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 멕시코, 유럽연합(EU) 등 최우방국들을 향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연일 고율 관세를 동원해 통상 위협을 가하는 배경에는 부동산 기업가 출신으로 국가경제를 기업 운영처럼 생각하는 그의 뿌리 깊은 ‘무역적자에 대한 집착’이 있다고 미국 정치매체 폴리티코, 외교매체 포린폴리시(FP) 등이 진단했다.
폴리티코는 3일 “트럼프와 그의 MAGA(마가) 충성파들에게 무역적자의 원인은 지나친 강(强)달러와 과도한 정부부채가 아니라 ‘악의적인 무역 상대국의 잘못’일 수밖에 없다”라고 설명했다. 이들에게 관세는 경제적 논리가 아닌 “확고한 경제적 신념의 문제”라는 것이다.
FP 역시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하기 30년 전부터 한 국가의 무역수지를 마치 기업의 대차대조표처럼 여겼다”라며 “그에게 적자는 ‘파산으로 가는 지름길’이므로 수입을 줄이고 수출을 늘려서 장부의 균형을 맞추는 것이 유일한 해결 방법”이라고 설명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정치에 입문하기 전부터 미국의 만성적인 무역적자에 대한 강한 불만을 드러내 왔다. 미국이 글로벌 무역흑자를 낸 것은 1975년이 마지막이다. 사업가 출신인 트럼프 대통령은 이미 1987년 미 유력 일간지 3곳에 사비로 낸 전면 광고에서 “동맹들이 미국의 공짜 보호 아래 무역 흑자를 내는 부유한 국가가 됐다”며 이들에게 관세를 부과해 미국 경제를 성장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실제로 2017년 당선된 뒤 “미국이 무역적자로 약탈당하지 않게 하겠다”며 주요 무역상대국과의 무역협정을 일방적으로 파기하고 고율(高率) 관세를 부과하며 대대적인 무역 전쟁을 벌였다. 많은 전문가가 미국의 무역 적자는 미국 달러가 세계 경제의 기축통화고, 미국의 경제구조가 제조업보다는 기술·서비스업에 강점이 있다는 점 등에 기인한다며 “무역수지는 경제의 건강을 나타내는 지표가 아니다”라고 지적했지만, 그는 꿈쩍하지 않았다.
2일 트럼프 대통령이 EU를 향해 “미국에 잔혹 행위를 저질러왔다”라며 신규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엄포를 놓은 반면, 영국에는 “문제가 있지만 해결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라며 비교적 유화적인 태도를 보인 것 역시 무역수지 때문일 가능성이 언급된다. EU 통계기구인 유로스태트에 따르면 미국은 EU의 최대 수출국으로, EU는 대미 무역 상품 부문에서 1600억 달러 흑자, 서비스 부문에서 1070억 달러의 적자를 봤다. 미 뉴욕타임스(NYT)는 “미국은 2023년 영국과의 무역 흑자를 기록했기에, 영국이 관세를 피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무역적자를 해소하기 위한 최고의 수단으로 ‘관세’를 꼽고 있다. 그는 지난해 대선 유세 과정에서도 관세를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단어”라고 불러왔다. 트럼프 대통령의 책사로 불리는 스티브 배넌 전 백악관 수석 전략가는 폴리티코에 “트럼프 대통령에게 관세는 단순한 징벌 수단이 아니라 수익창출원”이라며 “극장이나 경기장에서처럼, 미국이라는 ‘프리미엄 좌석’에 앉으려면 돈을 내라는 것”이라고 설명하기도 했다.
미국이 자국 우선주의를 몰아치며 동맹국과 비동맹국을 가리지 않고 관세 인상을 위협하는 것이 되레 전 세계적으로는 ‘미국 배제 무역 블록’ 형성을 부추기는 풍선효과를 낳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싱크탱크 피터슨국제경제연구소의 제이콥 F. 키르케고르 선임연구원은 “세계의 무역 관계는 점점 더 ‘미국만 제외하고’ 심화하는 경제로 변하고 있다”고 NYT에 말했다.
실제로 EU는 지난해 12월 브라질, 아르헨티나 등 남미 4개국과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했고, 스위스와의 협정을 강화한 데 이어 지난달에는 멕시코와도 무역장벽 철폐를 위한 개정 협상을 체결하는 등 발 빠르게 통상전략을 재편하고 있다. 인도네시아도 이달 세계 경제 생산량의 40% 이상을 차지하는 브릭스(BRICS)에 10번째 회원국으로 가입했다. 동남아시아국가연합(ASEAN·아세안)은 5월 걸프협력회의(GCC)와 정상회담을 개최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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