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1년 미국 서부 올림픽 산맥. 진눈깨비를 뚫고 산을 오르며 사색에 빠진 16세 소년이 있었다. 컴퓨터라는 새로운 세계에 깊이 빠져 있던 학생이었다. 그는 발밑을 주시한 채 묵묵히 걸으며 머릿속으로는 컴퓨터 프로그램 코드를 떠올렸다. 학생의 이름은 빌 게이츠. 그는 훗날 세계에서 가장 큰 회사 중 하나이면서 새로운 산업을 태동시킨 마이크로소프트(MS)를 창업하게 된다.
빌 게이츠가 70세를 맞아 낸 첫 자서전 ‘소스코드’ 한국어판(열린책들)이 5일 출간됐다. 3부작으로 기획된 자서전 가운데 1부로, 1955년 출생부터 1975년 마이크로소프트 설립까지를 다뤘다. “부모님 두 분을 추억하며 누나와 여동생에게 책을 바친다”는 헌사가 암시하듯 신간은 그의 성장 과정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가족 이야기가 주를 이룬다.
저자 개인 컬렉션게이츠 창업자가 회고하는 어린 시절 풍경엔 할머니 댁 식탁에 앉아 카드 패를 기다리는 여덟 살짜리 아이가 있다. 그의 외할머니 아델 톰슨은 카드 게임의 명수였다. 외할머니는 이전에 본 적 없는 수와 확률이 조합된 상황에서 늘 최적의 선택을 내렸다고 한다. 게이츠 창업자가 할머니를 처음 이기는 데 5년이 걸렸다. 그는 “카드 게임을 통해 나는 아무리 복잡하고 불가사의해 보이는 무엇이라도 결국에는 알아낼 수 있는 경우가 많다는 사실을 배웠다”며 “올바른 답은 항상 존재하는 법이므로 내가 찾기만 하면 된다는 확신을 강화할 수 있었다”고 회고했다.
어린 빌 게이츠는 다루기 쉬운 아이는 아니었다. 학교에 각자 물건을 가져와 발표하는 쇼 앤드 텔(show-and-tell) 시간에는 소의 허파를 가져와 동급생을 기절시키기도 했다. 그는 “만약 내가 오늘날 어린 시절을 보내고 있다면 아마 자폐 스펙트럼 진단을 받았을 것”이라며 “아무런 거리낌 없이 이상한 질문으로 수업을 방해하고 선생님의 시간을 많이 빼앗는 아이였다”고 고백했다. 외할머니의 카드 기술처럼 흥미를 느끼는 일에는 열정을 쏟아부었고 흥미가 생기지 않는 일에는 아무런 관심도 기울이지 않았다.
저자 개인 컬렉션어머니 메리 맥스웰 게이츠와는 자주 대립했다. 어머니가 운영하는 “잘 조직된 가정”에선 침대를 정리하지 않거나 머리를 빗지 않거나 구겨진 셔츠를 입은 채 집을 나서는 일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게이츠 창업자는 어머니가 자신에게 준 영향에 대해 이렇게 회고했다. “어머니의 기대는 내게 내면화되어 성공하고, 두각을 나타내고, 중요한 일을 이루고 싶다는 더 강한 야망으로 피어났다. 마치 어머니의 기준을 크게 뛰어넘어 그 문제에 대해 더이상 거론할 필요가 없게끔 만들어야만 할 것 같았다.”
막대한 부를 사회에 환원하게 된 배경에 대해서도 어머니의 영향을 언급했다. 어머니는 “좋은 청지기가 돼야 한다”는 말을 반복했다. 어떤 부를 획득하든 그것을 잠시 관리하는 청지기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정기적으로 상기시켜 주었다. 부를 얻으면 그것을 나눠야 할 책임도 따르는 것이라고 강조하곤 했다.
“나는 인생의 대부분을 앞날에 집중하면서 살았다. 하지만 나이가 들면서 점점 더 과거를 돌아보게 된 것도 사실이다”라는 고백처럼 책 곳곳에는 과거의 인물과 풍경에 대한 게이츠의 그리움이 묻어난다. 특히 1994년 64세 일기로 세상을 떠난 어머니에 대한 마음이 절절하다. 게이츠는 “내가 그 기대에 부응하려고 얼마나 노력하는지 충분히 확인할 만큼 오래 머물지 않고 내 곁을 떠난 어머니가 안타깝고 그립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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