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9월27일(현지시각) 미국 뉴욕에서 도널드 트럼프 당시 공화당 대선 후보(오른쪽)와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만난 모습. 뉴욕=AP/뉴시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9일(현지 시간)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을 “독재자” “그저 그런 성공을 거둔 코미디언”으로 부른 것을 두고 우크라이나에서는 충격과 분노가 끓어오르고 있다고 뉴욕타임스(NYT) 등 외신들은 전했다. 전날 미국이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 종전(終戰) 구상을 놓고 양자 협상을 시작한 것에 이어, 젤렌스키 대통령을 향해 전쟁 발발의 책임을 묻고 원색적인 비난을 서슴지 않자 “선을 넘었다”는 반응이 쏟아지는 것이다.
우크라이나 싱크탱크 ‘회복력과 사회 결속을 위한 국가 플랫폼’의 공동 설립자 올레 사키안은 NYT에 “조 바이든 행정부의 우유부단함에 지쳤던 많은 우크라이나인들은 트럼프 대통령이 러시아에 종전을 압박할 수 있을 것이란 희망을 품었지만 이제는 실망했다”고 말했다.
우크라이나 동부 전선에서 복무 중인 한 36세 특수부대 병사는 “솔직히 말하자면 우리에게 트럼프는 푸틴과 다름없다”며 “둘 다 결코 진실을 말하지 않을 것이고 원하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만들어낼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군인들은 트럼프가 하는 말을 들을 때마다 긴장하며 떨고 있다”고도 전했다.
키이우에서 엔지니어로 일하는 28세 청년 올레그 로마니쉔은 영국 BBC방송에 트럼프 대통령의 ‘독재자’ 발언에 대해 “관에 못을 박은 말”이라며 “우크라이나가 기댈 수 있는 친구들이 더 이상 남아있지 않은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가장 낙천적이었던 내 친구들조차도 현실주의자가 되고 있다”며 고개를 저었다.
키이우에서 부동산 중개인으로 일하는 올렉산드르 씨는 “트럼프 대통령이 우크라이나를 지원하지 않는 것은 본질적으로 미국의 유권자들과 가치관을 배신하는 것이기도 하다”고 주장했다. 이번 전쟁에서 부친을 잃고 남편도 실종된 30세 마리나 이바시나는 NYT에 “협상이건 뭐건, 더는 아무것도 믿을 수가 없다”라며 눈물을 흘렸다.
젤렌스키 대통령의 반대파들조차도 트럼프 대통령의 최근 발언이 ‘내정간섭’이라며 비난하는 분위기다. 우크라이나 싱크탱크 정책형성센터의 정치평론가 올렉산드르 노테프스키는 소셜미디어에서 “나는 젤렌스키 대통령을 대신할 다른 지도자가 곧 나오기를 굳게 바라고 있지만, 그런 결정을 내릴 수 있는 것은 오직 우크라이나 국민뿐”이라고 밝혔다. 또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은 젤렌스키 대통령 개인이 아니라 우크라이나의 주권 자체를 공격한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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