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은 총재 발언, 시장 영향’ 논문
“기자간담회중 채권변동성 7~15배↑
직설적 화법, 시장 민감 반응” 분석
“시끄러운 한국은행이 돼야 한다.”
이창용 한은 총재가 2022년 4월 취임 이후 틈만 나면 강조한 말입니다. ‘한은사(韓銀寺)’로 불릴 정도로 조용한 절간 이미지를 벗자는 것입니다. 한은은 직원들도 “성격유형검사(MBTI)를 해보면 직원 90%가 내향형(I)일 것”이란 농담을 할 정도로 본연의 역할인 물가 안정과 금융 안정에만 묵묵히 매진하던 곳입니다.
하지만 요즘 한은은 꽤 시끄럽습니다. 이를 뒷받침할 만한 논문도 있습니다. 1일 유각준(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조두연(성균관대 교수) 연구팀의 ‘한국은행 총재의 통화정책 커뮤니케이션이 금융시장에 미치는 영향 분석’ 논문을 살피면 이 총재와, 이성태·이주열 전 총재의 재임 기간에는 기준금리 발표 직후 기자간담회 도중 채권시장 변동성이 평상시보다 7∼15배 이상 확대됐습니다. 김중수 전 총재 때에는 변동성이 4.2배 수준이었습니다.
그런데 기자간담회에서의 통화정책 어조가 매파적(통화 긴축 선호)이냐 비둘기파적(통화 완화 선호)이냐에 따라 상관관계를 보면 이 총재 발언의 영향력이 다른 총재들에 비해 더 도드라집니다. 김중수·이주열·이성태 전 총재 재임 시절 기자간담회 어조가 채권금리에 미치는 영향은 통계적으로 유의미하지는 않았습니다. 기자간담회 도중 채권시장 변동성이 커지긴 하지만 매파적 발언이면 채권금리가 상승하고, 비둘기파적이면 채권금리가 하락하는 등의 경향성이 보이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반면 이 총재의 발언 어조에 따라 채권금리는 출렁였습니다. 연구팀은 “이전 총재들과 달리 명확하고 직설적인 커뮤니케이션 스타일이 시장의 민감한 반응을 유도했다”고 풀이했습니다.
실제로 이 총재는 여느 총재보다 외부 소통에 적극적이었습니다. 경제 구조개혁이 필요하다며 상위권 대학 지역별 비례선발을 제안하거나, 고물가 해소를 위한 농산물 수입 확대, 자율주행 택시 시대를 대비한 사회적 기금 마련 등 다양한 사회 주제들로 영역을 넓혀 목소리를 내기도 했습니다.
‘시끄러운 한은’이 시장 가이던스에 효과가 있었다는 평가가 많습니다. 더불어 한은이 사회 전반에 걸쳐 과도한 개입에 나선다는 비판도 존재합니다. 한은 총재 ‘입’의 영향력이 확인된 만큼, 발언에 신중해야 한다는 점만큼은 이견이 없을 것 같습니다.
한재희 기자 h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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