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은, ‘0%대 성장’ 공식화… “올해 1.5→0.8%” 반토막

  • 동아일보
  • 입력 2025년 5월 3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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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준금리 0.25%P 내려 2.5%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29일 오전 서울 중구 한국은행에서 열린 금융통화위원회 회의에서 의사봉을 두드리고 있다. 이 총재는 이날 기준금리를 연 2.5%로 인하한다고 발표하며 “금리를 너무 빨리 낮추면 (유동성이) 경기 부양보다 자산 가격으로 막 흘러 들어가 코로나19 때 했던 실수를 다시 반복할 가능성이 굉장히 크다”고 말했다. 사진공동취재단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29일 오전 서울 중구 한국은행에서 열린 금융통화위원회 회의에서 의사봉을 두드리고 있다. 이 총재는 이날 기준금리를 연 2.5%로 인하한다고 발표하며 “금리를 너무 빨리 낮추면 (유동성이) 경기 부양보다 자산 가격으로 막 흘러 들어가 코로나19 때 했던 실수를 다시 반복할 가능성이 굉장히 크다”고 말했다. 사진공동취재단
한국은행이 올해 한국 경제가 0.8% 성장하는 데 그칠 것으로 내다봤다. 3개월 전 내놨던 전망치의 반 토막 수준이다. 0%대 성장률은 글로벌 금융위기나 코로나19 등으로 성장률 쇼크가 나타났던 때를 제외하면 처음이다.

한은은 29일 발표한 경제전망에서 올해 한국 경제성장률을 0.8%로 낮춰 잡았다. 올 2월 전망치보다 0.7%포인트 낮다. 한은은 건설 경기 침체가 더욱 깊어졌고 민간소비 회복세도 예상보다 더딘 가운데 미국의 관세 정책까지 당초 전망보다 강도가 더 세졌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한은은 무역 협상이 원만하게 진행돼 미국의 관세율이 상당 폭 인하되더라도 올해 경제성장률은 0.9%에 그치며 1%를 넘지 못할 것으로 봤다.

한은은 올 하반기(7∼12월)부터 미국의 관세 정책에 따른 수출 부진이 본격화할 것으로 예상하면서 내년 성장률 역시 1.6%로 0.2%포인트 하향 조정했다. 경제성장률이 2년 연속 2%에 못 미치는 건 관련 통계가 작성된 1954년 이후 한 번도 없었다.

0%대 성장률 전망을 공식화하면서 한은은 기준금리를 연 2.50%로 0.25%포인트 인하했다. 이로써 금리는 8개월 새 1%포인트 낮아졌다. 한은은 지난해 10월 3.50%였던 금리를 3.25%로 낮추면서 3년 2개월 만에 피벗(통화 정책 전환)에 나선 바 있다. 시장에선 한은이 하반기에 두 번 이상 금리를 인하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이창용 한은 총재는 “당초 예상보다 성장세가 크게 약화돼 추가 금리 인하 가능성이 커진 것은 사실”이라고 밝혔다.

이창용 “추경 반영해도 0.8% 성장… 내년 경기부양 필요할수도”


[한은 올해 0%대 성장 전망]
역대 1% 미만 성장 4차례뿐
건설투자 침체가 성장률 발목잡아… “美中 갈등땐 내년 0.4%P 더 하락”
집값 상승 우려에 금리 빅컷 선그어… 하반기 추가 인하 가능성은 커져

한국은행은 건설 경기 침체가 올해 한국 경제성장률을 크게 끌어내리면서 이미 집행에 들어간 13조 원이 넘는 추가경정예산(추경)을 반영해도 성장률 0%대에 머물 것으로 전망했다. 이창용 한은 총재는 “재정정책이나 통화정책을 통해 경기를 부양해야 할 필요는 내년에도 계속 존재할 가능성이 크다”고 밝혔다.

그러나 기준금리를 0.5%포인트 인하하는 ‘빅컷’에는 선을 그었다. 금리를 너무 많이 빠르게 낮추면 돈이 경기 부양보다는 부동산 등으로 흘러 들어가 자산 가격만 상승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가계부채와 미국과의 금리 차 등을 고려할 때 기준금리를 1%대까지 낮추긴 쉽지 않다는 전망이 나온다.

● “미중 갈등 재점화되면 내년 성장률 0.4%포인트↓”

한은은 29일 올해 성장률 전망치를 0.7%포인트 낮추며 이 가운데 0.4%포인트를 건설투자가 끌어내렸다고 설명했다. 전체 국내총생산(GDP)의 14%가량을 차지하는 건설투자는 올 1분기(1∼3월)에도 3.2% 줄며 4개 분기 연속 감소세를 보인 바 있다. 수출과 민간소비도 각각 0.2%포인트, 0.15%포인트 성장률 전망치를 갉아먹었다. 이번 한은의 성장률 전망치 인하 폭은 코로나19가 확산됐던 2020년 8월(―1.1%포인트) 이후 가장 크다.

이 총재는 “올해 0.8% 성장률 전망치에는 1차 추경은 반영돼 있고, 2차가 있을지 없을지는 모르지만 그 나머지는 반영돼 있지 않다”고 말했다. 이달 13조8000억 원 규모의 추경이 국회 문턱을 넘어 정부가 집행에 나섰는데도 한국 경제는 0%대 성장에 그친다는 뜻이다. 한국의 연간 성장률이 1%에도 미치지 못한 것은 1960년 이후 4차례뿐이었는데, 석유파동과 외환위기, 글로벌 금융위기, 코로나19 팬데믹 등 세계적인 위기가 닥쳤을 때였다. 이 때문에 일각에선 한국 경제가 저성장 터널에 들어섰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한은은 미중 갈등이 재점화되고 한국에 대한 미국의 관세율이 올 3분기(7∼9월) 중에 20% 수준으로 높아진다면 올해 성장률은 0.7%까지 떨어질 수 있다고 봤다. 이 경우 내년 성장률도 0.4%포인트 더 하락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 “기준금리 1%대로 내려갈 가능성 크지 않아”

이 총재는 금융위기 수준인 성장률 전망치에도 경기 부양을 위해 빅컷을 단행하지 않은 이유로는 유동성을 꼽았다. 그는 “지금은 유동성은 충분한 상황이라 오히려 금리를 너무 많이 빨리 낮추면 경기 부양보다 주택 가격 등 자산 가격으로 막 흘러 들어가 코로나19 때 했던 실수를 다시 반복할 가능성이 굉장히 크다”고 설명했다. 한은은 한국 경제가 올해 성장률 전망치와 똑같이 0.8% 성장했던 2009년에 빅컷에 나선 바 있다.

이 총재는 새 정부가 출범하면 금리 인하에 따른 서울 위주의 부동산 가격 상승 등에 대한 많은 논의가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경기 부양을 하면서도 어디에다 어느 정도로 할 것인지, 과거의 잘못을 다시 하지 않으면서 어떻게 할 것인지가 새 정부의 중요한 과제가 될 것”이라며 “금리 정책이 부동산 가격을 자극하지 않는 수준까지 이뤄지는 데 대해 서로 공감대를 형성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한은이 올 하반기(7∼12월)에도 추가 금리 인하에 나설 가능성은 더욱 커졌다. 이날 금융통화위원들은 만장일치로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인하했는데, 이 총재를 제외한 총 6명의 금통위원 중 4명은 3개월 이내에 추가적인 금리 인하의 필요성을 인정하며 추가 금리 인하 가능성을 시사했다.

다만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금리 인하 시기를 뒤로 미룬 만큼 한은이 금리 인하 폭을 크게 가져가긴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이번 기준금리 인하로 한미 금리 차가 최대 2%포인트 벌어진 상황에서 추가로 금리 인하에 나섰다간 환율 상승과 외국인 투자가 이탈 가능성이 커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총재는 “지금으로선 기준금리가 1%대로 내려갈 가능성은 크지 않다”며 “한국 경제가 중장기적으로 1%대가 유지되는 때까지 가려면 시간이 좀 걸릴 것”이라고 말했다.

주원 현대경제연구원 경제연구실장은 “경기 부양을 위해서 한은이 금리를 2.0%까지 내려야 할 것으로 본다”면서도 “가계부채와 부동산 경기, 미 연준 상황을 고려할 때 금리 인하 폭이 크지 않을 수 있다”고 했다.

#한국은행#한국 경제성장률#추가경정예산#기준금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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