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전 추도사 “전쟁 교훈 다시 새겨야”
前총리들 사용한 ‘침략-가해’는 빠져
전현 각료, 전범 합사 야스쿠니 참배
日정부 “한일 관계 안정적 발전 기대”
이시바 시게루(石破茂·사진) 일본 총리가 15일 제2차 세계대전 패전일 추도사에서 “전쟁의 참화를 결단코 되풀이하지 않겠다”며 “그 전쟁의 반성과 교훈을 이제 다시 가슴에 깊이 새겨야 한다”고 했다. 일본 총리가 패전일에 ‘반성’을 언급한 것은 13년 만이다.
이시바 총리는 패전 80년을 맞은 이날 도쿄 부도칸(武道館)에서 열린 ‘전국 전몰자 추도식’에서 “전쟁 후 80년이 지났다. 지금은 전쟁을 모르는 세대가 대다수가 됐다”며 이렇게 말했다. 그러면서 “비통한 전쟁의 기억과 부전(不戰)에 대한 결연한 다짐을 세대를 초월하여 계승하고 항구적 평화를 향한 행동을 계속해 나가겠다”고 덧붙였다.
호소카와 모리히로(細川護熙) 전 총리가 1993년 “애도의 뜻”을 처음 밝힌 뒤, 1994년 무라야마 도미이치(村山富市) 전 총리의 “깊은 반성” 등 한동안 일본 총리들은 패전일에 맞춰 반성의 뜻을 표해 왔다. 특히 무라야마 총리가 “아시아를 비롯한 세계의 많은 사람들에게 필설(筆舌·글과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비참한 희생을 초래했다”고 반성한 뒤 일본 총리들은 추도사에서 반성 표현을 담았다.
하지만 2013년 아베 신조(安倍晋三) 전 총리가 추도사에서 ‘반성’이라는 단어를 쓰지 않고 “역사의 교훈을 가슴 깊이 새기겠다”고 표현하며 상황이 변했다. 이어 집권한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전 총리도 패전일 추도사에 반성 표현을 담지 않았다.
이시바 총리는 이번 추도사에서 반성을 다시 언급했지만 앞선 총리들이 반성과 함께 썼던 ‘침략’, ‘가해’ 등의 표현은 담지 않았다. 종전 50년인 1995년부터 10년마다 공개되던 일본 총리의 담화도 이날 발표되지 않았다. 이날 패전일을 맞아 일본 전현직 각료들이 제2차 세계대전 A급 전범이 합사된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했다. 이시바 총리는 참배를 하지 않고 공물료를 봉납했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이날 이시바 총리가 ‘반성’을 언급한 데 대해 “주목하고 있다”고 했다. 이 관계자는 “일본의 책임 있는 지도자들이 과거 아픈 역사를 직시하면서 국가 간 신뢰가 훼손되지 않도록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더 나은 미래와 공동의 이익에 부합하는 일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한편 일본 정부는 이재명 대통령의 23, 24일 일본 방문과 관련해 “이번 방일을 통해 한일 관계가 안정적으로 발전하기를 기대하고 있다”고 밝혔다.
日이시바 ‘반성’ 언급했지만… 차기 총리 유력 후보들 야스쿠니 참배
[광복 80주년] 고이즈미-다카이치, 각각 신사 참배… 이시바는 참배대신 공물료 봉납 ‘종전 80주년 담화’ 안한 이시바… 내달 ‘개인 메시지’ 발표 가능성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가 15일 도쿄 부도칸에서 열린 ‘전국 전몰자 추도식’에서 제2차 세계대전 패전일 추도사를 읽고 있다. 이날 그는 “전쟁의 반성과 교훈을 이제 다시 가슴에 깊이 새겨야 한다”고 밝혔다. 아사히신문 제공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가 15일 도쿄 부도칸에서 열린 ‘전국 전몰자 추도식’에서 제2차 세계대전 패전일 추도사를 읽고 있다. 이날 그는 “전쟁의 반성과 교훈을 이제 다시 가슴에 깊이 새겨야 한다”고 밝혔다. 아사히신문 제공일본 집권 자민당의 차기 총리 유력 후보들이 제2차 세계대전 패전일인 15일을 맞아 2차 대전 A급 전범이 합사된 야스쿠니신사를 참배했다. 이시바 시게루(石破茂) 총리는 이날 종전 80주년 총리 담화를 내진 않았지만, 다음 달 ‘개인 메시지’를 낼 가능성이 거론된다. 이런 가운데 다음 주 이시바 총리와의 회담을 앞둔 이재명 대통령은 이날 광복절 경축사를 통해 과거사 문제를 잘 관리하면서도 미래지향적 협력을 강화하겠다는 ‘투 트랙’ 기조를 재확인했다.
고이즈미 신지로(小泉進次郎) 일본 농림수산상과 다카이치 사나에(高市早苗) 전 경제안보상은 이날 오전 도쿄 지요다구의 야스쿠니신사를 각각 참배했다고 교도통신, NHK 등이 전했다. 이들은 지난달 참의원 선거 참패 후 이시바 정권이 퇴진 압박을 받고 있는 상황에서 차기 총리 후보를 묻는 각종 여론조사에서 1위를 다투고 있다. 고이즈미 농림수산상은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郎)의 아들로, 높은 대중적 인기에 힘입어 일찌감치 차세대 총리감으로 주목받았다. ‘여자 아베’로도 불리는 다카이치 전 경제안보상은 자민당 내 대표적 보수통이다. 이들은 지난해 패전일에도 야스쿠니신사를 찾았다.
이날 야스쿠니신사에선 지난달 참의원 선거에서 약진한 극우 성향 참정당의 가미야 소헤이(神谷宗幣) 대표를 비롯한 중·참의원 의원 18명, 지방의원 등 총 88명이 집단 참배했다. 이시바 총리는 이날 야스쿠니 참배 대신 공물료를 봉납했다. 현직 총리가 참배한 것은 2013년 아베 신조 당시 총리가 마지막으로, 이후 총리들은 참배 대신 공물이나 공물료를 봉납해 왔다.
이날 이시바 총리의 종전 80주년 담화 발표는 없었다. 일본 총리들은 전후 50년이던 1995년부터 10년 간격으로 종전일 전후로 각의(국무회의)를 거쳐 총리 담화를 발표했다. 이번에 담화가 발표되지 않은 것은 총리에 대한 선거 패배 책임론과 더불어 자민당 내 보수파의 반대에 따른 것으로 분석된다. 다만, 종전 80주년 메시지 발신의 의지가 강한 이시바 총리가 일본이 항복문서에 조인한 날짜인 다음 달 2일을 즈음해 ‘개인 메시지’를 낼 가능성이 거론되고 있다.
이 대통령은 이날 광복절 경축사에서 “과거를 직시하되 미래로 나아가는 지혜를 발휘해야 할 때”라고 밝혔다. 이어 과거사 현안을 구체적으로 언급하지 않고 “여전히 과거사 문제로 고통받는 분들이 계시고, 입장을 달리하는 갈등도 존재한다”며 “가혹한 일제 식민지배에 맞서면서도 언젠가는 한일 양국이 진정한 이웃이 될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놓지 않았던 선열들의 간절한 염원을 이어가야 한다”고 말했다.
다만, 이 대통령은 “일본 정부가 과거의 아픈 역사를 직시하고 양국 간 신뢰가 훼손되지 않게 노력해 줄 것으로 기대한다”고 했다. 한일 정상회담을 앞두고 과거사에 대한 일본 지도층의 책임 있는 자세를 촉구한 것으로 풀이된다.
한편, 이날 한국 외교부는 “정부는 야스쿠니신사에 일본의 책임 있는 지도급 인사들이 또다시 공물을 봉납하거나 참배를 되풀이한 데 대해 깊은 실망과 유감을 표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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