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일 오전 서울 관악구 서울대 종합체육관에서 열린 ‘2025 하반기 서울대학교 채용박람회’에서 학생들이 취업 상담을 받고 있다. 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국내 주요 기업들이 청년 취업난 해소를 위해 신규 채용 규모를 늘리기로 했다. 4대 그룹의 올해 신규 채용 규모만 3만 명에 이를 것으로 보인다. 이재명 대통령이 “청년 고용 문제 해결을 위해 기업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주문한 지 이틀 만에 나온 발표다.
삼성은 앞으로 5년 동안 매년 1만2000명씩 6만 명을 신규 채용하겠다고 18일 밝혔다. 당초 연간 1만 명 규모였던 채용 규모를 20%가량 늘렸다. 국내 그룹사 가운데 연간 신입 채용 규모가 1만 명이 넘는 것은 삼성이 유일하다.
SK그룹은 올 상반기(1∼6월) 4000명을 채용한 데 이어 하반기(7∼12월)에도 비슷한 규모의 신규 채용에 나서 올해 8000명을 뽑는다고 밝혔다. 현대자동차그룹은 올해 7200명을 신규 채용하고, 내년에는 1만 명 수준으로 채용 규모를 확대한다. LG그룹은 3년 동안 청년 1만 명 채용 계획을 내놨다. 이들을 합치면 올해 4대 그룹에서만 3만 명이 넘는 신규 채용이 이뤄지는 것이다.
이날 10대 그룹을 중심으로 재계의 신규 채용 발표가 쏟아졌다. 포스코그룹은 연간 3000명씩 5년 동안 1만5000명을 뽑을 예정이다. 한화그룹은 올 상반기에 2100명을 선발한 데 이어 하반기에도 3500명을 새로 뽑기로 했다. HD현대도 올해 1500명을 뽑고 향후 5년 동안 1만 명의 신입 직원을 선발한다.
각 기업은 인공지능(AI) 등 청년들이 취업을 희망하는 주요 산업군을 중심으로 신규 채용에 나선다. 삼성은 반도체, 바이오, AI 등에서 청년을 채용한다. 삼성은 1957년 국내 최초로 공채 제도를 도입해 4대 그룹 중 유일하게 지금까지 유지하고 있다. SK그룹도 반도체, AI, 디지털전환(DT) 등의 분야에서 청년 인재 선발에 나선다.
최근 국내외 경기 악화와 경력 채용 선호 등의 원인으로 기업들의 신규 채용이 줄면서 청년층(15∼29세) 취업 위기는 나날이 악화되고 있다. 청년 고용률은 지난달까지 16개월 연속 전년 동월 대비 감소했다. 구직 활동을 하지 않는 ‘쉬었음’ 청년도 늘고 있다.
대통령실 강유정 대변인은 이날 브리핑에서 “지난 화요일 세종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이재명 대통령은 청년산업 일자리 확대에 기업과 정부가 노력해 달라며 기업에도 청년 고용난 극복에 ‘팀 코리아’ 정신을 당부했다”며 “이에 화답하듯 삼성과 SK, 한화, 포스코, 현대차 등 주요 그룹이 신규 채용 확대 계획을 발표했는데 당초 계획보다 4000여 명 늘었다”고 말했다.
청년 취업한파 극복 총대 멘 삼성,‘반도체-바이오-AI’ 집중 채용
삼성 “5년간 6만명 신규 채용” 李대통령의 채용 확대 요청에 화답 美 관세 위협 속 규모 20% 늘려… “양질 일자리 창출” 이재용 뜻 반영 내달 민관 합동 대규모 채용박람회… 정부, 신입 채용시 인센티브 약속도
이재명 대통령이 기업들에 신규 채용 확대 요청을 하자 삼성은 연간 1만 명이 넘는 대규모 채용 계획을 밝히면서 화답했다. 삼성이 글로벌 경기 악화와 미국발 고관세, 커지는 대미(對美) 투자 등 녹록지 않은 경영 환경에도 청년 취업 문제 해결을 위해 먼저 나서자 다른 기업들도 잇따라 채용 확대 계획을 내놨다. 재계도 15년 만에 대규모 채용 박람회를 여는 등 청년 취업 한파 극복을 위한 대안을 내놓고 있다.
● 신규 채용 20% 늘린 삼성전자
18일 삼성그룹은 연간 1만2000명씩, 5년 동안 총 6만 명을 신규 채용한다고 밝혔다. 삼성은 그간 연간 1만여 명 수준의 신규 채용을 진행해 왔는데 이를 20%가량 늘린 것이다. 삼성 측은 “반도체를 중심으로 한 주요 부품 사업과 미래 먹거리로 자리 잡은 바이오 산업, 핵심 기술로 급부상한 인공지능(AI) 분야에 집중해 채용을 늘릴 것”이라고 밝혔다.
삼성은 직접 채용 외에 ‘삼성청년 소프트웨어·인공지능 아카데미(SSAFY)’ 등 ‘청년 교육 사회공헌사업’을 통해서도 8000개 이상의 일자리를 만들고 있다.
삼성이 이번에 대규모 신규 채용 확대에 나선 데는 ‘더 많이 투자하고 더 좋은 일자리를 만들겠다’는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의 뜻이 강하게 반영된 것으로 전해졌다. 이 회장은 앞서 지난달 19일 대통령실에서 미국 방문에 앞서 열린 경제단체·기업인 간담회에서 “대미 투자와 별개로 국내에서 지속적으로 양질의 일자리를 창출하고 고부가가치 산업을 육성할 수 있도록 투자를 지속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올 6월 대통령실 간담회 때도 “당장의 경제 위기를 이겨내는 것도 중요하지만 20년, 30년 다음 세대의 먹거리를 준비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실제 삼성은 국내 투자와 채용을 꾸준히 늘리고 있다. 삼성전자 사업보고서에 따르면 2019년 말 10만4605명이던 국내 직원 수는 2021년 말(11만2868명) 11만 명을 넘겼다. 올해 6월 말 기준으론 12만8925명까지 늘었다. 삼성전자는 연구개발(R&D) 경쟁력 강화를 위해 신입사원 공채 외에 국내 경력직, 우수 외국인 유학생 채용도 병행하고 있다.
● “청년 고용 위해 경영 환경 개선 필요”
재계도 15년 만에 대규모 채용 박람회를 개최하면서 청년 취업 문제 해결을 위해서 팔을 걷어붙였다.
이날 한국경제인협회는 고용노동부, 동반성장위원회 등과 공동으로 다음 달 21일 서울 강서구에 있는 코엑스마곡에서 민관 합동 ‘2025 상생협력 채용박람회’를 개최한다고 밝혔다. 이번 박람회에는 삼성, SK, 현대자동차, LG 등 주요 그룹 11곳이 참여할 예정이다. 참가자를 대상으로 대기업 우수 협력사 현장 면접과 채용 상담을 비롯해 이력서와 면접 코칭 등의 프로그램도 준비 중이다.
최근 청년 취업 문제는 삼성 등 대기업들이 신규 채용 확대에 나설 만큼 심각한 사회 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통계청이 발표한 ‘고용 동향’ 자료에 따르면 지난달 청년층(15∼29세) 고용률은 45.1%로 전년 같은 기간 대비 1.6%포인트 줄었다. 지난해 5월 이후 16개월 연속 감소세다. 청년층 취업자 수 역시 21만9000명 감소했다.
한경협 조사에 따르면 구직 활동을 하지 않는 ‘쉬었음 청년’이 40만 명대로 계속 늘고 있고, 이에 따라 연간 9조6000억 원에 달하는 경제적 비용이 드는 것으로 나타났다.
정부는 대기업의 경력직 채용 선호 현상을 막기 위해 신입 채용 확대 시 혜택을 주겠다고 약속했다. 이 대통령은 16일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요즘 기업들이 경력직을 뽑아버리는데, 기업에 부탁해서 청년 신입 채용을 해 볼 생각”이라며 “선의로만은 안 된다. (신입 채용 시) 지원이나 혜택이 가능하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기업들이 먼저 팔을 걷어붙인 만큼 앞으로 정부의 근본적인 기업 지원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조준모 성균관대 경제학과 교수는 “근본적인 일자리 창출을 위해선 기업의 투자 환경 개선과 인력의 질을 높이는 전환 교육 강화 등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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