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다음 달 1일부터 유럽연합(EU)에 부과하기로 했던 50%의 관세 시행 시기를 올해 7월 9일로 미룬다고 25일(현지 시간) 밝혔다. 앞서 23일 “50% 관세”를 선언한 지 이틀 만에 유예를 선택한 것이다. “자고 일어나면 바뀐다”는 말이 무색할 만큼 전 세계를 상대로 한 트럼프 대통령의 ‘롤러코스터 관세’ 정책이 반복되고 있다. 워싱턴포스트(WP)는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 뒤 새로 부과하거나 바꾼 관세 정책만 50회 이상”이라고 꼬집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재집권 뒤 중국 멕시코 캐나다 등 세계 각국을 상대로 ‘관세 폭탄’을 투하한 뒤, 아무렇지 않게 이를 유예 또는 철회하는 행보를 이어 오고 있다. 특히 패권 경쟁을 벌이고 있는 중국에는 사실상 교역이 불가능한 수준인 145%의 관세 폭탄을 안겼지만 이달 10, 11일 스위스 제네바에서 통상 협상을 갖고 갑자기 이를 90일간 30%로 낮추기로 했다.
이 같은 트럼프식 관세 정책에 대한 평가는 엇갈린다. 예측 불가능한 상황을 조성해 상대방에게 불안감을 안긴 후 협상력을 극대화하려는 특유의 ‘매드맨(mad man·미치광이) 전략’이란 평가와 애초에 관세 전략 자체가 부재했기 때문에 성급한 발표 뒤 부작용이 커지자 급하게 수습하려 한다는 비판이 동시에 제기된다.
● 관세 부과 이틀 만에 EU에 유화 손짓
트럼프 대통령은 25일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과의 통화 사실을 공개하며 EU에 대한 관세 부과 유예를 선언했다. 폰데어라이엔 위원장이 먼저 자신에게 전화해 관세 유예를 요청했다며 “우리는 좋은 통화를 했다. (EU의) 요청을 받아들였다”고 밝혔다. 7월 9일은 지난달 트럼프 대통령이 각국에 부과한 상호관세 유예가 끝나는 시점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그동안 EU가 미국산 자동차와 농산물을 많이 수입하지 않으며 구글, 아마존 등 미국 빅테크 기업에 각종 제재를 가한다는 점에 강한 불만을 드러냈다. 또 “EU는 미국을 갈취하기 위해 만들어진 조직”이라는 원색적인 비난도 퍼부었다.
그는 23일 트루스소셜에 “미국은 EU와의 무역에서 연간 2500억 달러(약 342조5000억 원)가 넘는 적자를 기록하고 있다. 이 수치는 도저히 용납할 수 없다”며 관세 부과를 선언했다. 부가가치세(VAT), 유로화의 인위적인 가치 하락 유도 등 EU가 미국에 각종 비(非)관세 장벽을 세우고 있다고도 주장했다.
하지만 이틀 만에 갑자기 관세 유예를 선언하면서 애초에 선전포고 자체가 ‘엄포’였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EU와의 관세 협상이 교착 상태에 머물며 자신의 기대만큼 신속하게 진전되지 않자 협상에 적극적으로 임하라는 경고 차원에서 으름장을 놓았다는 의미다.
EU 최대 경제대국 독일의 라르스 클링바일 재무장관은 25일 현지 매체 ‘빌트’에 “더 이상의 ‘도발’ 대신 진지한 ‘협상’이 필요하다”며 적극적으로 협상에 임할 뜻을 밝혔다. 이에 더해 폰데어라이엔 위원장까지 관세 유예를 요청하자 트럼프 대통령도 다시 관세를 유예해 줬다는 평가가 나온다.
● 급하게 ‘관세 폭탄’ 던진 뒤 주워 담기 반복
트럼프 대통령이 그간 ‘관세 롤러코스터’에 태운 승객은 국가와 품목을 가리지 않는다. 올 1월 재집권 직후 25% 관세 부과를 예고한 캐나다와 멕시코에도 수 차례 유예, 관세율 조정의 변덕을 부렸다. 지난달 2일에는 전 세계를 상대로 각각 다른 상호관세율을 매겼고, 일주일 후 중국을 제외한 모든 나라에 ‘90일 유예’ 처분을 내렸다.
자동차, 철강·알루미늄, 농업, 에너지 등 품목별 관세 역시 수 차례 시행과 철회를 발표하는 널뛰기 행보를 보였다. 특히 그는 올 3월 11일 캐나다산 철강과 알루미늄에 대한 관세를 기존 25%에서 50%로 두 배 올리겠다고 밝혔다가 약 6시간 만에 철회했다. 이달 4일엔 외국에서 제작된 영화에 100% 관세를 부과한다고 밝히고선 할리우드가 우려를 표하자 하루 뒤 “(업계) 관계자들부터 만나겠다”며 슬그머니 물러섰다.
스콧 베선트 미 재무장관 등 트럼프 2기 행정부의 주요 인사는 이를 ‘의도된 협상 전략’이라고 주장한다. 베선트 장관은 지난달 27일 ABC 인터뷰에서 ‘게임 이론’을 거론하며 “대통령이 ‘전략적 불확실성’을 협상 전술로 활용하고 있다”고 두둔했다.
다만 대부분의 경제 전문가는 관세 정책 전반에 대한 전략적 로드맵이나 후폭풍을 고려하지 않은 채 ‘보여주기식’ 발표부터 하다 보니 ‘예고된 혼선’이 나타났다고 비판한다. 중국 등 상대국의 저항이 만만치 않고, 관세 롤러코스터로 미국 주식, 채권, 통화 가치가 하락하면서 ‘모양 빠지는 철회’가 반복됐단 의미다.
다만 트럼프 대통령은 25일에도 자신의 관세 정책을 옹호했다. 그는 이날 취재진에 “관세 정책은 다른 나라에서도 만들 수 있는 양말, 운동화, 티셔츠 등을 위한 게 아니다”며 “우리가 만들고자 하는 건 반도체, 컴퓨터, 탱크, 군함”이라고 했다. 첨단 산업에서 미국의 경쟁력을 높이려면 관세가 불가피하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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