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일보 IT사이언스팀 기자들이 IT, 과학, 우주, 바이오 분야 주목할만한 기술과 트렌드, 기업을 소개합니다. “이 회사 뭐길래?” 기술로 세상을 바꾸는 테크 기업들의 비하인드 스토리! 세상을 놀라게 한 아이디어부터 창업자의 요즘 고민까지, 궁금했던 그들의 모든 것을 파헤칩니다.
“우리 집 막내는 로봇 개(robotic dog)인 ‘피츠’를 무척 좋아합니다. 어느 날은 로봇에게 수학 숙제를 대신해달라고 하더군요. 그래서 저는 ‘숙제를 대신해주는 것은 안된다’고 프로그래밍을 했습니다. ‘대신 수학을 공부하는 건 도울 수 있다. 함께 공부해보자’고 답하도록 프로그래밍 했죠. 이 로봇의 목적은 우리를 게으르게 하는 게 아니라, 스스로 배우도록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미국 로봇 운영체제(OS) 스타트업 ‘오픈마인드(OpenMind)’가 개발한 ‘로봇 개(robotic dog)’ 모습. 오픈마인드 제공
미국 로봇 운영체제(OS) 스타트업 ‘오픈마인드(OpenMind)’ 창업자인 얀 리프하르트(Jan Liphardt) CEO는 지난달 23일 서울 강남구에서 가진 인터뷰에서 이같이 말했다. 오픈마인드는 이달 말 샌프란시스코 10여개 가정에 생각하는 ‘로봇 개(robotic dog)’를 시험 배치한다.
스탠퍼드대 교수인 얀 리프하르트가 2024년 설립한 ‘오픈마인드’는 로봇 운영체제(OS) 분야의 ‘안드로이드’를 목표로 한다. 오픈마인드는 ‘AI와 연결된 모든 로봇이 하나의 언어, 하나의 플랫폼에서 움직이게 하겠다’며 범용 로봇 운영체제 ‘OM1’을 개발했다. 세계적으로 주목받고 있는 중국 유니트리 ‘G1’ 휴머노이드 로봇에도 이들의 시스템이 탑재됐다. 오픈AI 창립 멤버 등이 설립한 벤처펀드 ‘페블베드’ 등이 베팅하는 등 오픈마인드는 올 8월 2000만 달러의 투자를 유치했다.
오픈마인드는 집 안에 들어온 휴머노이드 로봇처럼 인간과 기계의 상호작용이 훨씬 더 많이 요구되는 상황에서, 인간처럼 ‘생각할수 있는’ 새로운 로봇 운영체제가 필요하다고 본다. ‘오픈소스’를 지향하는 점도 특징이다. 특정 제조사 생태계에 묶이거나, 기존 기술을 매번 다시 만들 필요 없이 어떤 로봇에든 소프트웨어를 설치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현재 로봇 안전 기술 시장은 대부분 개별 로봇 제조사의 자체 솔루션에 의존하고 있어 표준화된 안전 플랫폼에 대한 업계 요구가 높은 상황이다. 다음은 리프하르트 CEO와의 일문일답.
로봇은 원전, 반도체 공장 등 고위험 산업군에서 활용되지만, 이미 많은 기업들이 초기 버전을 내놓았듯 ‘반려 로봇’의 모습으로 일상에 들어오게 됐다. 반려 로봇에 대한 현장의 인상적인 피드백을 꼽는다면?
치매노인 등이 거주하는 미국 내 요양시설에 로봇을 배치했더니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그 로봇들이 하는 일이라고는 그저 대화로 이분들을 웃게 해주는 것뿐이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요양시설 간호사들은 매일 저녁마다 이 로봇 머리에 묻은 립스틱 자국들을 닦아내야 했다. 자녀들도 잘 찾지 않는 노인들이 로봇에게 친밀함을 느껴 매일 ‘뽀뽀’를 했기 때문이다. 노인들이 로봇들과 깊이 교감하는 모습을 보고 놀라움을 느꼈다.
혼자 사시는 부모님께 반려 로봇을 사드릴 수 있을 것 같다. 그렇다면 ‘1가정 1 로봇’이 보급되는 순간은 언제로 예상하나
불과 몇 년 전만 하더라도 로봇 발전의 가장 큰 제약은 기술적 요인이었다. 그러나 이젠 아니다. 현재 로봇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는 굉장히 빠르게 발전하고 있다. 오히려 최근 직면한 장벽은 비용, 안전, 보험 등의 문제다. 이 문제가 잘 해결돼야 ‘1가정 1로봇’ 모먼트가 올 것이다.
가령 로봇을 유치원, 학교, 가정, 소방서 등에 배치한다고 해보자. 안전 규정 등을 어떻게 만들 것인가. 또한 법률적 재무적 문제들은 어떻게 정리할 것인가의 문제들이 있다.
우리 오픈마인드는 로봇 보험을 가입한 몇 안되는 회사다. 세계 최대 재보험사인 독일 뮌헨 리(Munich Re)에서 로봇 보험 상품을 출시할 정도다.
만약 집 안에 둔 휴머노이드 로봇이 나의 발을 밟아서 다쳤을 때, 보험금을 받을 수 있는가의 문제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로봇이 약속된 서비스를 제공하지 못하거나, 좋은 의사결정을 내리지 못할 때, 혹은 누군가를 다치게 했을 때 보험금이 제공되는 것이다. 이같은 다양한 문제들이 로봇 산업이 마주한 새로운 허들이다.
로봇 보급에 있어 우선순위로 두는 대상은? 어떤 로봇이 가장 빨리 우리 삶에 들어오게 될까
우리의 우선순위는 로봇을 노인, 아이들 등에게 빨리 제공하는 것이다. 현장의 피드백을 받아 그들에게 정말 필요한 로봇의 역할이 무엇인지 파악해야 한다 . 사람들은 내 양말을 서랍에 정리해주는 로봇이 언제 나오냐고 묻지만 그런 로봇들은 수익성이 낮기 때문에 후순위가 될 것이다. 지금 로봇업계가 주목하는 분야는 교육, 간호, 배관, 전기공사 등의 일을 해주는 휴머노이드다.
우리가 이달 말부터 샌프란시스코 가정에 배치하는 로봇 개도 마찬가지다. 이들은 발레나 양파 다지기를 해줄 수 없지만 아이들에게 수학을 가르치고 노인을 안전하게 돌보고, 집에 누가 침입할 수 없도록 ‘보안’을 담당한다. 로봇 개는 10분 이상 주인을 보지 못하면, 집을 탐색하고, 주인을 찾아가서 주인이 괜찮은지 확인하게 된다.
미국 로봇 운영체제(OS) 스타트업 ‘오픈마인드(OpenMind)’ 창업자인 얀 리프하르트(Jan Liphardt) CEO. 오픈마인드 제공
로봇을 ‘집단지성’의 개념으로 연결한다고 했다. 그같은 ‘로봇 집단지성’ 시스템이 완전히 구현된다면 어떤 변화가 일어나게되나
스탠퍼드 대학에서 수천명의 학생에게 강의를 해온 교수로서 경험을 되짚어 보면, 사람은 무언가를 배울 때 처음부터 배워야 하고, 배우자마자 즉각적으로 자신이 배운 지식을 타인에게 전수하기 어렵다. 내가 이 자리에서 한국어 구사 능력을 다운로드받아 곧바로 말할 수 없는 것과 같다.
그런데 로봇과 같은 ‘머신’은 어떤 기술을 배우면 디지털로 모델화해 바로 다른 ‘머신’에게 공유할 수 있다. 예를들어 한 제조공장에서 어떤 로봇이 특정 기술을 잘 배우면 즉각적으로 다른 로봇에게 그 지식과 기술을 전수할 수 있다. 이제 우리가 개발해야 하는 것은 이같은 기술과 노하우를 로봇들이 잘 배우게 하고 확산시킬 수 있게 하는 것이다. 단 무섭지 않은 방식으로.
인공지능(AI) 분야에선 안전과 신뢰에 대한 가이드라인이 만들어지고 있다. 로봇 분야에선 인류에 위협이 되는 위험한 로봇을 통제할 수 있는 안전 가이드라인이나 규제가 있나
안타깝게도 아직 없다. 로봇 기술은 매우 빠르게 발전하지만, 이에 대한 안전 기준은 아직 없는 것이 현실이다. 우리가 샌프란시스코 시청에 전화를 걸어 ‘휴머노이드가 길을 건널수 있나요?’라고 물어보면, 시청 관계자 중 그 누구도 답을 하지 못한다. 그들은 그저 “그건 내 부서 소관이 아니다. 다른 곳에 전화하라”고 답할 뿐이다.
이번 방한에서 LG전자와 차세대 로봇 안전기술 공동연구 등 협업을 발표했다. 한국의 로봇 산업 수준에 대해 어떻게 평가하나
한국은 굉장히 운이 좋은 나라다. 로봇 산업에서 성공하기 위해 필요한 모든 자원과 인프라를 다 갖추고 있는 나라는 정말 드문데, 한국이 그 중 하나다. 서울에만 5개의 대학들이 로봇 연구에 집중하고있다. 또한 한국에는 삼성전자 LG전자를 비롯한 대기업의 최첨단 제조 역량이 있다. 완전히 새로운 기업이 등장해서 로봇을 대량 양산할 수 있을까? 로봇 대규모 양산을 위해선 축적된 제조 경험이 필수적이다. 그런 점에서 한국은 수백만대의 휴머노이드 로봇을 생산할 수 있는 막강한 제조 역량을 갖추고 있다.
LG전자, 에임인텔리전스 등과 협업하는 로봇 안전 기술이란 무엇인가
이번 연구의 핵심은 로봇이 위험한 행동을 하거나 잘못된 판단을 내리는 ‘할루시네이션(환각현상)’을 문맥 속에서 사전에 차단 완화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오픈마인드의 로봇 운영 체제인 OM1이 구동하는 멀티모달(영상, 음성 등 각종 신호) 안전 가드레일(안전 울타리) 레이어가 로봇 주변 상황을 실시간으로 파악하고, 로봇이 제안하는 동작의 안전성을 종합 판단해 최종 행동을 제어한다.
예를 들어 어린이가 근처에 있는 상황에서 로봇이 날카로운 물체를 들고 이동하려 하면 ‘부상 위험’으로 판단해 동작을 차단하는 것이다. 현재 대부분 로봇은 아시모프의 로봇 3원칙 같은 기본 안전규칙을 단순 명령어로 입력받는 수준에 그쳐 있다. 기업들이 복잡한 현실 환경에서 로봇을 안전하게 운용하기에는 한계가 있었다. OM1은 앞으로 로봇 전 영역에 걸쳐 안전기능을 통합하는 종합 플랫폼 역할을 하게 된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