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 APEC서 협상 고려 美요구 수용
美우선주의에 다자주의 위기 상황
中 중심 무역질서 재편 노림수도
“美中 무역분쟁 완화, 韓에 긍정적”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왼쪽)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2019년 6월29일 일본 오사카에서 열린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 참석해 악수하고 있다. 오사카=AP/뉴시스
중국이 세계무역기구(WTO) 체제 내 개발도상국(개도국) 지위를 포기하라는 미국의 요구를 23일(현지 시간) 일부 수용한 것은 다음 달로 예정된 경주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에서의 미중 정상회담과 양국 무역협상 진전 등을 고려한 조치로 풀이된다. 여기에는 ‘미국 우선주의’를 내세우며 다자주의 체제를 흔드는 미국과 달리 중국 스스로 강대국으로서 책임을 강조하며 국제사회에서 우군을 확보하려는 의도도 담긴 것으로 보인다.
WTO 체제에서 개도국은 선진국보다 관세를 낮출 수 있고, 농업보조금을 생산액의 10%까지 줄 수 있는 등 농업·산업보조금 제한도 덜 받는다. 새 규범이 생기면 이행 기간을 선진국보다 더 길게 받고, 새 협상 때마다 의무와 이행 기간을 우대받는 등 150여 개 혜택이 있다.
리창 중국 국무원 총리. AP뉴시스전문가들은 중국의 이번 발표가 한국 농식품과 소비재 수출 여건에 긍정적일 수 있지만 전체적인 통상 환경에 미칠 영향은 제한적일 수 있다고 평가했다. 미국이 주도한 보호무역주의 흐름 가운데 WTO가 사실상 개점휴업 상황이기 때문이다. 또 한국은 이미 미국, 유럽연합(EU), 아세안 등 주요 수출 상대국과 자유무역협정(FTA) 또는 그에 준하는 무역협정을 체결하고 있다.
장상식 한국무역협회 국제무역통상연구원장은 “중장기적으로는 중국의 농업보조금 축소로 한국의 농식품과 소비재 수출 여건이 개선될 가능성이 있어 보인다”며 “중국 내 한국 기업의 기술 유출이나 지식재산권 보호에도 일부 긍정적일 것”이라고 봤다. 다만 그는 “이번 조치가 향후 무역 협상에서만 새로운 특혜를 안 받겠다는 취지라면 기존 특혜가 유지될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기업들은 중국의 이번 발표로 인한 득실을 계산하는 분위기다. 중국이 개도국 특혜로 인한 낮은 관세를 포기하면 한국이 수출품의 가격 경쟁력을 가질 수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한 수출 기업 관계자는 “전 세계가 보호무역주의로 돌아선 상황에서 특별한 의미를 가지기 어려울 수도 있다”며 “이번 조치로 미중 무역분쟁이 완화되면 글로벌 통상의 불확실성이 완화된다는 측면에서는 긍정적”이라고 밝혔다.
중국의 특혜 포기 선언은 WTO 내 영향력을 확대하고 글로벌 무역질서를 중국 중심으로 재편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한 것이란 뜻이 담겼다는 분석도 나온다. 리창 중국 국무원 총리가 이날 특혜 포기를 언급한 글로벌개발이니셔티브(GDI) 회의는 시진핑 국가주석이 제안한 국제개발협력 논의체로 중국이 이른바 ‘글로벌 사우스’ 개도국들을 우군으로 확보하기 위한 것이다. 중국이 개도국 특혜는 포기해도 지위나 정체성은 유지하겠다고 밝힌 것은 다른 개도국과 연대하면서 다자주의 리더십은 확보하겠다는 전략으로 풀이된다. 리 총리는 이날 “현재 일방주의와 보호주의가 고조되면서 국제 개발 협력이 심각한 충격을 받았다”며 미국을 간접적으로 비판했다. 김태황 명지대 국제통상학과 교수는 “미국 대신 중국이 자신들을 중심으로 다자무역을 선도하며 영향력을 키우면 오히려 한국이 다른 개도국과의 무역에서 운신의 폭이 더 좁아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개발도상국 지위
세계무역기구(WTO) 협정에 따라 관세나 보조금 등에서 150여 개 특혜를 받을 수 있는 대상을 뜻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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