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의 무정자증으로 18년간 임신에 어려움을 겪은 미국의 한 난임 부부가 인공지능(AI) 기술의 도움으로 임신에 성공했다. 현미경으로 확인되지 않았던 극소량의 정자를 AI가 찾아낸 데 따른 것. 무정자증 치료의 획기적 대안이라는 목소리와 더불어 추가 검증이 필요하다는 신중론도 제기되고 있다.
3일(현지 시간) CNN 등 미 언론에 따르면, 신분을 밝히지 않은 한 부부는 18년간의 임신 시도 끝에 올 3월 체외수정(IVF)으로 첫 아이를 갖게 됐다.
이 부부는 그간 전 세계의 난임 클리닉을 방문해 15번이나 IVF 시술을 시도했으나, 남편의 정액에 정자의 수가 희박한 ‘무정자증’으로 번번이 실패했다. 일반적인 정액에는 수억 개의 정자가 포함되지만, 무정자증 환자에게서는 전문가가 현미경으로 몇 시간 동안 들여다봐도 검출이 어려울 만큼 그 수가 적다.
문제를 해결한 것은 AI다. 미국 컬럼비아대 난임 센터는 새로운 AI 기반 기술 ‘STAR(Sperm Tracking and Recovery·정자 추적 및 복구)’를 이용해 남편의 정액 샘플에서 숨겨진 정자를 검출했다. 검출한 정자 3개를 사용해 난자를 수정한 결과 아내는 건강하게 임신에 성공했다. 출산 예정일은 올해 12월로, STAR 시스템을 이용한 첫 번째 임신 성공 사례다.
STAR 시스템을 활용한 정차 추적 과정. 사진 출처 컬럼비아대 난임센터 STAR 시스템은 정액 샘플을 통과시킬 수 있는 특수 칩과, 정자 세포를 감지하도록 5년여간 학습된 AI 알고리즘을 활용한다. 정액 샘플을 칩에 흘려보내면, AI는 현미경과 연결된 고속 카메라로 1시간에 800만 개 이상의 이미지를 촬영한 뒤 이를 실시간으로 분석한다. 정자로 추정되는 세포를 인식한 AI는 이를 연결된 세관(細管)으로 분리해 낸다. 이렇게 분리된 소수의 정자는 보관, 냉동 또는 난자 수정에 사용될 수 있다.
이 시스템은 천체물리학자들이 AI를 사용해 새로운 별과 행성을 탐지하는 데서 영감을 받았다. 개발을 주도한 제브 윌리엄스 컬럼비아대 난임센터장은 타임지에 “수십억 개의 별로 가득 찬 하늘을 들여다보며 새로운 별이나 별의 탄생을 찾을 수 있다면, 같은 접근 방식을 사용하여 수십억 개의 세포를 살피고 우리가 찾으려는 특정 세포를 찾을 수 있을지 모른다고 생각했다”고 전했다.
그는 “숙련된 기술자가 이틀간 (정액) 샘플을 살펴도 정자를 찾지 못했는데, 이를 AI는 단 1시간 만에 44마리를 찾아냈다”며 “AI는 말 그대로 게임 체인저”라고 강조했다.
제브 윌리엄스 미 컬럼비아대 난임센터장은 동료들과 함께 5년 동안 STAR 시스템을 개발했다. 사진 출처 컬럼비아대 어빙 의료 센터 홈페이지 미국에서 전체 난임의 약 40%는 남성 요인에 의한 것이며, 그중 약 10%는 무정자증 진단을 받은 경우로 추정된다. STAR 시스템은 현재 컬럼비아대 난임센터에서만 사용할 수 있지만, 개발팀은 이 연구·개발 성과를 공개해 다른 난임센터들과 공유할 예정이다.
윌리엄스 센터장은 STAR 시스템을 이용해 환자의 정자를 찾고 분리해 동결하는 데 드는 비용이 3000달러 미만이라고 밝혔다. 그는 이 기술이 “인간의 전문성을 대체하기 때문이 아니라, 그것을 증폭한다는 점에서 획기적인 일”이라며 “이것이 난임 치료의 미래”라고 말했다.
다만 이번이 첫 사례라는 점에서 추가 검증이 필요하다는 평가가 나온다. 미국생식의학회 차기 회장인 비뇨기과 의사 로버트 브래니건은 워싱턴포스트(WP)에 “겉보기에는 유망한 기술이지만, 우리는 데이터를 추적하고 더 연구해야 한다”며 다른 병원에서도 결과가 유지되는지 확인하기 위해 추가 테스트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생식 의학에 AI 적용을 서두르는 것이 환자들에게 잘못된 희망을 줄 수 있다고 우려하는 시각도 있다. 웨일 코넬 의대의 난임 시술 전문가 지안피에로 팔레르모 교수는 “정자가 없다는 말을 들은 환자들을 끌어들여, 결국 헛된 희망으로 드러날지도 모르는 기술을 제공하려는 것”이라며 “일부 남성들은 불가피하게 정자가 없다. 인간이나 기계 누가 검증하는지는 중요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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