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장 가세한 ‘영끌 청년개미’]
부동산 급등으로 좌절한 청년들
주식시장 투자 열기에 ‘이중 불안’
신용대출 받고 마통 개설은 기본
“청약 별따기” 계좌 깨고 주식으로
“무주택 청년들의 마지막 몸부림”
최근 스마트폰으로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주식 거래를 하는 이들이 늘고 있다. 송은석 기자 silverstone@donga.com
“신용대출에 더해 결혼 자금으로 받아둔 오피스텔까지 팔아서 주식에 투자할 계획입니다.”
서울에 있는 한 대학교에 재학 중인 이모 씨(25)는 최근 코스피가 연일 최고치를 경신하자 4일 증권사에서 신용대출로 2000만 원을 받아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반도체 업종에 투자했다며 이렇게 말했다. 공교롭게도 투자 직후 연일 주가가 하락하면서 700만 원을 손해 봤다고 한다. 그럼에도 이 씨는 “주변에 주식 투자로 큰돈을 벌었다는 친구들을 보니 ‘포모(FOMO·fear of missing out·소외에 대한 두려움)’를 크게 느껴 투자를 결정했다”며 “월급만 모아선 죽을 때까지 집을 살 수 없을 것 같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최근 부동산 가격 급등으로 “벼락거지가 됐다”고 좌절하던 무주택 청년들은 코스피 4,000 돌파를 바라보는 심경이 복잡하다고 입을 모은다. 이대로 손을 놓고 있다간 주식 시장에서도 남들보다 뒤처져 또다시 벼락거지가 될까 봐 두려워한다는 것이다. 김대종 세종대 경영학부 교수는 “집값이 오르고 주가도 단기간에 급등하다 보니 집도 주식도 가지지 못한 사람이 이중으로 불안해하는 것”이라고 했다.
변호사 시험에 합격한 김모 씨(28)도 올 4월 변호사 자격증을 받자마자 은행에서 법조인 마이너스통장을 개설해 마련한 8000만 원을 엔비디아와 테슬라, 아이온큐 등 미국 주식에 6000만 원, 가상자산과 선물에 각각 1000만 원을 투자했다. 이처럼 대출을 받아 주식에 투자하는 2030세대가 늘다 보니 5일 신용거래융자 잔액은 25조8224억 원으로 역대 최고치를 경신했다.
대표적인 투자 심리 지표로 꼽히는 투자자예탁금도 5일 기준 88조2708억 원을 기록했다. 지난달 13일 처음 80조 원을 넘어선 데 이어 한 달도 지나지 않아 90조 원 턱밑까지 오른 것이다. 투자자예탁금은 고객이 증권사 계좌에 맡겨 놓은 잔액 총액을 뜻한다.
최근 영끌 주식 투자에 나선 청년들은 과거와 달리 근로소득과 저축만으론 내 집 마련을 할 수 없는 구조적 한계를 지적한다. 대학 졸업 후 대기업 연구원으로 취직한 박모 씨(31)는 “아무리 오래 돈을 벌었더라도 소득만으로는 서울 아파트 구매는 불가능한 수준이라 막막하다”고 말했다.
한국부동산원 청약홈에 따르면 9월 주택청약종합통장 가입 계좌 수는 2511만5926좌로, 지난해 9월 2542만3635좌에 비해 30만7709좌(1.2%)가 줄었다. 김정식 연세대 경제학부 명예교수는 “미혼인 청년들은 청약 당첨으로 집을 마련하기 매우 어렵기 때문에 청약 계좌가 줄어든 것”이라며 “그 돈을 빼서 주식에 투자하는 경향도 생겨나고 있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청년들의 이런 투자 열기가 부동산 가격 상승기에 놓인 개인으로서는 어쩔 수 없는 결정이라고 보고 있다. 김 명예교수는 “지금의 영끌 투자는 청년들의 마지막 몸부림이라고 볼 수 있다”며 “청년이든 중년이든 살기 위해서는 집이 필요한데 집값이 너무 올라 본인 소득으로는 집을 마련할 방법이 없으니 한 번에 큰돈을 노리는 것”이라고 했다.
다만 청년층은 자산에서 금융자산이 차지하는 비중이 상대적으로 크다는 점에서 무리한 투자는 조심해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조언한다. 허창덕 영남대 사회학과 교수는 “합리적인 선택이라고 할 수 있지만 아직 경제적인 독립이 완전히 이뤄지지 않은 젊은층들은 한 번의 영끌 투자가 실패할 경우 평생의 짐이 될 수 있다”고 했다. 서지용 상명대 경영학과 교수도 “집을 살 수 있다는 믿음이나 계획이 있어야 체계적인 재무 관리가 되는데, 그렇지 않다 보니 단기간에 큰돈을 벌 수 있는 쪽으로 관심이 쏠리는 것 같다”며 “투자에 실패했을 경우에는 생활을 유지하기 어려워질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