웨스팅하우스와 불공정 합의 파장
폴란드 등 4개국 시장서 잇단 철수… 50년간 1기당 9000억 일감 등 제공
이행 안하면 5600억 지급 보장 약속… 대통령실 “합의 진상 파악하라” 지시
체코 비소치나주에 위치한 두코바니 원자력발전소. 동아일보DB
한국수력원자력이 체코 원자력발전소 수출을 위해 북미와 유럽 등 주요 시장을 미국 웨스팅하우스에 넘겨주고, 과도한 로열티를 제공하는 계약을 맺었다는 의혹이 커지고 있다. 대통령실이 진상 파악을 지시한 가운데, 국회에서도 여야가 한목소리로 한수원을 향해 비판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19일 원전 업계에 따르면 올해 1월 한수원·한전이 웨스팅하우스와 맺은 지식재산권 분쟁 종료 합의문에는 한수원이 원전 수주 활동을 할 수 있는 국가와 없는 국가가 담긴 것으로 알려졌다. 북미와 체코를 제외한 유럽연합(EU), 일본, 영국, 우크라이나 등에서는 웨스팅하우스에 수주 우선권을 제공하기로 하고 사실상 수주 활동을 포기하는 내용의 협약을 맺은 것이다. 실제로 지식재산권 분쟁 합의 이후 한수원은 스웨덴, 슬로베니아, 네덜란드 시장에서 잇달아 철수한 바 있다.
이날 황주호 한수원 사장은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에 출석해 폴란드 원전 사업 철수 계획을 묻는 의원들의 질의에 “일단 철수한 상태”라며 폴란드 철수도 인정했다. 폴란드는 한수원이 원전 수주에 공들이던 지역이다.
이와 더불어 향후 50년간 원전을 수출할 때 원전 1기당 6억5000만 달러(약 9000억 원)의 물품 및 용역 구매 계약을 웨스팅하우스와 체결하고, 1억7500만 달러(약 2400억 원)의 기술 사용료도 납부해야 한다는 내용이 담긴 것으로 알려졌다. 물품 및 용역 구매 계약 약속이 이행되지 않을 경우 1기당 4억 달러(약 5600억 원) 규모의 보증 신용장도 발행하기로 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는 은행이 지급을 보장하는 ‘백지수표’와 같은 역할이다. 또 소형모듈원전(SMR)을 수출할 때 웨스팅하우스의 기술 자립 검증을 통과해야 하는 내용도 포함됐다.
이 같은 계약 내용이 알려지자 전임 윤석열 정부가 체코 원전 수출이라는 성과를 거두기 위해 무리한 합의를 체결한 것 아니냐는 비판이 확산되고 있다.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은 용산 대통령실 브리핑에서 “강훈식 비서실장이 오늘 오전 일일점검회의에서 한수원·한전과 웨스팅하우스 간 협정에 대해 국민적 의구심을 해소할 수 있도록 진상 내용을 보고하라고 산업통상자원부에 지시했다”고 밝혔다. 국회 산업위 전체회의에서도 여야 의원들의 질타가 이어졌다.
다만 원전 업계에서는 웨스팅하우스와의 합의가 원전 수출의 활로를 열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었다는 주장도 나온다. 원전 업계 관계자는 “웨스팅하우스와의 분쟁이 해결되지 않으면 원전 수출 자체가 불가능한 상황이었다”며 “물품 및 용역 구매 계약은 어차피 국내 기업에서 조달하기 어려운 분야라 한국에 크게 불리한 조건도 아닐 것”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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