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중국이 한국의 대선 결과를 두고 충돌했다. 최근 아시아 동맹국들이 안보는 미국과, 경제는 중국과 협력하는 ‘안미경중(安美經中)’ 전략을 취하고 있다며 불만을 제기한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는 3일(현지 시간) 한국 대선 결과와 관련해 백악관 고위 당국자 명의로 한미 동맹의 중요성을 언급하고 공정 선거가 치러졌다고 평가하면서도 “세계 민주주의 국가에 대한 중국의 간섭과 영향력 행사를 반대한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중국은 4일 “한국과의 관계를 이간질하는 행위를 중단하라. 중국은 다른 나라의 내정에 간섭하지 않는다”며 맞섰다.
두 나라는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 후 관세, 희토류, 중국 유학생의 미국 비자 제한, 미국의 대(對)중국 반도체 수출 규제 등 각종 의제에서 대립해 왔다. 향후 미국이 한국의 새 정부에 중국 견제에 동참하라고 압박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이 과정에서 한국의 어려움도 커질 것으로 보인다.
마코 루비오 미국 국무장관도 3일 한국 대선에 관한 성명에서 이재명 대통령의 당선을 축하하면서도 “역내 안보를 강화하고 민주주의 원칙을 지키기 위해 한미일 3자 협력을 심화할 것”이라고 밝혔다. 역시 중국 견제 등에 동참하라는 의사를 강조한 발언으로 풀이된다. 피트 헤그세스 미국 국방장관 또한 지난달 31일 “아시아 동맹국이 국방력을 강화해 미국과 함께 중국 견제 전선에 나서야 한다”며 동맹국의 안미경중 전략을 비판했다.
워싱턴의 외교 소식통은 “현재 안보, 경제를 막론하고 중국 견제와 압박이 미국의 최우선 정책 순위에 있으니 한국의 대선 논평에도 영향을 끼친 것 같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트럼프 2기 행정부가, 이재명 정부가 윤석열 정부보다 상대적으로 중국에 유화 제스처를 취할 수 있다고 판단해 자신들의 중국 견제에 동참하라는 압박성 메시지를 내놨다는 분석도 나온다. 특히 이재명 정부는 조만간 통상, 방위비 분담금, 북한 대처 등 다양한 현안을 놓고 미국과의 협상에 나서야 하는 상황. 이에 미국 측이 한국 새 정부에 ‘기선 제압’ 차원에서 선제적으로 강한 메시지를 냈을 수 있다는 것이다. 또 다른 외교 소식통은 “(중국 등) 다른 데 기웃거리지 말고 대미 협상에 일단 집중하고 빠른 합의를 하자고 재촉하는 의도”라고 진단했다.
중국은 이런 미국의 행보에 강한 불만을 제기했다. 중국 외교부의 린젠(林劍) 대변인은 4일 ‘이간질(挑撥·도발)’이란 표현을 쓰며 “중국은 줄곧 편 가르기, 대립에 반대해 왔다. 한국과의 관계는 공동 이익을 추구해야 하며 제3자를 겨냥하거나 제3자의 영향을 받아선 안 된다”고 지적했다. 중국은 올해 2월 루비오 장관이 “러시아가 중국에 지나치게 의존하고 있다”는 발언을 했을 때도 “이간질한다”는 표현을 쓰며 반발했다.
한편 캐럴라인 레빗 백악관 대변인은 3일 기자회견 중 한국 대선에 관한 질문을 받고 “여기 어딘가에 있을 텐데 찾아보겠다”며 연단에 놓인 서류에서 관련 자료를 찾으려 했다. 서류를 잠시 뒤졌지만 관련 자료를 찾지 못한 그는 “현재로선 없다. 다시 알려주겠다”며 웃었다.
● 韓, 나토 정상회의 참석 고민
여권, 외교부 등에 따르면 이재명 정부는 24, 25일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열리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정상회의에 이미 공식 초청장을 받은 상태다. 트럼프 대통령 또한 참석할 가능성이 높아 만일 이 대통령이 헤이그로 간다면 한미 정상의 첫 대면이 이뤄질 가능성이 높다.
다만 정부는 참석 여부를 고심하고 있다. 정상회의가 3주밖에 남지 않은 상황에서 나토 및 회원국들과의 협력 방안을 마련하기 어렵다는 점, 트럼프 대통령이 방위비 분담금과 관세 등 민감한 의제를 꺼내 압박할 수 있다는 점 때문으로 풀이된다.
트럼프 2기 행정부는 통상 협상에 관한 ‘최선의 제안(best offer)’도 요구한 상태다. 미 무역대표부(USTR)는 협상을 진행 중인 주요 국가에 미 동부 시간 4일까지 제안서를 보내라고 압박했다. 다만 산업통상자원부 고위 관계자는 4일 “(백악관의) 서한을 이미 받았다”면서도 “한국의 정치적 일정을 고려해 4일 이후로 답변을 보내기로 한미가 합의한 상태”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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