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이란 공습’ 중동정세 시계제로
中-러엔 “필요땐 무력 사용” 메시지… 아랍권, 이스라엘 부상 강력 반발
친이란 세력들 연합 반격 나설수도… “트럼프 설득 네타냐후 최대 수혜자”
이스라엘 민간인들도 큰 피해 22일 이스라엘 북부 거점 도시 하이파에서 이란의 미사일 공격으로 건물이 무너진 가운데 한 구조대원이 어린이 두 명을 대피시키고 있다. 이란은 전날 미국이 이란의 핵 시설 3곳을 직접 타격했고, 이스라엘도 공습을 이어가고 있는 것에 따른 보복 조치로 이스라엘 전역에 탄도미사일을 발사했다. 하이파=AP 뉴시스
도널드 트럼프 2기 미국 행정부가 21일 이란 핵시설을 전격적으로 공습하면서 그렇지 않아도 ‘세계의 화약고’인 중동 정세가 ‘시계 제로’ 상태에 빠졌다는 분석이 나온다. 트럼프 대통령은 집권 1기 때부터 중동의 대표적 친(親)미 국가인 이스라엘과 ‘수니파 맹주’ 사우디아라비아의 수교를 추진했고 두 나라에 ‘공동의 적’ 이란을 견제하는 역할을 맡기려 했다. 다만 사우디 내 강경 이슬람 세력 등의 반발로 뜻을 이루지는 못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집권 1기에 이어 집권 2기에도 이 구상을 밀어붙이려 하고 있다. 다만 그의 뜻이 관철될지는 미지수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사우디, 아랍에미리트(UAE), 카타르, 오만 등 주요 아랍국이 이란과의 긴장 고조에 우려를 표했으며 이번 사태로 이스라엘이 중동 패권국으로 올라설 가능성에 반발하고 있다고 21일 보도했다. 레바논 헤즈볼라, 예멘 후티 등 중동 내 친이란 무장단체가 미국과 이스라엘에 대한 공격에 나설 가능성 또한 배제할 수 없다.
이번 사태가 어떻게 귀결되든 최대 수혜자는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라는 분석도 나온다. 네타냐후 총리는 2023년 10월 팔레스타인 무장단체 하마스의 기습 공격을 막아내지 못했으며 아직까지 하마스가 억류 중인 민간인 인질 등으로 국내외의 거센 비판을 받아왔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을 끈질기게 설득해 미국의 이란 공습을 실행시킨 만큼 핵심 지지층인 국내 보수층의 강한 지지를 받을 것으로 보인다.
중동, 반미 여론 고조 21일 레바논 남부 시돈에서 일어난 대규모 반(反)이스라엘·반미 시위에 참여한 사람들이 이스라엘의 이란 공격을 비판하며 양국 국기를 태우고 있다. 13일부터 이스라엘과 이란의 무력 공방이 이어지면서 중동 전역에서 이스라엘과 공습을 지원한 미국에 대한 반감이 분출되고 있는 가운데, 미국의 참전으로 반미 여론은 더욱 강해질 것으로 보인다. 시돈=AP 뉴시스 ● 트럼프, 이란 넘어 中-러도 견제 목적
미국 시사매체 타임은 최근 트럼프 2기 행정부가 사우디 등 더 많은 아랍국을 이스라엘, UAE, 바레인이 2020년 9월 맺은 ‘아브라함 협정’에 포함시키는 것을 추진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를 통해 대(對)이란 공동 견제 전선을 구축하려 한다는 것이다.
영국 가디언은 트럼프 2기 행정부가 이란을 넘어 중국, 러시아 등에도 경고 메시지를 보내려 한다고 분석했다. 미국의 경쟁국에 “필요하다면 상대를 가리지 않고 군사력을 사용하겠다”는 메시지를 주려 한다는 것이다.
다만 거의 모든 아랍국가가 트럼프 2기 행정부의 이런 전략에 반감을 보인다는 점이 문제다. 특히 이번 사태로 이스라엘이 반사 이익을 누릴 것이라는 점에 많은 아랍국이 우려하고 있다고 FT는 전했다. 이스라엘이 헤즈볼라, 후티 등을 공격하는 정도는 방관해줄 수도 있지만 이번 사태로 이스라엘이 지나치게 자신감을 갖고 ‘중동의 원톱 패권국’ 행세를 하는 것은 좌시하지 않겠다는 분위기라는 것이다.
미국과 이스라엘이 이란에 대한 공동 공격에 나서면서 이란이 ‘제2 리비아’로 전락할지 모른다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 2011년 ‘아랍의 봄’ 민주화 운동의 여파로 42년간 리비아를 철권 통치했던 무아마르 카다피 정권이 무너졌다. 당시 서방 주요국 또한 카다피 사후 리비아에 대한 적절한 통치 계획을 제시하지 못했다. 이로 인해 리비아는 현재도 각종 군벌과 무장세력이 난립하는 무법지대로 전락했다.
서구 일각에서는 이란에서도 리비아와 비슷한 일이 벌어질까 우려하고 있다. 시아파 신정일치 세력의 붕괴는 내심 원하고 있지만 이로 인해 중동의 주요 패권국인 이란이 무법지대에 빠지는 것은 아무도 원치 않는다는 의미다. 특히 인구가 736만 명에 불과한 리비아와 달리 이란은 약 9000만 명을 보유한 강대국이어서 이런 이란이 정정 불안에 빠지면 국제 정세 또한 요동칠 수 있다. 뉴욕포스트는 트럼프 대통령 또한 이란이 리비아나 수니파 무장단체 탈레반이 통치 중인 아프가니스탄처럼 변하는 것을 원치 않는다고 진단했다.
FT는 이란처럼 많은 인구, 넓은 영토, 지정학적 중요성을 가진 국가가 ‘실패 국가(failed state)’로 전락한다면 리비아보다 훨씬 심각한 수준의 위협을 초래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특히 혁명수비대의 잔존 세력이 곳곳의 무장단체와 결합해 서방 주요국을 위협한다면 이는 미국이 직접 떠안아야 할 부담이 될 것으로 내다봤다.
● 최대 수혜자는 네타냐후
이번 사태로 네타냐후 총리는 강한 반사이익을 누릴 것으로 보인다. 그는 하마스와의 전쟁 발발 책임 외에도 두 번째 집권 시절의 부패 혐의 등으로 현직 총리 최초로 형사 재판을 받고 있다. 하지만 미국의 이란 공습을 이끌어낸 공로로 반대파를 제압할 수 있는 상황이 됐다.
타임스오브이스라엘은 네타냐후 총리가 이끄는 극우 연정 내부에서 네타냐후 총리에 대한 지지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고 21일 보도했다. 이타마르 벤그비르 국가안보장관, 베잘렐 스모트리히 재무장관 등 강경 보수 인사들은 같은 날 일제히 네타냐후 총리에 대한 지지와 칭찬 글을 올렸다.
네타냐후 총리는 올해 2월과 4월 각각 워싱턴 백악관을 방문해 당시만 해도 이란 핵협상 체결을 선호했던 트럼프 대통령에게 “이란을 공습해야 한다”고 끈질기게 설득했다. 특히 트럼프 2기 행정부가 이번 이란 공격에 사용한 ‘벙커버스터’ 폭탄을 지원해달라고 촉구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당시에는 이를 거부했지만 결과적으로 이란 공습을 단행하면서 네타냐후 총리를 도와준 모양새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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