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에 굶주린 범죄자들과 노숙자들이 워싱턴을 점령했다. 오늘은 ‘해방의 날’(Liberation Day)이 될 것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노숙인 및 범죄 문제에 대응하기 위해 수도 워싱턴에 주(州) 방위군을 투입한다고 11일 밝혔다. 이달 초 미 연방정부 공무원의 폭행 사건을 계기로 워싱턴의 치안 문제를 제기한 데 이어 전날 노숙인 텐트 사진을 올리며 도심 미화를 문제 삼은 트럼프 대통령이 이에 대한 해법으로 군 투입을 결정한 것이다.
그가 워싱턴을 집중 겨냥해 ‘범죄와의 전쟁’에 나선 데 대해 내년 중간선거를 앞두고 그간 민주당 텃밭인 수도를 장악하려는 게 아니냐는 해석이 나온다. 앞서 트럼프 대통령이 불법 이민자 단속을 명분으로 올 6월 로스앤젤레스에도 주방위군을 동원했다. 이로 인해 과도한 군 투입에 대한 반발도 커지고 있다. 민주당 크리스 밴 홀런 상원의원(메릴랜드)은 “우리나라 수도에서 독재자 행세를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또 민주당 원로인 낸시 펠로시 전 하원의장은 “관세·의료·교육·이민 정책에서 무능을 덮기 위한 것”이라고 밝혔다.
● “우리나라 수도 범죄·더러움에서 구하는 행동”
이날 트럼프 대통령은 백악관 기자회견을 통해 워싱턴 경찰 업무를 연방정부 직접 통제에 두고, 주방위군을 치안 강화를 위해 동원하겠다고 밝혔다. 이를 위해 법 규정을 발동하겠다며 관련 행정명령과 대통령 메모에 서명했다. 워싱턴의 치안 자치권을 한시적으로 중지하고, 군을 투입하는 강경 조치를 공식화한 것. 트럼프 대통령은 “일차적으로 800명의 주방위군을 배치하고 필요하면 추가할 것”이라고 밝혔다.
회견에는 피트 헤그세스 국방장관과 팸 본디 법무장관, 캐쉬 파텔 연방수사국(FBI) 국장 등 국방, 치안 분야 참모들을 대동했다. 헤그세스 장관은 “오늘 아침 주방위군을 동원했다. 수주 내 주방위군이 워싱턴의 거리로 들어오는 것을 볼 것”이라고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번 조치에 대해 “우리나라의 수도를 범죄와 유혈 사태, 대소동, 더러움에서 구하는 역사적 행동”이라며 “우리의 수도를 되찾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미국의 모든 지역 경찰청은 각 주정부나 시 정부 관할 하에 있다. 다만 1973년 제정된 워싱턴 자치법에 따라 워싱턴에서는 비상 상황이 인정되면 대통령이 경찰권의 일시적 이양을 지시할 수 있다. 이는 최대 30일간 유지되고, 워싱턴 시의회 승인으로 연장될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치안 악화를 비상조치의 근거로 들었다. 앞서 그는 3일 정부효율부(DOGE) 출신의 에드워드 코리스틴이 워싱턴에서 10대 청소년들에게 구타를 당해 피범벅이 된 사진을 트루스소셜에 올렸다. 코리스틴은 DOGE 수장이었던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에게 발탁돼 ‘머스크 키즈’로 불린 인물. 트럼프 대통령은 11일 회견에서 이를 언급하며 “아주 혼쭐을 내야 한다. 역겹다”며 “정치적으로 옳지 않다고 하겠지만, 우리는 그들이 사는 슬럼가도 없앨 것”이라고 했다.
● “지역치안 업무 군장악, 권위주의 전조”
민주당이 장악한 워싱턴 시당국과 의회는 워싱턴의 범죄율이 30년 만에 최저 수준이라며 트럼프의 조치에 반발하고 있다. 워싱턴 시의원들은 공동성명을 내고 “지역 권한에 대한 인위적 침해”라며 “폭력 범죄율이 30년 만에 최저인 상황에서 연방 경찰화는 불필요하다”고 밝혔다. 브라이언 슈왈브 워싱턴 법무장관도 “이번 조치는 전례 없고, 불필요하며, 불법”이라며 법적 대응을 예고했다. 다만 뮤리얼 바우어 워싱턴 시장은 “대통령의 권한이 꽤 광범위하다”며 이번 조치에 즉각 불응하진 않겠다는 뜻을 내비쳤다.
미국 주요 언론들은 이번 조치를 트럼프의 권위주의 통치의 연장선으로 해석하며 비판적으로 보도하고 있다. CNN은 “최근 몇 주 동안 트럼프 대통령은 법무부를 동원해 전임인 오바마 행정부 관계자들을 겨냥했고, 텍사스에서 공화당 하원 의석 5개를 새로 만들려 했다. 또, 실업률 수치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이유로 정부 최고 통계 전문가까지 해임했다”며 “이전 트럼프 대통령의 권력 장악 시도들과 함께 보면 이번 일은 단순한 사건 그 이상”이라고 평가했다. 국제 인권단체 휴먼라이트워치(HW)는 “위험하고 정당성 없는 조치”라며 “지역 치안 업무를 군이 장악하는 것은 권위주의의 전조”라고 뉴욕타임스(NYT)에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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