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란봉투법-상법개정안 충돌
기업 의사결정이 노조 쟁의 명분… ‘주주 이익 충실’ 상법과 엇박자
기업 활동 막혀 진퇴양난 위기… 하청업체 교섭권, 노노갈등도 우려
더불어민주당이 지난 1일 열린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전체 회의에서 ‘방송 3법’과 ‘노란봉투법’, 상법 개정안 등 여야 쟁점 법안들을 줄줄이 통과시켰다. 국민의힘 의원들은 “토론할 기회도 주지 않는다”며 반발했지만, 민주당 소속 이춘석 법사위원장은 “전직 대통령이 거부해서 다시 내려온 법이라 결론을 내야 한다고 판단했다”며 표결 처리했다. 이훈구 기자 ufo@donga.com
“기업이 투자를 시작할 땐 노조가 노란봉투법을, 결과가 나왔을 땐 소액주주들이 상법 개정안을 들이댈 상황이 됐다.”(홍기용 인천대 경영학부 교수)
더불어민주당이 4일 국회 본회의 처리 강행을 예고한 노란봉투법(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2·3조 개정안) 등을 두고 법학계와 경영학계를 중심으로 우려가 이어지고 있다. 특히 노란봉투법과 이미 본회의를 통과한 상법 개정안의 내용이 서로 충돌해 기업이 이도저도 못 하는 ‘진퇴양난’에 빠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
● 서로 충돌하는 상법개정안-노란봉투법
학계에 따르면 노란봉투법의 핵심은 두 가지다. 하나는 ‘근로조건에 대해 실질적이고 구체적으로 지배·결정할 수 있는 지위에 있는 자’로 사용자의 개념을 넓힌 것이다. 이에 따라 이제 기업들은 고용 계약을 맺은 근로자뿐만 아니라 하청업체 노조 등에 대해서도 사용자로서 교섭에 나서야 할 형편이다. 또 다른 하나는 근로조건뿐만 아니라 투자, 사업 매각 등의 기업 의사결정에 대해서까지 노조가 쟁의에 나설 수 있도록 한 것이다.
법학계와 경영학계에서 이 같은 노란봉투법 내용이 ‘이사회가 회사뿐만 아니라 주주의 이익에도 충실해야 한다’는 내용의 상법개정안과 충돌할 수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예를 들어 하청업체들이 대거 쟁의에 나서 기업이 수십∼수백 개의 하청업체 노조와 일일이 교섭에 나서다가 손해가 발생하면 이번에는 또 주주들이 “주주 이익이 훼손됐다”며 회사를 상대로 소송에 나설 수 있다는 것이다.
회사에서 이익이 발생한 부분을 주주에게 배당하는 경영상 의사결정을 두고도 노조에서 이를 임금인상분으로 돌리라며 반대하면서 쟁의에 돌입할 수 있다고 내다본다. 구조조정이나 해외 투자 등의 결정도 노조와 주주 양측의 힘겨루기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우려다. 박지순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이사회와 주주총회에서 사업부 매각 결정을 내렸는데 노조에서 ‘해당 결정에 반대한다’며 쟁의행위에 돌입하면 매각 ‘골든타임’을 놓치게 돼 기업가치가 훼손된다. 이는 결국 또 주주들의 소송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노란봉투법은 근로 조건에 영향을 주는 결정에 한해 쟁의가 가능하다는 전제를 달고 있다. 하지만 이 전제가 유명무실하다는 시선이 많다.
과거에도 현대차그룹의 경우 2022년 경기 오토랜드 화성에 전기차 전용 공장 설립을 발표하면서 노조와 갈등을 빚은 바 있다. 회사 측은 경기 등을 고려해 연간 생산량을 10만 대 규모로 계획했지만 노조에서는 고용 안정을 이유로 20만 대 규모를 주장했기 때문이다.
노란봉투법이 처리되면 경영 의사결정에 대한 개입과 반대 등이 더 거세질 수밖에 없다. 이미 일각에서는 미국에 건설한 친환경차 전용 공장인 ‘메타플랜트 아메리카’에서 하이브리드차를 생산하겠다는 현대차의 계획이 노조에 가로막힐 수 있다는 관측이 제기된다.
이처럼 ‘노란봉투법’과 ‘상법’ 사이에서 기업이 이도 저도 선택할 수 없어지게 되면 기업 활력이 떨어질 것이라는 게 학계 지적이다. 홍기용 인천대 경영학부 교수는 “기업 투자는 시기와 규모를 철저히 계산해서 시행해도 실패 확률이 높은데 투자의 시작과 끝이 노란봉투법, 상법에 막히게 됐다”며 “결국 기업이 연구개발에 쓸 비용을 법무에 돌리고 투자나 연구개발 없이 현행 유지만 하는 ‘공무원화’할 가능성이 높아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 노란봉투법으로 ‘노노 갈등’도 우려
노란봉투법만 떼놓고 봐도 허점이 적지 않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하청업체까지 교섭 권한을 갖게 되는 만큼 교섭단체 간 의견이 갈리면 기업이 ‘소송전’에 시달릴 수 있다는 지적이 대표적이다.
조준모 성균관대 경제학과 교수는 “기업이 임금협상을 할 때는 한정된 재원을 두고 배분하게 되는데, 원청업체 직속 노조와 하청업체 노조가 서로 자기들 임금을 더 많이 올려 달라고 할 경우 기업은 어느 쪽에서든 파업이나 소송에 휘말리게 될 수 있다”며 “대기업 노조와 하청업체 노조는 이해관계가 다르기 때문에 협의해 대표교섭단체를 구성할 가능성도 낮다”고 설명했다.
물론 노란봉투법과 개정 상법은 각각 독립된 법률안이기 때문에 이로 인해 발생하는 피해나 손해에 대해 법적 책임을 물을 수는 없다는 의견도 있다. 다만 조 교수는 “두 법안의 충돌에 대한 판례가 쌓여 질서 정리가 되려면 수년이라는 긴 시간이 필요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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