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능의 장치에서 주체적 패션 아이템으로 ‘뾰족’하게 돌아오다

  • 동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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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션 NOW]
컬렉션 전면에 등장한 ‘불릿 브라’… 1940년대 첫 등장 후 대중적 인기
패션하우스 잇달아 관련 룩 선보여… 우아함 속 파격, 시대정신 반영해

패션하우스들이 컬렉션에 ‘불릿 브라’를 잇달아 선보이고 있다. 미우미우는 올 가을·겨울 파리 컬렉션에 불릿 브라를 전면에 내세웠고(왼쪽 사진), 발망은 슈트 차림에 뾰족하게 솟은 어깨와 브라 컵으로 과장된 실루엣을 연출해 우아하면서도 파워풀한 여성상을 표현했다(가운데 사진). 돌체앤가바나는 1990년 마돈나의 콘 브라 무대를 오마주했다(오른쪽 사진). 각 브랜드 제공
패션하우스들이 컬렉션에 ‘불릿 브라’를 잇달아 선보이고 있다. 미우미우는 올 가을·겨울 파리 컬렉션에 불릿 브라를 전면에 내세웠고(왼쪽 사진), 발망은 슈트 차림에 뾰족하게 솟은 어깨와 브라 컵으로 과장된 실루엣을 연출해 우아하면서도 파워풀한 여성상을 표현했다(가운데 사진). 돌체앤가바나는 1990년 마돈나의 콘 브라 무대를 오마주했다(오른쪽 사진). 각 브랜드 제공
파격적인 ‘노 팬츠 룩’으로 패션계에 충격을 안겼던 미우미우가 또 일을 냈다. 올 가을·겨울 파리 컬렉션 전면에 등장한 ‘불릿 브라’, 일명 콘 브라가 주인공이다. 색색의 니트 아래 뾰족하게 솟은 실루엣은 관객의 시선을 단숨에 사로잡았고, 쇼 직후 ‘불릿 브라의 귀환’이라는 말이 나왔다. 수장 미우차 프라다는 “불확실한 시대 속에서 우리가 과연 여성스러움으로 힘을 얻을 수 있을까?”라고 반문하며 전형적 여성성의 상징을 비틀어 보게 했다.

불릿 브라는 제2차 세계대전 시기인 1940년대 처음 등장했다. 컵이 탄환이나 원뿔 모양으로 과장된 것이 특징이다. 컵 안의 동그란 스티치가 가슴을 모아 올려 현대의 푸시업 브라 못지않은 볼륨감을 만들어낸다. 이름 그대로 ‘총알(Bullet)’이라는 다소 과격한 단어가 붙은 것도 모양 때문이다. 애초엔 군수 공장에서 일하는 여성들의 안전을 높이기 위해 발명된 실용적인 물건이었지만 전후에는 오히려 여성미를 극대화하는 패션 아이템으로 진화했다. 라나 터너나 매릴린 먼로 같은 당대의 글래머 스타들이 불릿 브라를 적극 활용하며 대중적 인기를 견인했다.

여성들이 본격적으로 노동시장에 진출해 경제력을 갖추기 시작한 시대 흐름 속에서 불릿 브라의 유행은 더는 여성의 몸을 숨길 필요가 없다는 메시지로 해석되기도 한다. 가슴을 뾰족하게 강조한 실루엣은 기존의 코르셋보다 한층 과감했고 이는 여성들이 스스로 몸을 드러내는 방식에 있어 작은 해방구를 연 셈이다. 이후 시대가 흐르면서 브래지어에 대한 인식도 변화한다. 자연스러운 가슴선을 중시하는 브래지어나 노브라가 등장하면서 불릿 브라는 자취를 감추는 듯했다. 그러나 1980년대에 이르러 속옷을 겉옷처럼 드러내 입는 언더웨어 패션이 유행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비비언 웨스트우드, 장 폴 고티에 같은 디자이너들이 대담한 원추형 브라를 선보이면서 마돈나 같은 팝스타들이 이에 열렬한 호응을 보냈다. 특히 마돈나는 1990년 ‘블론드 앰비션(Blond Ambition)’ 월드 투어 무대에서 고티에가 디자인한 콘 브라를 겉옷 위에 착용해 엄청난 화제를 모았다.

패션은 돌고 돈다고 했던가. 불릿 브라의 컴백 조짐은 이미 올 봄여름 컬렉션에서부터 감지됐다. 발망, 돌체앤가바나, 스키아파렐리 등의 디자이너들이 저마다 방식으로 빈티지 콘 브라 룩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해 런웨이에 올렸다. 발망은 1950년대풍의 슈트 차림에 뾰족하게 솟은 어깨와 브라 컵으로 과장된 실루엣을 연출해 우아하면서도 파워풀한 여성상을 그려냈다. 돌체앤가바나는 1990년 마돈나의 콘 브라 무대를 대놓고 오마주했다. 관객석에는 고티에의 뮤즈였던 팝스타 마돈나가 직접 등장해 장내를 술렁이게 했다. 스키아파렐리는 오트쿠튀르 컬렉션 말미에 뾰족한 가슴선을 강조한 셔링 장식 드레스를 올리며 불릿 브라 열풍의 신호탄을 알렸다.

이번 가을·겨울 컬렉션에는 미우미우 외에 발렌티노, 산드라 웨일, 로버트 운, 루 드 베톨리, 마크 공 등 다양한 패션하우스와 신진 디자이너들이 앞다투어 불릿 브라에서 영감을 받은 룩을 쏟아냈다. 발렌티노는 가슴 부분을 돌출시킨 빈티지 드레스로 우아함 속의 파격을 연출했다. 영국 런던 기반의 로버트 운은 미래적인 분위기의 쿠튀르 드레스에 1940년대풍의 콘 브라 실루엣을 결합시켜 아방가르드한 페미닌 룩을 창조해냈다.

흥미로운 것은 이런 움직임이 런웨이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패션쇼장 밖 레드 카펫과 길거리에서도 점차 불릿 브라들이 포착되고 있다. 팝스타 카디 비와 메건 디 스탤리언은 2001년 그래미 무대에서 메탈릭한 콘 브라 의상을 입고 파격 퍼포먼스를 펼친 바 있다. 2024년 멧 갈라에서 카일리 제너는 원뿔 형태의 가슴 장식이 돋보이는 드레스로 이목을 끌었고, 찰리 XCX는 해체주의 느낌의 드레스에 불릿 브라 디테일을 가미해 화제가 됐다.

불릿 브라는 여성의 몸을 어떻게 드러낼 것인가에 대한 사회적 통념이 바뀔 때마다 새로운 의미를 얻으며 부활해 왔다. 이번 시즌 역시 그 연장선에 있다. 과거에는 남성을 겨냥한 관능의 장치였다면 이제는 여성이 주체적으로 선택하는 패션 아이템이 된 셈이다.

물론 모든 사람이 이 트렌드를 반기는 것은 아니다. 여전히 일부에게 뾰족한 브라는 부담스럽고 과한 것으로 느껴질 수 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현재 불릿 브라 열풍이 그저 뜬금없는 일회성 해프닝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패션은 늘 한발 앞서 시대정신을 반영한다. 이번 유행이 향후 어떻게 진화할지는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 주목해야 할 사실은 이 트렌드가 우리의 고정관념에 작은 균열을 내고 있다는 것이다.

#불릿 브라#미우미우#패션 트렌드#패션 아이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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