협의체를 만들기도 했지만 크게 상황이 달라지지 않고 있다.

백준 J&K도시정비 대표는 “보상이나 협의에 대한 명확한 기준이 없는 것이 문제”며 “차라리 계획안 단계에서 인근 학교에 미치는 영향을 검토하도록 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서진형 광운대 부동산법무학과 교수는 “협의 기구를 만들어 이해당사자 간 의견을 조율할 수 있는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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