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테르테 前필리핀 대통령 공항서 체포…‘마약과의 전쟁’으로 수천명 살상 혐의

  • 동아일보
  • 입력 2025년 3월 11일 16시 56분


코멘트
2018년 4월 19일 소총을 들고 포즈를 취하고 있는 로드리고 두테르테 전 필리핀 대통령. 그는 2016~2022년 재임 중 ‘마약과의 전쟁’으로 명명한 대대적인 마약 범죄 소탕 정책으로 용의자 수천 명을 불법적으로 체포·살해한 혐의를 받고 있다. 마닐라=AP 뉴시스

‘마약과의 전쟁’으로 인권 침해 논란을 빚었던 로드리고 두테르테 전 필리핀 대통령(80)이 11일(현지 시간) 체포됐다. 필리핀 당국이 국제형사재판소(ICC)가 발부한 체포영장을 전격 집행하면서다. 2016~2022년 재임 중 대대적인 마약 사범 소탕 정책으로 수천 명 이상 살상한 혐의를 받는 두테르테 전 대통령이 ICC 조사를 받게 되면서 필리핀 국내외에 큰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필리핀 정부는 이날 오전 홍콩에서 지지자 집회를 마치고 귀국한 두테르테 전 대통령을 마닐라국제공항에서 체포했다고 밝혔다. 필리핀 대통령실은 성명을 통해 이른 오전 국제형사경찰기구(인터폴)에서 반인도적 살상 범죄 혐의로 발부된 ICC 영장을 전달받았다고 전했다. 두테르테 전 대통령이 빌라모르 공군기지 수감 시설에 구금됐고 건강 상태는 양호하다고도 덧붙였다.

현지 매체 등에 공유된 영상에서 두테르테 전 대통령은 “내가 무슨 범죄를 저질렀냐”며 체포에 거세게 저항했다. 이틀 전 홍콩에서 연설하며 “(ICC) 체포가 삶의 운명이라면 받아들이겠다”고 말했던 것과 상반되는 태도다. 그의 지지자들도 공항에 몰려들어 격렬히 항의했다. 강경한 범죄 대응과 거침없는 화법으로 인기가 높았던 그는 퇴임 후에도 상당한 지지를 받고 있다.

11일(현지 시간) 필리핀 마닐라 공항에서 로드리고 두테르테 전 필리핀 대통령의 체포를 접한 한 지지자 여성이 눈물을 흘리고 있다. 필리핀 대통령실은 이날 홍콩 일정을 마치고 귀국한 두테르테 전 대통령을 마닐라 공항에서 체포했다고 밝혔다. 마닐라=AP 뉴시스
11일(현지 시간) 필리핀 마닐라 공항에서 로드리고 두테르테 전 필리핀 대통령의 체포를 접한 한 지지자 여성이 눈물을 흘리고 있다. 필리핀 대통령실은 이날 홍콩 일정을 마치고 귀국한 두테르테 전 대통령을 마닐라 공항에서 체포했다고 밝혔다. 마닐라=AP 뉴시스

두테르테 전 대통령은 취임 직후인 2016년 7월부터 ‘마약 무관용 원칙’을 내세워 필리핀 전역에서 마약 용의자 체포 작전을 벌였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경찰에 마약 복용자·판매자가 투항하지 않으면 즉각 사살하라고 명령하는 등 광범위하게 사살이 이뤄졌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필리핀 정부의 공식 집계는 6200명이나, ICC는 사망자 수가 1만 2000명에서 3만 명에 이르며 마약과 관련됐다는 증거도 없이 살해된 사례도 적지 않다고 보고 있다.

ICC는 2018년부터 두테르테 전 대통령이 지휘한 대규모 살상 행위를 ‘반인도적 범죄’로 규정하고 수사에 착수했다. 이듬해 인터폴을 통해 체포 영장도 발부했지만, 재임 중이던 두테르테 전 대통령은 크게 반발하며 ICC 탈퇴까지 강행했다. 퇴임 전인 2021년 탈퇴 이후 ICC에 사법권이 없다며 수사 중단도 주장했다. 그러나 ICC는 2023년 필리핀이 회원국이었을 때(2016~2019년) 저지른 범죄에 관할권이 있다며 해당 주장을 기각했다.

2022년 두테르테 전 대통령의 뒤를 이은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대통령 행정부도 출범 초에는 ICC 조사에 강하게 반대했다. 마르코스 대통령이 두테르테 전 대통령의 딸인 세라 두테르테 부통령과 러닝메이트를 이뤄 당선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친(親)미파인 마르코스 대통령과 친중파 두테르테 부통령은 외교 노선 등에서 여러 차례 부딪혔고, 양측의 정치적 동맹은 지난해 사실상 결렬됐다. 이후 필리핀 당국은 ICC의 체포 영장 집행에 협조하겠다는 뜻을 밝혀왔다.

#로드리고 두테르테#필리핀#마약 사범 소탕 정책#국제형사재판소
© dongA.com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