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못된 정보로 임신부 죄책감 느끼게 될까 우려”
보건복지부 장관, ‘류코보린’ 자폐 치료제로 홍보
타이레놀. 2020.3.19 뉴스1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2일(현지시간) 백악관에서 열린 보건정책 발표 행사에서 자폐증이 임신부의 타이레놀 진통제 복용과 관련 있다고 말해 파장이 일고 있다. AFP통신에 따르면 이날 트럼프 대통령은 “타이레놀 복용은 좋지 않다”며 “임신부는 죽을힘을 다해 복용하지 않도록 싸워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극심한 고열이 있을 때만 복용이 정당화된다”고 덧붙였다.
이 같은 발언은 미국 식품의약국(FDA)과 주요 의료단체들의 권고와 정면으로 배치된다. 미국산부인과학회(ACOG)는 아세트아미노펜(타이레놀의 주성분)을 임신 중 가장 안전한 진통제로 오랫동안 권장해 왔다. 전문가들은 고열이나 통증 자체가 태아에게 위험할 수 있으며, 이를 방치하는 것이 오히려 더 큰 해를 초래할 수 있다고 경고한다.
뉴욕대(NYU) 의료윤리학 책임자인 아서 캐플런 교수는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에 대해 “위험하고, 비과학적이며, 잘못된 정보로 가득 차 있다”고 비판했다. 그는 “임신부들이 타이레놀을 복용한 것에 죄책감을 느끼게 될까 우려된다”며 “그건 공정하지 않으며 누구도 이런 감정을 느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과 달리 FDA는 해당 사안에 대해 신중한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FDA는 의사들에게 보낸 서한에서 “타이레놀과 자폐증 사이의 인과관계는 아직 입증되지 않았다”면서 과학적 논쟁이 진행 중이라고 밝혔다. 최근 발표된 문헌 검토에서는 타이레놀과 자폐증 사이에 가능성 있는 연관성이 제기됐지만, 반대 결과를 보인 연구도 많다.
트럼프 대통령과 로버트 F. 케네디 주니어 장관이 자신들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데 활용하고 있는 것은 올해 8월 발표된 한 문헌 리뷰 보고서다. 총 46편의 기존 연구를 분석한 이 보고서는 마운트시나이 의대 연구팀이 낸 것인데 연구진은 타이레놀 복용과 자폐증 사이에 연관성이 있을 가능성이 있다고 결론지었다.
하지만 동시에 직접적인 인과관계는 아직 입증되지 않았고 추가 연구가 필요하다고 했고 또 “임신부의 복용 중단은 반드시 의사와 상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펜실베이니아대 정신역학자 데이비드 맨델 교수는 “타이레놀 복용의 잠재적 위험은 임신 중 감염을 방치했을 때의 위험보다 낮은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백신에 대해서도 강경한 입장을 드러냈다. 그는 홍역·볼거리·풍진(MMR) 백신과 B형 간염 백신의 필요성에 의문을 제기하며, 백신 내 알루미늄 성분 제거도 시사했다. 특히 “신생아에게 B형 간염 백신을 접종할 이유가 없다”고 주장했는데, 이는 수십 년간 형성된 의료계 합의와 정면으로 배치된다. B형 간염은 간 손상과 간암을 유발할 수 있는 질병으로, 전문가들은 출생 직후 백신 접종이 가장 효과적인 예방책이라고 강조한다.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은 최근 백신 정책을 둘러싼 논란이 커지는 가운데 나왔다. 보건복지부 장관인 로버트 F. 케네디 주니어는 자폐증과 백신의 연관성을 주장해 온 인물로, 과학계에서 이미 반박된 이 주장을 반복해 왔다. 케네디는 이날 항암 치료 부작용 완화제로 쓰이던 비타민 B 활성 유도체 ‘류코보린’을 자폐증 치료의 ‘흥미로운 치료제’라고 홍보하며, FDA가 해당 약의 정제형을 일부 자폐 아동의 뇌 엽산 결핍 치료제로 승인했다고 밝혔다.
한편, 케네디가 주도한 백신 자문위원회는 최근 B형 간염 백신 접종 시기를 한 달 늦추는 방안을 논의했지만, 공식 권고에는 이르지 않았다. 이에 대해 미국소아과학회 수전 크레슬리 회장은 “백신 접종을 지연시키면 아이들이 가장 취약한 시기에 면역 없이 노출될 수 있다”며 “과학을 왜곡하는 시도는 아이들의 건강에 위협이 된다”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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