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든 행정부 때문에 물 똑, 똑”
‘수압 규제 완화’ 행정명령 서명
‘백신 회의론자’ 보건복지장관은
“수돗물 불소, 폐기물 수준 독성”
“미국인의 샤워 자유를 회복하겠다. 과도한 규제는 경제를 질식시킨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버락 오바마 전 행정부 시절 도입된 ‘수압 규제’를 완화하는 행정명령에 9일 서명했다. 오바마 행정부는 2013년 시판 샤워기가 분당 최대 2.5갤런(약 9.5L)까지만 물을 뿜도록 규정했다. 미국 가정의 일일 물 사용량의 약 20%를 차지하는 샤워 때 수압이 세면 물과 에너지 낭비가 심해진다는 이유에서다.
트럼프 대통령은 집권 1기인 2020년 8월 해당 규칙을 샤워기 전체가 아닌 ‘개별 노즐’에 적용하도록 규칙을 완화했다. 그러자 2021년 조 바이든 전 행정부 또한 이 규정을 오바마 행정부 때로 되돌렸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에 동의할 수 없다며 자신의 2020년 행정명령을 이날 복원했다. 샤워기는 물론 변기, 식기세척기를 포함해 여러 가전제품에 대한 수압 규제도 완화했다. 민주당 정권이 수압 규제를 강화하고 공화당 정권이 완화하는 일이 되풀이되고 있다.
● “좌파와의 수압 전쟁”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워싱턴 백악관에서 취재진에 “내 아름다운 머리를 위해 멋진(강한 수압의) 샤워를 원한다”며 “지금은 머리를 적시려면 샤워기 앞에서 15분을 서 있어야 한다. 물이 ‘똑, 똑, 똑’ 떨어지는 게 말이 되느냐”라고 오바마 행정부의 규제에 불만을 드러냈다.
이날 백악관 또한 “미국인을 과도한 규제에서 해방시키고 수압에 대한 좌파와의 전쟁 또한 멈추겠다”는 보도자료를 공개했다. 샤워 수압까지 연방정부가 정하는 것은 전형적인 관료주의라는 주장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과거부터 ‘강한 수압’을 강조했다. 그는 2019년 “수압이 부족해 사람들이 변기를 한 번이 아니라 10∼15번씩 내린다”고 불만을 표했다. 2020년에도 “샤워를 하고 싶고 손을 씻고 싶은데 (약한 수압으로) 물이 나오지 않는다”고 했다. 지난해 대선 유세 때는 “샤워할 때 내 아름다운 머리가 예쁘게 거품을 내면 좋겠는데, 물을 틀었더니 빌어먹을 물방울만 똑똑 떨어진다”고 했다.
그의 행보에 대한 평가는 엇갈린다. ‘납세자들이 수도 요금을 내는 만큼 강한 수압의 샤워를 할 권리가 있다’는 주장과 ‘기후 변화에 대처하기 위해 물과 에너지를 아껴야 한다’는 주장이 맞선다. 다만 AP통신에 따르면 비영리단체 ‘가전제품표준인식프로젝트(ASAP)’는 소비자 후기를 인용해 “이전 정부 때 판매된 시판 샤워기의 수압은 별 문제가 없다”고 진단했다.
● 케네디 보건장관 “수돗물 내 불소 불가”
이 와중에 로버트 케네디 주니어 보건복지장관은 뚜렷한 과학적 근거 없이 수돗물 속 ‘불소’를 반대해 도마에 올랐다. 그는 미국 주요 주(州)가 충치 예방을 위해 수돗물에 첨가하는 ‘불소’가 “산업 폐기물 수준의 독성을 띤다”며 첨가 금지를 주장했다. 그는 이 불소가 아동의 지능 저하와 연관이 있다고 주장하면서도 근거는 내놓지 않고 있다.
AP통신에 따르면 그는 7일 서부 유타주 솔트레이크를 방문해 “수돗물에 불소를 넣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유타주의 행보를 지지한다”며 “질병통제예방센터(CDC)에 불소 첨가를 권고하지 않도록 지시하겠다”고 했다. 집권 공화당 소속으로 2021년 1월 취임한 스펜서 콕스 유타 주지사는 지난달 미 50개 주 최초로 주 차원에서 수돗물 내 불소 사용을 금했다.
미 연방정부는 1945년부터 지역 상수도에 불소 첨가를 권고하고 있다. 2022년 기준 미국인 62.8%가 불소가 첨가된 수돗물을 마시고 있다. CDC는 상수도 불소 첨가가 충치 예방에 크게 기여했다며 ‘20세기 10대 공중보건 성과’에도 포함시켰다. 케네디 장관은 취임 전 ‘백신이 자폐를 유발할 수 있다’는 주장을 편 적도 있다. 다만 최근 미국 전역에서 홍역이 발병하자 “백신을 맞으라”고 입장을 바꿨다.
홍정수 기자 hong@donga.com
김윤진 기자 ky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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