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한국의 사진기자이다. 최근 미국 백악관에서 일어나고 있는 사진 취재 방식의 변화 가능성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미국 트럼프 대통령이 기자들의 취재 방식을 바꾸고 있다. 우크라이나와 중동 분쟁을 정리하는 방식과 우방국을 포함한 외국 제품의 수입 관세 분야에 이어 미국 내 취재 시스템에 대해서도 트럼프식(式) 변화가 시작된 것이다.
2024년 7월 13일 유세 중에 총격을 받은 트럼프 . 이 사진은 AP 통신 백악관 출입기자가 촬영했다. 최근 AP 통신과 백악관의 갈등 속에서 사진취재에는 어떤 변화가 있을지 주목된다. (AP Photo/Evan Vucci)
캐롤라인 레빗 백악관 대변인은 25일(현지 시간) 브리핑에서 “수십년간 워싱턴 DC에 기반을 둔 백악관 출입기자단이 백악관 집무실 등의 공간에서 질문할 수 있는 풀(pool) 기자로 누가 참여할지를 결정했으나 더는 아니다”라면서 “일부 언론이 백악관 출입 특권을 독점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미국 백악관 취재 규범(norm)의 변화는 미국의 독자들이 걱정할 이슈인 것은 맞다. 하지만 한국의 사진기자로 바라보는 미국 트럼프 백악관의 변화는 몇 가지 주목할 만한 점이 있다. 우리나라 민주주의가 위기에 처한 상황에서 태평양 너머 미국의 민주주의를 걱정할 것은 아니지만 아무래도 미국 백악관 취재 시스템이 한국 대통령실 취재 시스템의 모태이기 때문이다.
백악관 취재를 담당하는 취재기자의 경우, 어쩌면 큰 변화가 없을 수도 있다. 질문을 할 수 있는 우선권을 갖지 않더라도 대통령 또는 대변인의 말을 잘 기록해 사후에 분석해 맥락을 독자들에게 전달할 수 있다. 그러나 사진의 경우는 다르다. 접근이 되지 않는다면 사진을 찍을 수 없기 때문이다.
● 풀 (Pool) 취재의 방식
백악관 대변인이 언급한 풀 기자는 한국에서도 사용하는 용어다. 풀은 카 풀(car pool)을 생각하면 이해하기 쉽다. 풀 취재는 차를 함께 타듯이 취재를 함께 한다는 의미이고 풀 기자는 해당 취재를 담당하는 대표 기자를 말한다. 보통 기자단이 꾸려지면 가나다 순 또는 별도의 풀 순서에 따라 풀 취재 당번이 결정된다. 한국의 경우 현재 대통령실 출입사진기자단에 9개의 매체가 소속되어 있다. 근무와 출장 여력이 있는 회사들이 포함되어 있고 1983년대부터 이어져 오고 있는 시스템이다. 백악관출입사진기자단을 본 딴 조직이다.
미국 백악관 출입사진기자단 (WHNPA·White House News Photographers Association)은 1921년 6월 13일 정식 출범했다. 2024년 말 기준 미국 백악관 사진기자협회에는 약 250명의 회원이 있다. 이들이 모두 백악관으로 출근하는 것은 아니며 하루 평균 10명의 사진기자들이 백악관에서 대통령을 취재하고 있으며, 프레스 룸 옆에 사진기자들이 대기하는 사진기자실 공간이 따로 있다. 2016년 대통령 취재를 위해 방문했을 때 이곳 기자실에 들어간 적이 있는데 약 6개 책상이 있었다. AP통신과 뉴욕타임즈 등 유력 매체의 기자들만이 상주하고 있었다. 우리가 흔히 보는 미국 백악관 대변인의 브리핑 장면 바로 앞부분에 기자들 의자가 있고 그 뒤쪽으로 사진기자실이 있었다.
백악관을 출입했던 사진기자 경력 35년의 로이터 통신 사진기자는 필자에게 이메일로 다음 내용을 알려주었다.
외국 지도자가 방문하는 등 백악관에 중요한 이벤트가 있는 날에는 최대 25-30명의 스틸 사진기자들이 동시에 모인다. 백악관을 정기적으로 취재하고 백악관 “하드 패스(hard pass)”를 소지한 스틸 사진기자의 총 인원 수는 약 50명 정도인데 하드 패스를 소지하면 언제든지 백악관 경내와 프레스룸에 출입할 수 있다. 미국 대통령을 취재하는 데 있어 중요한 점은 집무실인 오벌 오피스(Oval Office)에서 진행되는 이벤트와 대통령의 해외 순방 때는 “타이트 풀(tight pool)”로만 취재할 수 있다는 것이다. 타이트 풀의 가장 작은 형태는 대통령과 함께 에어포스 원(Air Force One)을 타고 국내 및 해외여행을 함께하는 12명의 취재진으로 구성된다. 이 풀은 3명의 통신사 취재 기자, 1명의 신문 풀 취재 기자, 3명의 TV 네트워크 팀(카메라맨 포함), 1명의 라디오 기자, 그리고 4명의 스틸 사진기자(AP, 로이터, AFP, 뉴욕타임스에서 각 1명)로 구성된다. 스틸 사진기자의 경우 이 4개의 조직 외에는 다른 스틸 사진기자가 대통령과 함께 에어포스 원을 타고 여행하지 않는다. 이들 4개 조직은 자신들의 클라이언트와 구독자 외에는 이미지 공유를 하지 않는다. 이는 TV 네트워크가 한 명의 카메라맨이 모든 네트워크와 공유하는 것과는 다르다. 백악관 내부 행사를 취재하는 풀에도 동일한 4명의 스틸 사진기자가 항상 있지만, 게티(Getty)와 워싱턴 포스트(Washington Post)도 사진기자가 추가로 포함될 수 있다. 또한, ISP(Independent Stills Pool)라는 작은 조직의 그룹도 매일 한 명의 사진기자를 풀에 포함시켜 다른 ISP 조직과 이미지를 공유한다.
● 총탄 맞는 트럼프 대통령의 모습을 촬영한 AP 사진기자는 어떻게 될까?
2024년 7월 미국 대선을 4개월 앞두고 미국 공화당 후보였던 트럼프가 피격 당하는 현장에서 성조기를 배경으로 피를 흘리며 손을 들어 보이는 트럼프 사진으로 우리에게 익숙한 사진기자가 있다. AP통신의 에반 부치(Evan Vucci)기자다. 20년 이상 미국 백악관 등 정치 현장과 스포츠 현장에서 활동하고 있는 베테랑 사진기자이다. 총성이 들리자 마자 몸을 숨기는 게 아니라 오히려 트럼프 후보쪽으로 달려가 특종 사진을 찍을 수 있었다.
트럼프는 이 사진으로 지지자들 사이에서 강력한 지도자의 이미지를 더 강화할 수 있었고 선거 유세 기간 동안 상징처럼 사용하기도 했다. 트럼프 지지자인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는 사건 직후 이 사진을 자신의 엑스(X·옛 트위터)에 올려 공유했었다.
에반 부치는 현재 미국 백악관 출입 AP 사진기자인데 최근 벌어지는 백악관과 AP 통신 사이의 갈등 속에 난처한 상황에 빠졌을 것으로 추측된다.
필자가 소속된 동아일보를 비롯한 언론사로 송출되어 들어오는 AP 사진 속에 에반 부치의 이름은 계속 나오지만 트럼프를 직접 찍은 사진은 최근 사라졌다. 기자실에서 대변인의 모습 정도만 사진으로 찍어 보도하고 있다. 정확히 어떤 제한 조치를 받았는지는 확인 중이지만 변화는 시작된 것으로 보인다.
한국 신문 2023년 7월 15일자 1면. 미국 사진기자가 촬영한 사진은 국내 언론의 제작 과정에서도 중요한 요소이다.
● 언론과 권력의 갈등
미국 AP 통신과 백악관의 갈등이 첨예화된 것은 트럼프 행정부가 ‘멕시코만’의 이름을 ‘미국만’으로 바꾸었지만 AP 통신이 그 용어를 사용하지 않겠다고 밝혀서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 직후 멕시코만을 미국만으로, 알래스카주의 북미 최고봉인 데날리산을 매킨리산으로 바꾸는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이후 AP통신은 자체 스타일북 표기법에 따라 원래 지명인 ‘멕시코만’을 계속 사용하겠다고 밝혔다. 2025년 2월 11일 트럼프 대통령이 연방 공무원 대폭 감축 지시를 담은 행정명령에 서명하는 행사를 취재하려던 AP기자가 행사 출입이 거부되었다는 사실을 AP 통신이 기사화하면서 외부에 알려졌다.
취재 기자는 출입이 거부되었지만 AP 사진기자는 백악관 행사에 출입을 허용받았다는 기사도 있지만 최근 트럼프 특종 기자의 사진이 브리핑룸 스케치 정도에 머무르고 있다는 점은 주목할 필요가 있다.
● 앞으로 미국 트럼프 사진의 취재 방식은 어떤 변화를 겪을까
사진은 카메라 앞에 있는 피사체를 있는 그대로 촬영해서 독자에게 보여준다는 일종의 신화를 갖고 있다. 보도사진이 존중받는 이유이기도 하다. 하지만 정치의 영역에서 사진은 100% 객관적이라고 말하기 어렵다. 무대를 세팅하는 참모들과 피사체인 대통령과 정치인들이 카메라를 인식하고 사전에 준비하기 때문이기도 하고 최종 선택 과정에서 편견과 입장에 영향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나마 훈련되고 독립된 사진기자가 촬영하는 사진은 한계가 덜한 편이다. 대통령이 인사권을 갖고 있는 전속 카메라맨이 촬영한 사진과 언론사에서 월급을 받는 사진기자가 촬영한 사진은 아주 미묘하더라도 차이가 있을 수 있다. 그래서 권력자들은 자신을 우호적으로 생각하는 카메라만 옆에 있기를 원한다.
미국 대통령 선거 과정에서 트럼프를 최소한 지지자들 사이에서는 영웅으로 확실하게 만들어 준 피격 순간 사진을 찍었던 AP의 사진기자는 앞으로도 독립적인 활동을 보장받을 수 있을까? 미국 민주주의와 언론 자유의 바로미터가 될 것 같다.
● 당사자의 입장 표명
이 글을 쓰면서 한국시각 27일 오전 에반 부치 기자의 인스타그램을 통해 DM을 보냈다. 한국 언론에 나온 미국 트럼프 2기 행정부의 풀 취재 계획에 관한 보도를 보여주면서 “혹시 AP 통신 백악관 출입 사진기자로서의 당신의 역할에 변화가 있느냐?”는 질문을 했다. 아마 전세계 많은 포토저널리스트들과 기자들도 비슷한 질문을 했을 것이다. 에반 부치 기자는 개별 답변 대신 인스타그램에 한국 시간 28일 오전 다음과 같은 포스팅을 올렸다. “메시지를 보내 주신 분들께 감사드린다. (트럼프)행정부는 내가 백악관 사진취재하는 것을 금지 시켰다. 이유는 AP 기사 표기 스타일을 둘러싼 분쟁 때문이다. 희망하건데 빨리 이 사태가 끝나서 역사를 기록하는 내 역할로 돌아가고 싶다. 관심 가져줘서 고맙다”는 짧은 입장문이다.
28일 오전 (한국 시간) AP 백악관 출입기자 Evan Vucci 기자가 자신의 인스타그램 계정에 올린 입장문. 트럼프 정부로부터 취재 제한을 받고 있다고 밝히고 있다.현재 미국 백악관 사진은 AP망을 통해 한국으로 들어오곤 있다. 그러나 사진의 촬영자 정보에는 기자 개인의 이름이 빠져있다. 풀 취재를 통한 사진이라는 표시만 있다. 미국 언론의 취재 범위에 변화가 어떤 방향으로 전개될지 걱정스런 마음으로 지켜볼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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